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사태에서 본 북한 급변사태
3월 11일 태평양에 면한 일본 동북지방은 북태평양에서 일어난 규모 9.0의 강진(동일본 대지진)과 뒤이어 밀려온 초대형 지진해일(쓰나미)로 순식간에 초토화됐다. 2만 335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고, 17조엔(약 200조원)이 넘는 재산피해를 보았다. 추산조차 할 수 없는 피해도 있다. 도쿄(東京)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 제1발전본부에서 일어난 원전 네 기 폭발 사고로 인한 피해다. 이 폭발로 54기이던 일본의 원전 수는 순식간에 50기로 줄어들었다.
원전은 전기를 생산하는 곳이지만, 원전을 돌리려면 전기가 있어야 한다. 원전을 비롯한 발전소는 한마디로 전기를 사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보면 된다. 원전은 핵연료에서 나오는 막강한 열로 물을 끓이고, 끓는 물에서 나온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따라서 증기로 변하는 만큼의 물을 계속 원자로에 공급해줘야 하는데, 이를 전기로 강력한 모터를 돌려 원자로에 물을 보급해줘야 한다. 이런 이유 등으로 원전은 상당한 양의 외부 전기를 사용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제1발전본부로 들어오던 거대한 철탑들과 이 철탑들을 통해 후쿠시마 제1발전본부에 전기를 보내주던 변전소들이 일제히 무너짐으로써 시작됐다. 순식간에 후쿠시마 제1발전본부는 모든 외부전원을 상실한 것이다. 대지진의 위력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휴대전화 기지국은 물론이고 유선 전화 통신시설도 일제히 무너뜨렸다. 산 사람은 살았지만 사람이 살기 위한 기반 시설이 일시에 무너진 것이다. 어디에서 무엇이 무너졌는지조차 파악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였다.
그런데도 후쿠시마 제1발전본부의 원전들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내진 설계보다 1.25배 강한 지진을 만났지만 견뎌낸 것이다. 겉은 멀쩡해도 속은 심각하게 다칠 수 있다. 전속력으로 달리다 넘어지면 외상은 무릎이나 얼굴을 까이는 정도이지만, 뱃속의 내장은 넘어질 때의 충격으로 꼬이듯이 아픈 경우가 있다. 달리던 육상 선수들이 넘어지면 영 힘을 쓰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달리는 데 전력을 기울이다 갑자기 넘어져 내장이 크게 울렸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제1본부의 겉은 멀쩡했지만 내부는 분명 심각히 흔들렸다. 지진은 변전소와 철탑만 무너뜨린 게 아니라 원전 안으로 들어가는 개폐기도 정지시켰다. 하지만 다른 시설들은 충격은 받았지만 무너지거나 끊어지진 않았다. 외부전원이 차단되면 원자로로 물을 공급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대지진이 일어나는 순간 핵연료를 자동으로 핵분열을 멈추지만, 핵연료는 물을 펄펄 끓일 수 있는 여전히 뜨거운 상태다. 따라서 증기로 변하는 만큼의 물을 공급해줘야 한다. 물 공급이 끊어지면 원자로 안의 물이 줄어들어 핵분열을 멈춘 핵연료의 윗부분이 물 밖으로 드러난다.
이렇게 되면 핵연료는 열을 식히지 못해 더욱 뜨거워지다 스스로 녹아내리는데 이것이 원전 사고 중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하는 핵연료 용융(鎔融, melt down)이다. 녹아내린 핵연료는 원자로 바닥으로 내려가는데, 워낙 뜨겁다 보니 원자로 바닥을 녹여 구멍을 내고 원자로 밖으로 나간다. 원자로에 구멍이 뚫리면 물은 순식간에 쑥 빠져나가, 녹지 않았던 핵연료 아랫부분도 녹아내린다.
핵연료는 연료봉이라고 하는 긴 금속 원통 안에 들어가 있는데, 이 원통을 지르코늄이라는 금속으로 만든다. 핵연료가 녹으면 지르코늄도 함께 녹는데, 액체 지르코늄이 물이나 수증기와 만나면 수소가 만들어진다. 수소는 가장 가벼운 기체이기에 원자로를 싸고 있는 건물 가장 윗부분으로 올라간다. 이러한 수소가 전체 공간의 7~8%를 차지하면 갑작스러운 폭발이 일어난다. 이름 하여 ‘수소폭발’인데, 이 힘은 매우 강력해 원자로를 둘러싼 건물을 날려버린다. 후쿠시마의 네 기 원전은 이런 이유로 폭발한 것이다.
외부전원 상실이 이러한 사고를 초래한다. 따라서 원전에서는 외부전원을 잃었을 때를 대비한 비상전원을 반드시 준비해놓는다. 디젤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얻는 비상발전기가 그것이다. 후쿠시마 제1발전본부는 여섯 기의 원전마다 두 기씩, 그리고 전체를 위한 대비로 두 기를 더 준비해 도합 14기의 비상발전기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이 비상발전기들은 대지진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고장나지 않았다. 후쿠시마 제1발전본부는 대지진으로 외부전원이 끊기자 비상발전기를 가동해서 얻은 전기로 자동으로 가동을 중단한 원자로에 물을 공급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40여분 뒤 산더미 같은 물 폭탄이 몰려들면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됐다. 후쿠시마 제1발전본부는 그곳으로 올 수 있는 쓰나미의 최대 높이를 5.7m로 상정하고 해발 10~13m쯤에 여섯 기의 원전을 지어놓았는데, 15m 높이의 쓰나미를 맞은 것이다. 비상발전기는 매우 크고 돌아가면 큰 진동을 내기에 후쿠시마 제1발전본부는 터빈 건물 지하에 공간을 만들어 비상발전기를 넣어놓았다. 덕분에 15m의 쓰나미가 덮치자 모든 비상발전기가 침수됐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어 6호기에서 한 대의 비상발전기는 살아남았다.
이렇게 되니 원자로에 대한 물 공급이 중단돼 원자로가 과열되다 핵연료가 녹아내려 원자로에 구멍을 내고, 발생한 수소가 건물 윗부분에 모여들었다가 거대한 폭발을 한 것이다. 6호기는 비상발전기가 살아 있었기에 화를 면했고 5호기는 6호기와 전기계통이 연결돼 있었기에 6호기 비상발전기를 이용해 역시 폭발을 면했다. 그러나 1,2,3,4호기는 전기 상실 만 하루가 지나자 차례로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로 인해 건물이 무너지자 건물 안에 갇혀 있던 방사성 물질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일본은 후쿠시마 제1발전본부 반경 30km를 ‘경계구역’으로 지정하고 이곳에 사는 사람을 모두 30km 밖으로 소개시켰다. 소개하지 못하는 가축은 방사능에 오염돼 식용으로 쓸 수 없으니 모두 죽여야 했다. 쌓아놓은 농산물도 모두 폐기처분했다. 그러나 하늘을 날아가는 새와 산속에서 생활하는 산짐승은 어쩔 수 없었다. 새떼와 산짐승이 방사능에 오염된 가축의 사체와 농산물을 먹지 못하도록 일본 정부는 소각하거나 묻는 일을 서둘러야 했다.
이 피해는 누구도 계산하지 못한다. 반경 30km 밖으로 나간 사람들은 생업을 잃었으니 도쿄전력을 상대로 피해보상 소송을 낼 수밖에 없다. 통제기간이 길어질수록 피해보상 요구 금액은 눈더미처럼 불어날 것이니 일본 최대의 발전회사인 도쿄전력은 파산을 당할 수도 있다. 도쿄전력의 위기도 피해액에 포함돼 있지 않다. 때문에 일본의 지식인들은 원자폭탄 두 발을 맞고 패전한 1945년 이후의 일본 사회가 ‘전후(戰後) 시대’였다면 엄청난 재해 피해로 일본이 휘청이게 된 지금은 ‘재후(災後) 시대’라고 말한다.
재후시대이지만 재난을 입지 않은 여타 지역은 멀쩡히 돌아간다. 도쿄는 물론이고 오사카 쿄토 나고야 기타큐슈 등 대지진과 쓰나미를 정면으로 받지 않은 지역은 과거와 다름없이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는 여름을 넘겼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처지가 말이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놀란 일본 정부와 자치단체들은 일제히 나머지 원전에 대한 안전 점검에 착수했는데, 그로 인해 살아남은 50기 중 12기만 돌아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니 전기가 크게 부족해져 많은 지역에서 제한송전이 이뤄졌다. 올 여름 일본의 주요 백화점과 회사들은 냉방 온도를 높여야 했다. 불필요한 점등과 눈요기를 위해 켜놓은 조명도 스위치를 내려야 했다. 일본은 콧대가 센 나라다. 1995년 고베(神戶)대지진이 일어나 고베 시가 초토화됐을 때 일본은 한국이 제공한 생수 수납을 거부했다. 이유는 한국 생수는 일본이 정한 식품안전규정을 통과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철저한 일본이 이번에는 한국의 도움을 수용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4월 27일 도쿄 인근인 치바(千葉)현에 있는 아네가사키(姉崎)발전소에서 있었던 한국이 제공한 이동식발전설비 가동식이었다.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이 발전소는 화전(火電)으로 생산한 전기를 도쿄 인근에 공급한다. 그런데 전력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한국 정부와 한국의 현대중공업이 무상으로 제공한 이동식발전설비를 도입해 추가 전원으로 가동을 시킨 것이다. 한국이 무상 제공한 발전설비를 받아들여야 할 만큼 일본은 급했던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오래 전부터 이동식발전설비를 제작해왔다. 이 설비는 컨테이너 박스 안에 디젤발전기를 넣은 형태다. 따라서 배에 실어 전세계 어느 곳이든 제공할 수가 있다. 발전소를 지을 수 없거나 긴급해 전원을 확보해야 하는 곳에선 환영받을 수밖에 없는 설비다. 2007년 현대중공업은 아이티에 이 설비를 제공했는데, 2010년 아이티는 규모 7.9의 지진을 만나 초토화됐다. 그러나 컨테이너 박스 안에 들어 있는 이 설비는 피해를 입지 않아 계속 전기를 공급했다. 2010년 칠레 대지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발전소는 그 나라 사정에 맞게 지어주는 ‘맞춤형’이다. 따라서 발전소를 짓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설비는 어느 나라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만들어둔 ‘기성품’이다. 현대 중공업은 22개국에 1천여 기를 수출했다. 때문에 이 설비는 2006년 산업자원부로부터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산국가인 쿠바는 이 설비에 매료돼 카스트로의 지시로 쿠바 화폐 도안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이러니 전기가 부족한 일본 처지에서는 안성맞춤의 설비가 된다. 무상원조는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이 일본 사정을 헤아려 김황식 국무총리에게 제의함으로써 성사됐다.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어 이동식발전설비의 일본 제공을 결의하고 정부가 3분의 1, 현대중공업이 3분의 2의 비용을 대기로 했다. 일본은 이러한 결정을 대환영했다. 현대중공업은 필리핀에 수출하기 위해 제작을 마친 이동식발전설비를 필리핀의 양해를 받아 일본에 먼저 공급해주게 되었다.
이 설비는 4월 1일 아네가사키 발전소에 도착했는데, 아네가사키 발전소 측은 한글로 ‘한국의 지원에 감사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한국의 대일본 지원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핵연료는 가동을 중단했더라도 중성자가 있으면 다시 핵분열을 한다. 따라서 정지시킨 핵연료가 들어 있는 물에는 중성자의 움직임을 막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붕소가 필요하다. 붕소는 중성자를 잡아먹는 성질을 갖고 있다.
후쿠시마 제1발전본부에서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나자, 도쿄전력은 간신히 복구한 전원을 이용해 추가 사고를 막는 조치에 들어갔다. 물을 공급해 핵연료의 온도를 떨어뜨린 것인데, 이때 핵연료가 다시 핵분열을 하는 것을 막으려면 물에 붕소를 섞어야 한다. 도쿄전력은 붕소가 바닥났기에 한국수력원자력에 도움을 요청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사실인데, 아시아 최대의 원전 회사는 한국의 한국수력원자력(21기)이고 다음이 일본의 도쿄전력(17기였는데 사고로 4기를 잃었으니 지금은 13기)이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52.6t의 붕소를 긴급지원해주고 작업자들이 사용할 방사선 방호용 필터와 방호복을 제공했다.
한국형 원자로를 제작하는 두산중공업의 자매회사인 두산인프라는 방사선에 오염된 후쿠시마 원전 안에서 작업할 로봇을 제공했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러한 지원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일본은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는 혼자서 해결할 능력이 있다. 그러나 방사선 사고는 한계가 있기에 한국의 지원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보면서 생각해야 할 것은 북한 급변사태 상황이다. 북한에서 정변이 일어나 한국군 등이 북한에 들어가 안정화 작전을 하게 된다면 영변을 비롯한 북한 전역에 있는 북한 핵시설의 안전한 확보가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이 작업은 방사선을 뚫고 해야 하는 것이니 많은 방호장비가 있어야 한다. 후쿠시마에서 네 기의 원전이 폭발한 것과 같은 상황에서 일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후쿠시마 사고를 철저히 연구해 북한 급변사태 때 북한 핵시설을 안정화하는 대책을 세우는데 활용해야 한다.
유사시 북한에서 사용될 붕산 양은 얼마이고 로봇은 어떤 성능을 가진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그리고 방호복과 필터의 양은 얼마나 될지를 국자적인 차원에서 미리 계산해놓고 있어야 한다. 인력에 대한 준비도 하고 있어야 한다.
북한 안정화를 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전기다. 한국에서 전봇대를 세워 북한 주요 됫에 전기를 공급하는 것은 단시간에 이뤄질 수가 없다. 현대중공업에서 제작하는 이동식발전설비를 배에 싣고 들어가 바로 발전해 전기를 공급해야 한다. 이러한 설비를 남포와 해주 원상 나진 신의주 등 주요 항구에 얼마나 공급할지 미리 계산해놓을 필요가 있다.
후쿠시마 사고를 얄미운 이웃이 당한 아픔, 우리가 처음으로 도와준 사건으로만 알고 넘기는 것은 교만의 극치다. 세상을 돌고 돌기에 유사한 아픔을 우리가 겪을 수도 있다. 후쿠시마 사고를 토대로 우리는 북한 급변사태와 연결시켜 통일이 이뤄지는 시기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 양을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는 지혜를 살려야 한다. 후쿠시마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다.(konas)
이 칼럼은 '월간 자유' 10월호에 게재된 내용임.
이정훈 (전 월간조선, 신동아 기자)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