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추진과 北 무력도발
북이 또다시 무력도발할 가능성 있는 만큼 정부와 민간 적극 협력으로 위기대응능력 보완해야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2월 20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북한산 산행 이후 오찬간담회에서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진정한 변화가 와야 한다는 게 우리 국민의 생각"이라며 "금년이 북한도 변화를 가져올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금년 한 해가 북한에 세계 모든 나라가 변화를 촉구하고, 북한도 지금 변화하는 게 여러 면에서 좋은 적기"라며 "진정한 대화가 이뤄지기를 바라고 한국은 그러한 자세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 등 북측의 도발에 대해 "적절히 형식적으로 지나가고 도발하면 수습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남북 대화를 통해서 대화를 유지하고 양국이 공동 번영할 길이 없겠는가 하는 게 국민의 생각"이라며 "국민은 어떤 도발이 있을 때는 강력히 대응하고, 한편으로 남북이 평화를 얘기할 수 있는 두 트랙(Track)의 길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우리 대통령이 말하는 남북대화는 '남북정상회담'까지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북한은 지난 1월에 금강산 관광회담, 적십자회담, 군사고위급회담 등 남북대화를 제의해왔다. 이에 따라 2월 8일~9일에는 판문점에서 남북군사실무회담이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월 2일 李대통령 신년 좌담회에서 북한의 진정성 있는 자세 변화의 단초를 발견하고 나아가 남북 정상회담도 생각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패널의 물음에 "그렇다. 그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정상회담도 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조심스럽긴 하나 남북 간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물밑접촉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여건이 성숙되면 언제든지 정상회담을 개최할 의향이 있다는 신호를 북한에게 계속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스런 것이 있다. 그동안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무력도발을 해왔기 때문이다. 살펴보자. 북한은 우리 정부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2002년 6월 29일에 제2연평해전을 도발했다.
우리 통일부장관을 대표로 하는 대통령 특사가 2002년 4월 3일~4월 6일 간 평양을 방문했다. 우리 대표단은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제2차 남북 정상회담과 국방장관회담 개최, 개성공단 건설, 남북철도·도로 연결 등'을 김정일에게 요구했다. 김정일이 대부분 우리의 요구에 합의했다. 정상회담의 개최 장소에 대해서만 서로 이견이 있을 정도로 진척되었다.
김정일이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우리 정부는 김정일의 서울답방을 고수하다가 2002년 4월 22일에 "조기에 정상회담을 갖자는 데 동의하며, 개최시기는 6월 하순에서 7월 중순 사이가 좋겠으며, 장소는 판문점 우리 측 '평화의 집'으로 하자"고 북한에 제안했다. 북한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의 회신을 보내왔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그렇게 경색된 것은 없었다. 2002년 4월 말 금강산에서 제4차 이산가족(849명) 상봉이 실현되었고 대북 비료지원(20만 톤)도 5월 말까지 제공됐다. 그리고 금강산 관광사업, 제주도 도민 250여 명의 방북(5.10~15), 한민족복지재단 대표단 방북, 6.15 공동선언 2주년기념 남북공동행사(금강산) 등의 민간교류와 북측에서도 경수로 안전통제요원 25명의 방한교육(7.2~28) 등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도발했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2009년 11월 10일 대청해전을 도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8월 15일에 8.15경축사를 통해 '이제는 대화할 때'라며 북한 당국에 대화 재개를 간곡히 촉구했다.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언제, 어떠한 수준에서든 남북 간의 모든 문제에 대해 대화와 협력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분명히 밝혀두는 바입니다"라고 정상회담도 개최할 수 있다는 의지를 밝혔다.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당시 서울을 방문한 북한의 조문단(김기남 비서)이 2009년 8월 23일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했다. 여기서 김기남 비서가 "관계개선이 진전되면 정상 간 회담이 가능하다"는 김정일의 의향을 전달하면서 남북 간의 대화가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우리 노동부장관과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10월 17일~18일 싱가포르에서 회담, 2009년 특정일에 정상회담을 갖기로 기본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10월 중순에는 한국 내 정상회담 TF팀의 실체가 부상하기도 했다. 이런 기조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1월 29일 영국 BBC방송 회견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연내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본다"며 연내 정상회담 가능성을 밝혔다. 우리가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임을 간파한 북한은 연속적으로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은 2009년 11월 10일 대청해전 도발, 2010년 1월 27일~29일 서해NLL 근해 해안포 대량발사, 3월 26일 천안함 폭침 등 도발했다.
이를 통해 보면 우리의 대북지원에 관계없이 우리가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일 때 북한은 무력 도발함을 알 수 있다. 김정일 집단이 얼마나 우리를 우습게보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사례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 추진시기에 무력 도발하는 이유는?
북한이 아무리 큰 도발을 해도 한국군이 강력히 대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상 우리 군과 정부는 혹시 정상회담이 도중에 깨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강력한 교전규칙 적용, 자위권 발동, 대북 강경성명 발표 등을 하지 못한다.
제2연평해전에서 우리 고속정(PKM-357정)이 침몰하고 장병 6명 전사, 19명이 부상했으나 우리 정부는 대응응징을 하지 않았다. 대청해전 당시에도 도발한 敵함정(PCS-383정)을 추격하여 충분히 격침할 수 있었는데도 반파상태로 돌려보냈다. 우리 군은 2010년 1월 해안포 사격과 3월의 천안함 폭침 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 북한은 제3차 핵실험 준비, 대포동 탄도탄 발사 준비와 서해5도를 대상으로 한 기습상륙훈련을 하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 공히 북한이 곧 무력 도발해올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통합방위협의회 의장)는 2011년 2월 18일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제44차 중앙 통합방위협의회의에서 인사말을 통해 "최근 안보상황을 볼 때 안보의식 결집과 통합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며 "북한이 처한 상황을 볼 때 또다시 무력도발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부와 민간이 적극 협력해 위기대응능력을 보완할 방안을 계속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 북한의 도발행태를 알고 제대로 대비해야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정부답고 군인은 군인다워야 북한이 우리를 가볍게 취급하지 않을 것이다.(konas)
김성만(예비역 해군중장. 성우회/재향군인회 자문위원, 전 해군작전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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