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철도풍경
민족의 고유명절인 추석이 다가 온다.
평양에서 29년 살았던 내가 서울에 와서 첫 추석을 맞고 놀랐던 것은 ‘추석’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부르는 것이었다.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 ‘생일’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지칭하는 것과 너무나 비교돼 한동안 벙벙했다.
근대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봐도 최고지도자 개인의 생일을 ‘국가명절’로 지정한 나라는 세계에서 북한이 유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1년 내내 흘린 고생의 땀으로 얻은 수확의 고마움을 조상에게 먼저 전하는 추석의 의미는 반세기 넘게 갈라져 있어도 남이나 북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
북한도 요즘 추석을 가리켜 한가위란 말을 사용한다. 추석에는 조상의 산소를 찾아 제사상을 차리고 성묘를 하는 전통을 중요히 여긴다.
주민들은 가족 단위로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평상시에는 만날 수 없었던 친척도 이때 만날 수 있다.
오전에 산소를 찾아 봉분과 주변을 벌초하고 밥, 지짐, 돼지고기, 술 등 마련한 음식을 차리고 성묘를 한 후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와 쉬는 것이 보편적이다. 서민들은 대체로 한복보다는 평상복을 깨끗이 손질해 입고 성묘 길에 나선다.
추석 때면 가족, 친척들이 모처럼 모여 술과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기 때문에 취기가 올라 얼굴이 벌건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조상에게 올리는 상차림도 당연히 계급에 따라 다르다. 고위 간부나 힘 있는 사람의 가족과 일반 노동자 농민의 상차림은 하늘과 땅 차이다. 산 사람의 입에 넣을 음식걱정이 평생소원인 대다수 주민들은 아예 추석을 잊고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까운 곳에 조상 묘가 있는 사람은 걸어서 혹은 자전거 등을 이용하지만 먼 곳에 산소가 있으면 대체로 기차를 이용하며,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매우 혼잡하다. 추석 때는 평소와 달리 여행증(통행허가 승인서) 없이도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전통명절을 배격해 왔으나 1970년대 초부터 추석성묘를 적극 허용했고 1988년 추석, 1989년 음력설과 단오를 부활시켜 공휴일로 지정했고 2000년 이후부터 2일 휴무다.
당과 국가 간부들은 추석 때면 김일성 김정일 동상을 찾아 참배한다. 그것은 국가행사이고 간부들의 정치적 의무이다. 이것도 어찌 보면 주민들에게 하는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교육이고 노동당의 혁명사상으로 세뇌시키고 핵심계층인 간부들을 체제전령사로 준비시키기 위한 조치이다.
‘민족최대의 명절’인 김일성 김정일 생일만큼은 큰 명절이 아니지만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민속명절인 추석을 남녀노소 모두가 은근히 기다리기도 한다.
추석 때면 북한의 텔레비전방송은 특별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시청자들을 즐겁게 한다. 다른 때와 비교하면 음악, 영화, 희극(코미디) 등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참고로 북한의 TV채널은 3개이며 평일 오후 5시에 시작해서 11시에 끝난다. 민영방송이 없고 모두 공영채널이기에 사실상 1개라고 보면 정확하다.
북한의 조선중앙TV 간판 프로는 ‘오후 8시보도’이며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과 당 및 국가, 사회의 홍보선동 등을 위주로 편집방송하고 있다. 100% 시사교양프로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밝고 아름다운 소식만을 전하는 ‘오후 8시보도’는 대략 한 시간 정도이며 광고는 절대 없다.
시원할 것 같지만 솔직히 재미없는 게 사실이다. 부정, 비리, 범죄를 폭로하는 내용이 전혀 없고 모두 교양다큐, 영상음악, 방문기, 좌담회, 충성대회 등 정치적 선전물에 가까운 사상성이 짙은 프로그램들이다.
남한 사람들이 일상은 물론, 명절이면 즐겨 찾기도 하는 노래방, 단란주점, 커피숍, 오락실, 헬스클럽, 찜질방 등 문화휴식시설은 평양에만 있고 고위간부들만 사용한다. 모두 외화를 사용하기에 일반 주민은 꿈도 못 꾸는 문화휴식이다.
북한에서 철도는 없어서 안 될 매우 중요한 운송 수단이다. 평양-두만강(최대급행), 평양-신의주(급행) 등 특권층만 타고 다니는 몇 개의 특급열차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열차는 만원의 승객들로 넘쳐난다.
1995년부터는 열차시간표가 무색해질 정도로 열차운행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전력난으로 달리던 기차가 멈추었으며 보통 24시간 소요되던 평양-온성 행 열차가 1주일 만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지방에서는 여객열차의 창문을 부수고 객실에 오르내리다 보니 어디가 승강장이고 창문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이다. 제값을 내고도 형편없는 서비스를 제공받는 승객들은 철도당국에 아무런 항의도 못하는 형국이다. 북한에서 당국에 불편한 사항을 공식 항의하는 것은 아예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청장년들로 그룹이 만들어진 힘센 승객들은 아예 승강장을 막아놓고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못 타게 한다. 일부 사람들이 창문을 깨고 열차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열차 내의 승객과 아수라장의 대판 싸움이 벌어진다. 기차 안이 붐비는 또 다른 이유는 승객들이 보통 자기 몸무게만한 식량배낭을 2~3개씩 지고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식량배낭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짐대가 무너져 밑에 있던 승객들이 다치는 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열차 안에는 또 다른 문제아들이 판을 친다. 바로 가출 청소년들인데 북한에서는 이런 애들을 ‘꽃제비’라고 부른다. 무임승차한 어린 꽃제비들은 어른들에게 마구 구걸을 한다. 때때로 이들은 강도로 돌변하기도 한다.
긴 터널을 통과하거나 전기가 부족해서 불이 꺼지는 순간, 밤이 깊어 사람들이 졸기 시작하면 꽃제비들은 몇 명씩 짝을 지어 면도칼 등을 이용해 배낭끈을 끊고 물건을 훔쳐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뜬 눈으로 날과 밤을 샌다.
끔찍한 풍경은 이것이 다가 아니다. 음식물로 인한 악취는 더 말 할 것도 없고 사람이 너무 많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선 채로 용변을 보는 일까지 발생한다. 대변은 비닐이나 종이에 싸서 창문 밖으로 던지며 소변은 그냥 바닥에 지린다.
모두 같은 심정이니 누구하나 여기에 대고 뭐라고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열차 안이 넘치다 못해 달리는 열차 지붕 위에 까지 올라타는 승객들이 있는데 이들 중에는 감전되거나 떨어져 죽는 사람도 꽤 있다.
북한의 철도열차 안에는 승객들의 여행증을 검열하는 사법권을 가진 열차안전원(경찰)이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주민통제 방법이다. 명분은 반공화국 간첩들을 잡아 내기위한 조치라 하지만 실제는 무단이동을 하는 주민들을 잡아내기 위한 특별조치다. 이를테면 체제유지 목적의 일환이다.
열차안전원에 대한 인식은 안 좋은 편이다. 안전원들은 승객들의 짐을 살피며 받아먹을 만한 뇌물을 고른다. 괜히 이유 없이 트집을 잡기도 하며 결국은 물건을 상납 받는다.
일부 장사꾼들은 열차안전원들과 처음부터 결탁해서 여행증 없이 전국을 다니면서 장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에서 가장 부패한 사람이 열차안전원이다.(Konas)
림일 (탈북작가, 소설 김정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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