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토(疆土) 불멸의 전쟁영웅을 기리며!
빗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겨우 빗방울을 피할 듯한 작은 텐트 안으로도 빗물이 방울져 내리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피어오르는 향불은 불어오는 바람결에 너울너울 춤을 추며 그윽한 향을 뿌려대고 있었다.
제15호 태풍 ‘볼라벤’(BOLAVEN)이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과 서해지방을 휩쓸고 지나가자마자 이번에는 강한 비를 대동한 14호 태풍 ‘덴빈’(TENBIN)의 기세 등등으로 서울에 빗줄기가 장대하게 쏟아지던 8월30일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 한켠에서는 한 무리 노병(老兵)들이 삼삼오오 둘러 앉아 향불을 지피며 묵상에 잠겨 있었다.
이제는 지팡이에 의지해야할 정도의 쇠약해진 80 중반의 나이로 변모했지만 62년 전 청년시절 당시를 회고하며, 노병의 기억 속에서 쏟아지는 전투 무용담은 바로 엊그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고 강렬함을 더해주었다.
필자는 이 날 서울현충원 장교묘역 한편에 위치한 ‘1950년도 현지 임관 전사자 추념비’ 앞에서 열린 ‘50동우회 전몰 동우’ 추모식에 참석했다.
돌이켜 보면 1950년 이 강토 야전 전투현장에서 적과 혈전(血戰)에 혈전을 거듭하는 아군 초급장교들은 가장 많은 희생과 값진 전사(戰死)로 조국의 제단위에 꽃다운 젊음을 바쳐야 했고, 소-중대장 등 초급장교들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었다.
하여 국방부는 전투현장에서 가장 우수한 고급하사관과 준사관 중에서 현장 지휘관의 추천을 받아 육군소위로 현지임관 시켜 부족한 초급지휘자(관)를 메워 전선에 임하게 했다. 그들이 바로 현지임관 장교들이며, 이 날 현충원에서 추모제를 지내는 노병들은 1950년 임관한 ‘50동우회’ 회원들이었다.
이들 ‘50동우회’ 장교들은 1950년 8월30일 첫 현임(現任)과 동시에 곧바로 현지 실병지휘에 임해 도처에서 육탄전과 육박전, 혈전으로 사투를 계속하며, 지휘 공백을 메워 전투부대의 질서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북한 김일성의 불법 6․25 남침으로 아군의 전선이 무너짐에 따라 1950년 7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6개월 동안에 걸쳐 현지 임관된 이들 ‘50동우회원’은 전투병과 1,932명을 포함해 모두 2,625명이 임관돼 최일선 전투부대에 배치돼 부족한 지휘공백을 메우며 위기상황을 극복하기에 이르렀다.
현임 장교들은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1953년 7월27일 휴전 직전까지 단 한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해 유리한 작전지역으로 이끌기 위해 ‘피의 능선’ ‘저격 능선’ ‘백마고지’ ‘철의 삼각지’ ‘수도고지’ ‘금화지구 전투’ 등 수많은 격전지에서 피를 토하며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생사를 넘나드는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
결과 전사 416명, 실종 123명, 부상 278명 등 3년에 걸친 전투손실은 817명으로 전체 임관자의 3분의 1 희생이라는 거룩하고 청사에 길이 빛날 대한민국의 존재감을 살신성인의 희생으로 대신한 이 땅의 진정한 영웅으로 우뚝 섰다.
현임 장교 중에는 지난 5월 국가보훈처에 의해 ‘5월의 전쟁영웅’으로 헌정된 베티고지의 영웅 김만술 소위와 6·25 전쟁 중 우리 군이 마지막으로 승리한 425 고지 전투를 이끌었던 김한준 대위가 군인의 최고 영예인 태극무공을 수상했으며, ‘50동우회’ 회원 전원이 무공수훈자로 훈장을 수상함은 이들이 6․25전쟁기간 어떻게 이 나라를 지켜 왔는가를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풍전등화(風前燈火), 무너져가는 조국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놓고 조국을 지켜낸 이들 노병들에게 어찌 무공훈장 하나가 그렇게 큰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으로 국가가, 후손이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만 아직도 유해마저, 흔적마저 찾지 못하는 아픔은 또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못다한 이런 일들과 더불어 이제는 우리가 적극 생존해 계신 이분들을 떠안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동네에서도, 지자체에서도, 국가에서도, 기성세대의 어른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 전쟁영웅들의 고귀한 희생이 오늘의 이 대한민국에 어떤 밀알이 되었는지를 일깨워 분명히 깨닫게 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또 다른 과제이기도 하다. 말로만 하는 보훈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노후를 보장케 하는 무언가가 추진되어야 한다. 명예와 함께 복지 혜택이 있게 해야 한다. ‘필요조건의 복지’라는 의미 없는 투자가 아닌 ‘필요충분조건’의 진정한 복지의 수혜가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날 동우회원들은 필자에게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6․25때는 아무것도 없는 군비상태아래서도 오직 전의(戰意)하나만은 절대 우위에 있어 혈전 사투로 낙동강 최후 방어에 성공했다면, 지금은 병력과 장비면에서도 북한군에 우세하다고 보나, 과연 전의(戰意)는 어떠할지, 우리 참전 노병들은 오직 우국충정(憂國衷情)의 그것만이 걱정입니다”라고.
추모제가 끝나고 이젠 돌아가야 할 시간임에도 빗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평균연령 85세에 전체 임관 2,625명 중 260여명의 회원밖에 생존해 있다는 이들. 이 날 추모식 참석회원들은 많아야 20여명이었다. 62년의 세월은 이 영웅들을 마냥 붙잡아 두고 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돌아서는 길, ‘1950년도 현지 임관 전사자 추념비’ 비문에는 이런 헌시(獻詩)가 빗물 속에서도 아롱지고 있었다.
‘임들은 나라의 부름을 입어 용약 창군하고,
순국으로 침략을 막아 청사에 그 충의를 새기니
오늘은 겨레의 번영 내일은 조국의 통일을 보리라‘
(konas)
이현오 코나스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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