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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통일을 주도한 제3당 自民黨 이야기

조갑제, “한국에 독일의 자민당과 같은 제3당 만들어 통일 주체세력 돼야”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1-07-05 오전 6: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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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자민당과 같은 한국판 자민당이 대한민국 정통세력의 힘을 모아 종북세력을 척결하고 자유통일 주체세력을 길러내는 역사적 임무를 져야 된다”

  4일, 종로구 문화일보 홀에서 열린 제 177회 조갑제 기자의 ‘현대사강좌’에서 조 대표(조갑제닷컴 대표)는, “제3당으로 통일을 주도한 독일 자민당의 경우처럼, 한국 정치도 자유민주주의에 투철한 이념과 정책을 가진 이념정당의 출현이 요구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 종로구 문화일보 홀에서 열린 제 177회 조갑제 기자의 ‘현대사강좌’에서 조 대표는, “제3당으로 통일을 주도한 독일 자민당의 경우처럼, 한국 정치도 자유민주주의에 투철한 이념과 정책을 가진 이념정당의 출현이 요구된다"고 말했다.ⓒkonas.net

 조 대표는 1989년 11월9일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기 2주전 노태우 대통령을 예방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독일 통일은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며, 단계를 밟을 것이고, 유럽통합과 같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며 통일의 시기는 예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독일 통일의 주역으로 서독의 콜 수상과 자민당 출신 한스-디트리히 겐셔(Hans-Dietrich Genscher) 외무장관, 제3당인 자민당의 역할을 강조했다.

 조 대표는 “독일 자민당은 개인의 자유 존중과 시장경제 원리를 철저히 신봉하지만, 통일에 있어서는 친서방정책에 기준을 두고 구소련, 동유럽, 동독과 활발한 접촉을 하는 등 일종의 화해정책을 썼고, 젊은층의 지지가 높다고 정책을 설명했다.   

 이어 “독일(서독시절 포함)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자민당이 정권을 잡지 못한 경우는 단 두 번 뿐으로, 연정을 통해 항상 정권에 참여했기 때문에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통일정책이나 대북정책에 있어서의 일관성 유지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조 대표는 독일 통일의 주역인 겐셔 외무장관에 대해 “1972년에서 1994년까지 16년간 서독 외무장관직(2년간은 내무장관)을 맡았으며, ‘反인도주의범죄’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쓸 정도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인권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 인물”로 설명했다.

 때문에 겐셔는 인권의 핵심을 “사람들이 가족을 방문할 수 있는가, 이산가족이 재결합할 수 있는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결혼할 수 있는가” 등의 문제로 보고 동방정책에서도 ‘인권’을 최우선정책으로 여겼던 것이다.
 
 겐셔의 인권에 대한 이런 인식에 대해 조 대표는 “남북관계의 인권정책도 이산가족끼리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가, 만난 뒤 같이 살 수 있는가로 그 성과를 측정해야 한다”며,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단 한 가족도 같이 살게 된 경우가 없는 이산가족 상봉은 가족 고문이자, 이는 정책이 아니라 쇼이며, 이런 동물원 쇼를 벌인 연출자가 노벨평화상을 받고 언론은 이를 과장보도 했다”고 화해협력으로 위장한 이산가족 상봉방식을 비난했다.

 덧붙여 “겐셔의 기준으로는 김대중-노무현-민노당-민주당식 화해협력 노선은 가짜”라며 이들은 인권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조 대표는 통일 전 서독은 2차대전 전범국가로서, 통일을 이야기하면 주변국들로부터 견제를 당하고, 통일을 말하지 않으면 분단이 고착되는 외교환경 속에 있었지만 그 좁은 길을 통과하면서 통일에의 열정과 전략을 일관되게 관리한 것이 자민당과 겐셔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서독의 대동독정책 중에서 가장 큰 정책은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하는 것”으로, “통일 이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서독은 1962년부터 89년까지 동독이 억류한 정치범 3만 4천여 명과 그 가족 25만여 명을 돈을 주고 서독으로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일을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고 민간인을 내세워 추진했으며, 현금 대신 물건으로 줘 실질적인 통합을 유도했고, 이런 사실을 당시 서독 언론은 알면서도 보도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조 대표는 소련 패망의 원인을 1975년의 헬싱키 선언에서 찾았다. 헬싱키선언에서 독일은 국경선의 현상유지를 존중하는 대신 인권보호 등의 원칙을 공개적으로 천명함으로써, 소련내 반체체 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고 이것이 결국 공산권 자멸의 씨앗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헬싱키 선언을 만들어내는 다자간 협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겐셔 외무장관이고 그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한 게 자민당이었다”고 설명했다. 늘 제3당이던 자민당의 선명한 이념무장과 겐셔라는 출중한 정치가 덕분에 기민당과 함께 독일통일의 주도세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줄곧 제3당을 유지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에 투철한 이념과 정책으로 독일통일의 주체세력이 된 자민당과 겐셔의 사례를 통해, 조 대표는 오늘의 한국 정치상황에서 독일 자민당과 같은 이념정당의 출현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 우파이념당이 대한민국 헌법에 담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민주주의 및 시장경제라는 국가 정체성을 양보할 수 없는 핵심 가치로 삼고 자유통일을 지상의 목표로 설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반헌법적 종북이념으로 무장한 민노당이 민주당을 왼쪽으로 끌고 가고, 한나라당은 그 민주당에 끌려가는 게 작금의 한국 정치상황”이라며, “한국판 자민당이 나오면 30%의 골수 보수층의 지지로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3당은 무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한국판 자민당의 출현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한나라당일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내년 총선에서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자민당이 20여석을 차지하게 되면 한나라당이 자민당의 협조를 받아야 국회를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으며, 좌경화한 민주당도 오른쪽으로 끌고 올 수 있고, 민주당과 민노당이 과반수에 미달한 다수의석을 가질 경우 자민당의 협조를 받기 위하여는 종북노선을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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