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인 국군포로 송환 해법 마련해야
국군포로 송환은 국가의 무한책임 ..정부의 원칙을 분명히해야 한다.
정부가 3일 금강산에서 시작된 제18차 남북이산가족상봉 2차 행사에 앞서 국군포로 16명에 대한 생사 확인을 북한에 요청했으나 북측은 서필환씨의 사망 사실만 확인해주는 무성의를 드러냈다. 북측이 국군포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추후 한국과의 협상에 활용하려는 노림수로 볼 수밖에 없다.
2일에는 북한을 탈출해 제3국에 머물고 있던 84세의 한 국군포로가 59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26∼27일 개성 자남산여관에서 13개월 만에 재개된 이산가족상봉단 1진이 돌아온 직후의 일이다. 그는 신혼 2개월 만에 징집돼 6·25에 참전했으나 1951년 5월 강원도 인제군 가리봉전투에서 북한군의 포로가 됐다. 이후 그를 포함해 수많은 국군포로는 한국으로 송환되지 못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2000년 제2차 이산가족 상봉 이후 북측에 생사 확인을 요청한 국군포로는 모두 121명이지만, 북한은 이 중 28명의 생사만을 확인해 주었다. 전시에 군인이었다는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전체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의 생사확인률과 비교할 때 현저히 낮은 비율이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이후 국군포로 자체를 부인해 온 북한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된 수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환 용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현재 500명이 넘는 국군포로가 북한에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 당국은 정전협상 당시 8만2000여명의 국군이 포로로 잡혀 있었을 것으로 추산했으나 막상 포로교환 시 송환된 국군은 그 10분의 1에 불과했다. 미귀환 국군포로 중에는 전시에 사망했거나 생사 여부 자체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상당수 국군포로는 북한에 억류돼 전후 복구사업에 강제 동원됐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은 정전협정 이후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포로나 납북자는 없으며, 의거 월북 또는 의용군과 전향자가 있을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북한을 탈출해 생환한 국군포로가 모두 80명에 이르고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대부분 자신들이 강제 억류됐다고 하는 만큼 북한측의 주장은 믿을 수 없다.
북한은 자신들의 주장을 호도하기 위해 국군포로나 6·25 이후 납북자까지도 이산가족의 범주에 포함시켜 신청자의 생사 확인과 가족상봉에 이용한다. 지난달 제18차 이산가족상봉 1차 행사 때는 북측의 신청자로 4명의 국군포로가 한국의 가족을 만나러 나왔다. 송환해야 할 국군포로를 체제선전의 도구로 악용하려는 북한의 저의를 드러낸 것이다. 이는 국군포로의 존재를 더 이상 속일 수 없게 됐음을 스스로 입증한 사례이기도 하다. 북한은 그들을 의용군으로, 전사로 규정해 선전하고 있으나 그 면면을 보면 국군포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구나 이들은 500여명으로 추산되는 생존 국군포로의 명단에도 없었다는 점에서 북한 내에 훨씬 더 많은 국군포로가 생존하고 있을 개연성을 뒷받침한다.
노무현 전 정부는 북한 당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또는 부적절한 타협의 결과 ‘국군포로’라는 용어조차 포기한 채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시기에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사람’이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국군포로 송환은 국가의 무한책임’임을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눈에 보이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성과는 없다.
정부의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국군포로 송환 해법 마련이 절실하다. 국군포로는 반드시 송환한다는 정부의 원칙을 분명히해야 한다. 아무리 비용이 들고 협상이 어렵더라도 조국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군인은 조국이 무한책임을 진다는 자세를 그들의 생사 확인과 생환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konas)
유호열(고려대 교수 · 북한학)
* 이글은 11.4일자 문화일보에 기고된 글입니다.
- 관련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