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호 총참모장 전격 교체의 의미
북한군 총참모장 리영호(69) 차수(次帥, 2010.9 진급)가 2012년 7월 전격 해임(解任)되었다. 북한은 7월 15일(일) 당 정치국회의를 열어 해임을 의결하고 다음 날 아침 6시 “리영호를 신병 관계로 정치국 상무위원, 정치국 위원,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인민군 8군단장 출신인 현영철(61) 대장(2010.9 진급)을 7월 17일 오전 차수로 진급시켜 총참모장에 임명했다. 그리고 북한은 7월 18일 정오 중대보도를 통해 김정은(28)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공화국 원수’ 칭호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북한군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발 빠르게 대응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7월 16일 저녁 “리영호의 해임 배경에 대해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며 “북한에 대한 감시태세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7월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소집해 북한의 동향을 점검하고 “북한의 동향을 계속 예의주시하면서 관련국들과도 긴밀한 협력을 유지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회의는 최근 북한이 총참모장을 경질한 배경과 북한내부 권력동향,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등을 점검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소집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승조 합참의장은 7월 20일 국방부 기자실을 방문해 리영호 총참모장의 해임에 대해서는“리영호가 실각한 것은 북한 발표대로 건강 이상이나 공적, 사적인 실수, 권력 갈등 등 여러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해임은 김정은의 권력 장악 과정에서 이미 예견된 수순이다. 이런 조짐은 김정일 장례식(2011.12.28)이 끝난 직후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정은은 김정일 영결식에서 운구차를 걸어서 호위하는 8인에 포함된 실세 군인(군복) 4명을 교체하기 시작했다. 리영호 총참모장, 김영춘(76, 차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차수)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70, 대장)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다. 김정일이 김정은으로의 세습을 원만히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요직에 배치한 인물이다.
그런데 지난 4월 제4차 당대표자회를 전후해서는 우리의 국정원장격인 우동측이 김원홍으로, 국방장관 격인 인민무력부장 김영춘이 김정각으로 교체되었다. 인민군을 사상적으로 지도·감시하는 군 총정치국장(조명록 차수 사망으로 공석)에 당 관료출신인 최룡해(62)가 임명되었다. 최룡해 대장(총정치국장)은 2012년 4월 7일 차수로 진급하고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임명됨으로써 리영호와 같은 직위가 되었다.
그리고 4월 15일 태양절 열병식주석단에서 최룡해가 김정은 바로 옆에 위치함에 따라 리영호보다 서열이 높아진 것이 확인되었다. 김정일 장례위원 서열18위가 서열4위(리영호)를 4개월 만에 앞선 것으로 파격적이다. 신임 현영철 총참모장은 장례위원 서열77위였다.
그리고 휴일에 해임을 결정하고 바로 다음날 이른 아침에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총참모장이 갖는 위상 때문이다. 인민군 총참모부는 우리의 합참에 해당한다. 통합군제(統合軍制, 총사령관제)를 채택하고 있는 북한에서 총참모장 권한은 우리 합참의장에 비해 상당하다. 우리의 국방장관 격인 인민무력부장(현역)보다 서열이 높다. 총참모장은 육·해·공군과 미사일부대를 작전 지휘한다. 통상 통합군제에서 총참모장은 언제든지 쿠데타 등으로 정권을 유린할 수 있는 위치다. 그래서 군부의 동요를 방지하기 위해 김정은이 하루 전에 평양을 비롯한 주요 부대에 ‘유동(이동)을 금지하고 대기 상태로 있어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자유북한방송이 7월 18일 보도한바 있다.
김정은이 이들을 조기에 교체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군부 건의로 추진한 대남 및 대외정책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2009년 1월 초에 사실상 후계자로 내정되어 바로 강경책을 구사했다. 중요한 것만 열거하면: 대남(對南)전면대결·서해NLL 무효화·남북정치/군사 합의사항 무효화 선언(2009.1), 대포동 2호 발사(2009.4.4, 3600km비행 태평양상 착탄), 중/단거리 탄도탄 21발 발사(2009.4~6), 2차 핵실험(2009.5.25), 우라늄농축 성공 발표(2009.9.3), 임진강 수공(水攻)작전(2009.9.6), 대청해전 도발(2009.11.10), 서해5도 인근 NLL수역을‘평시 해상사격구역’으로 설정(2009.12.21), 서해5도 NLL에 해안포(장사정포 포함) 대량사격(2010.1.27~29), 천안함 폭침(2010.3.26), 백령도/연평도 영해에 해안포 사격(2010.8.9), 연평도 무차별 포격(2010.11.23), 용매도 해안포 포격도발(2011.8.10), 대포동 2호 탄도탄 발사(2012.4.13. 실패)와 사이버전/전자전(디-도스, GPS교란), 한국 언론기관 폭파위협 등이다.
이런 일들로 인해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더욱 고립되어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2012년을‘강성대국 완성의 해, 연방제 통일의 해’로 선포하고 준비해왔으나 아직까지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한미연합군사령부 해체(전작권 전환)가 2012년 4월에서 2015년 12월로 연기되고 한미동맹이 강화되었다. 한국 국민의 대북경계심도 높아졌다. 그동안 북한은 서해5도 무력점령 연습을 수차례 했으나 정작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을 통해 정치·군사적 목적(서해5도 점령 등)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리고 가장 큰 손실은 대미정책에 실패한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선(2008.11) 직전에 2012년 상반기를 목표년도로 해서‘북 핵 폐기·미북 수교·종전선언·한반도 평화체제’를 달성한다는 대북정책 로드맵을 완성했다. 한국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난동시위 격화(2008.4~8)로 인한 반미감정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6월 22일에 개최된 제주평화포럼에서“반세기를 넘어온 정전체제도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북핵문제가 진전돼 6자 외무장관회담이 성사될 경우 종전선언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정부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종전선언(평화협정)’은 전쟁의 완전한 종결을 약속하는 협정으로 주한미군의 전면철수가 이루어진다. 북한이 그토록 원하는 바다. 그런데 북한은 2009년 1월에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의 실무자들이 진용을 갖추기 전에 성급하게 탄도탄 발사와 핵실험으로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 시점에서 김정은이 어떤 정책을 추진할 것인가가 궁금하다. 최근 김정은의 인민생활 향상에 대한 강조, 민생 현장지도의 증가 등을 들면서 과감한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러나 북한 경제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조기에 성과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김정은은 군사력과 선군정치를 바탕으로 대남도발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일은 과거부터 서해5도만 장악해도 북한인민 생활의 질을 10%이상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그리고 김정은은 2009년부터 서해5도 무력점령 합동상륙훈련에 빠짐없이 참관했다. 최고사령관으로 등극이후 4군단 해안포대(2012.2.26)에서 서해5도를 관측하고 판문점(3.4)을 방문했다. 새로 부임한 변인선 4군단장은 3월 6일 “사실 연평도 포격전 때에는 몇 문의 포가 사격을 진행한데 불과하다.
그러나 이번에 군단 안에 수천 문의 포들이 동시에 문을 열면 적들의 아성은 불바다가 될 것이다”라고 협박했다. 그리고 연평도 포격주범인 김격식 대장(포격당시 4군단장)의 노동신문(2012.7.19)기고 충성맹세문을 강조한 것에 유의해야 한다. 그는 대표적인 대남강경파이다. 그리고 핵무기를 보유한 지도자는 통상 무력도발을 쉽게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런 점에 유의하여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konas)
김성만 (예비역 해군중장. 재향군인회 자문위원, 전 해군작전사령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