백선엽 "전작권 전환 합의는 역사적으로 잘못 판단"
아직은 시기가 아니다, 전장(戰場)에서는 일사불란한 전략동맹 체제로 단일 전시작전통제권이 유지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는 20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및 '한·미 연합사해체 해체' 연기, 연내 매듭』을 주제로 향군 율곡포럼을 개최했다.
특히 이번 향군 율곡포럼은 오는 2012년 4월17일로 한국으로의 전작권 전환이 예정돼 있는 상태에서 전작권 전환이 금년 내로 연기를 합의하지 않을 경우 시일의 촉박으로 더 이상 합의가 어렵게 되고 이는 곧장 한미연합사의 해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보수층은 물론 여론의 깊은 관심을 이끌었다.
다음은 이 날 포럼에 참석한 백선엽(예, 대장, 전 육군참모총장)육군협회장의 격려사 내용임. <편집자 주>
[격 려 사]
1. 서론
우선, 오늘 포럼에 앞서 백령도 연안 NLL지역에서 야간작전 수행 중 천안함 사고로 전사한 해군장병들과 이들을 구하려다 장렬히 순국한 고 한준호 준위에게 명복을 드립니다. 우리 해군장병 전우들이 슬기롭게 사태를 잘 수습하고 심기일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현재, 국내외적으로 안보정세가 대단히 불안정한 가운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합의이행을 불과 2년 남겨둔 시점에서 재향군인회 주관으로 이런 중요한 포럼을 갖게 된 것은 매우 시의 적절하고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난 3년여 동안“전작권 전환, 연기를 위해 엄청난 활동을 해온 재향군인회의 노고를 높이 평가합니다.
2. 문제의 제기
지낸 10년간의 좌파 정권과 북한 김정일 집단과의 남북정상회담 결과 국민의 주적개념 해이와 안보의식의 오도를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김정일 정권을 연명시켜 주는 크나큰 과오를 범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 와중에도 특히, 지난 2007년 2월 24일 한미간에 합의한「2012년 4월 17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결정」은 노무현 정부가「주권회복」과「자주국방」논리로 밀어 부친 큰 실책이며, 전반적인 국제질서와 정세에 대한 판단과 인식이 결여된 데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먼저, 전작권과 관련하여 그 역사적 뿌리를 잘 아실 필요가 있습니다.
1950년 6.25 전쟁시 작전지휘권을 미군에게 이양된 배경을 살펴보면, 1949. 6월말, 45,000명의 미군이 한반도에서 비전투 고문단 500명을 남기고 완전 철수한 후, 1950. 1.12일, 당시 美국방부장관 애치슨은 미국의 극동방위선(알류산열도, 일본열도, 오키나와, 필리핀을 연하는 선)에서 한국을 제외시킴으로서 6.25 남침의 여러 원인 중 하나로 그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결국, 미국의 남한 포기로 판단한 북한은 소련과 중공의 완벽한 지원 하에 한반도 공산화 통일을 위한 기습남침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1950. 7.14, 이승만 대통령께서, 국가운명의 갈림길에서 구국의 일념으로 정치적 결단을 내려 유엔군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에게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이양한다는 공한을 보냈고, 7.18, 맥아더 사령관의 답신으로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이 UN군사령관에게 공식 이양 되었습니다.
※ 이른 바“대전협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후, 1950년 11월 중공군의 참전으로 새로운 전쟁에 돌입하여 우리 국군은 미국을 비롯 한 UN연합군과 연합작전으로 선전 끝에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한 전쟁으로 정전이 성립 되었습니다.
3. 한국군 60만 증강 및 현대화 과정
3년 1개월의 6.25전쟁이 우리 민족에게 너무나 가혹한 시련을 안겨 주었지만 그 과정에서 보잘 것 없던 한국군이 일약 60만 대군을 건설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1951년 11월, 지리산 공비소탕을 위해 창설한「白야전전투사령부」를 모체로 1952년 4월에 국군 최초로 근대화된 2軍團을 창설하면서 우리 군의 전력이 실질적으로 증강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밴플리트 미8군사령관과 협의 하에 당시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당선자에게 10개 상비사단과 10개 예비사단의 증강의 필요성을 승인 받아 오늘날과 같은 60만 국군의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4. 이승만 대통령의 탁월한 지도력
여기서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의 탁월한 지도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분은 국제적 안목과 정치적 식견을 갖춘 위대한 국가지도자였습니다. 그러한 지도력으로 당시 세계 선도국이자 최강의 군사력 갖춘 미국을 최대한 활용한 지혜로운 대통령이셨습니다.
특히, 휴전 후 UNC 작전통제권이 미국에 이양된 것은, 이승만대통령의 외교적 수완으로 1953. 10.1,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고 이듬해인 1954. 11.17, 방위조약의 발효와 함께 한미국방장관의 합의의사를 채택하였습니다.
거기에 보면, 제 2항에 :「국제연합사령부가 대한민국 방위를 위한 책임을 부담하는 동안 대한민국 국군을 국제연합사령부의 작전통제 하에 둔다」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유엔사 작전통제권은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대한민국 정부의 요구로 유엔사령관에 위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휴전 후 25여년 동안 유엔사령관 지휘하에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 행사를 해 왔던 것입니다.
5.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국방과 연합사 창설
그러나, 유엔군사령부 체제는 UN사와 미8군에는 미군 참모로만 편성되어 한미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였습니다.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처리과정에서의 교훈과 한미 1군단의 성공적 운용사례가 모델이 되어, 한국군과 미군을 혼합하는 사령부 편성이 필요하다는 인식 하에, 유사시 미군의 즉각 개입 보장을 위해 1978. 11.7, 한미 연합사령부가 창설되었습니다.
따라서, 한미 연합사령부 창설은 국가안보와 전시 효율적인 작전을 위해 우리 군이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었으며, 전시작전통제권은 유엔사, 한미연합사령관이 행사토록 양국 정부가 승인한 것입니다.
※ 여기에서, 주적과 대치하고 있는 휴전체제 하에서 자주국방과 주권회복을 앞세운 논리로 노무현 전 정권이 전작권을 전환토록 합의한 것은 국가 전략적 견지에서나 역사적으로 잘못 판단한 것임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6. 결론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전작권 전환”과 “한미 연합사를 해체”해서는 아니 되는 이유는, 첫째, 625전쟁을 통해 맺은 한미동맹, 한미혈맹의 관계가 약화되고 퇴색될 우려가 큽니다.
전장(戰場)에서는 일사불란한 전략동맹 체제로 단일 전시작전통제권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둘째, 북한「김정일 정권」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스스로 견고한 한미동맹 체제를 흔드는 행위는 김정일을 도와 주는, 매우 어리석은 처사입니다.
셋째, 양국정부 합의시한인 2012년 4월 17일은 너무나 촉박한 시간입니다. 이 문제의 조건부 연기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조속히 요구됩니다.
아무쪼록, 오늘 여러분들의 고견들이 집약되어 한미 양 정부와 미국 국회 상하의원에도 절실하게, 그리고 조속히 반영되도록 노력해 주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konas)
백선엽(예, 대장. 육군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