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원한 지도자 백범김구
본 내용은 육군군수사령부에서 전장병과 군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나라사랑 마음 실천'백범일지 독후감 경연대회'우수작 10편중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2편중 1편이며 나머지 8편도 추가적으로 계재할 예정임(편집자 주)
세계에는 수많은 공익을 위하여 수많은 사회운동가들이 그들의 소원과 염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사회운동을 펼쳐왔다.
미국의 흑인대표 운동가 마틴 루터킹의 ‘I have a dream’이라는 연설이 미국 전역에서 흑인의 인권을 신장하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었듯이 말이다. 마틴 루터킹의 소원이란 흑인들의 인권과 권리의 보장을 말했을 터이다.
대한민국에서도 민족의 절실한 소원을 말하던 분이 계셨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면 나는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또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목소리를 더욱 높여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라고 대답하시겠다던 그분은 민족지도자 김구선생이다.
최근에 나는 한국사 검정시험을 보기위해 대한민국의 독립과 광복 이후의 한반도 정세에 관련하여 공부하던 도중에 김구선생의 이름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김구선생에 관하여 가지고 있던 생각은 고작 ‘상해임시정부와 독립활동 등을 통하여 유추해볼 때 이분은 선견지명을 가지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큰 역할을 하신분이다.’라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김구선생의 일생에 대하여 여러 가지 몰랐던 부분을 자세히 알 수 있었고 읽을수록 김구선생의 영웅적인 면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감탄은 김구선생의 유년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김구선생은 17세에 조선의 마지막 과거시험에 응시하였으나 과거시험 시험장은 부정부패로 썩어들어 악취가 날 정도였으며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심지어 관직을 구걸하는 경우도 있었다.
김구선생은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여 좌절하고 관상학을 공부하였지만 자신의 관상이 좋지 않음을 깨닫고서 마음을 닦고자 동학에 입도하게 된다.
김구선생은 17세의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부정부패와 세상의 불의에 좌절했지만 타협하지 않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선 모습에서 그의 단호한 결정력과 실천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17세의 나는 입시전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며 허덕이던 때를 생각하면 괜스레 내 자신이 작아지며 겸손하게 되었다. 이는 마치 김구선생이 처음 고능선 선생을 처음 뵈었을 때의 느낌일 수도 있겠다.
나의 겸손함을 놀라움으로 바꾸는 사건을 책에서 읽을 수 있었는데 바로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김구선생이 일본인 스치다를 살해하는 장면이었다.
김구선생은 주막에서 기회를 보며 밥을 7그릇이나 시키면서 대장부다운 기개를 보이는 장면에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웃음은 일본인을 발로 걷어차면서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때려죽이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면서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으며 놀라움으로 나를 가득 채웠다.
이후 김구선생은 인천으로 압송되어 사형선고를 받지만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장거리 전화의 시험개통에도 불구하고 고종황제의 사형집행보류 명령으로 위기를 넘기게 된다. 스치다를 죽이던 장면에서의 놀라움은 사형집행 보류라는 영화 같은 전개로 위기를 넘기는 장면에서 경이로움을 넘어선 그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느낌을 주었다.
김구선생의 명성화후 시해의 복수사건과 재판을 받을 때도 오히려 일본인에게 고함을 치는 장면은 불굴의 용기와 조국을 향한 불타는 애국심이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이 분명하다.
김구선생의 조국을 향한 애국심은 이러한 복수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김구선생은 지성으로도 조국에 큰 도움을 주었다.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고향인 황해도를 근거지로 학교를 설립하여 조국의 지성인을 키우는 데 이바지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만주부근에 동학운동당시 절실히 느꼈던 전문 지식을 갖춘 장교의 필요성을 실현하기 위해 무관학교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김구선생의 애국계몽운동은 나에게 큰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김구선생의 지성은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하여 사용한 게 아니라 나라를 위하여, 국민을 위하여 쓰였다. 나는 이전부터 나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한 노력만을 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김구선생 애국계몽운동의 사실적 서술을 읽으며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구선생이 나에게 준 반성의 시간은 회계사와 공직자 사이에서 진로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던 나에게 공익을 우선시하고 국민을 위하여 일하는 공직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확고히 해주었다.
김구선생은 이후에 안악사건과 105인 사건으로 여러 애국지사들과 함께 옥중생활을 하게 된다. 김구선생은 감옥 안에서의 갖은 심문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갔지만 “내 몸이 찢겨지더라도 정신까지 빼앗아가진 못한다.”며 엄청난 정신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에게 호통을 치는 김구선생의 당당함과 기개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김구선생은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자살이야말로 일본의 세력에 굴하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살대신 탈옥을 결심하게 된다. 나는 김구선생의 옥중생활을 보면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였다. 심지어 옥중생활에서도 도적을 만나 수백 명의 도적을 이끄는 방법과 조직을 연구하는 모습은 실로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절망이 가득한 옥중에서 밖으로 나가 광복을 위하여 조직을 결성하여 이끌어갈 방법을 배운다는 것은 보통의 인물은 할 수 없을 터인데 절망 속에서 긍정을 바라보고 독립을 위하여 어디서든 노력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고 존경심이 들었다.
일제강점기의 시기보다는 동북아의 정세가 안정된 것은 사실이나 절대로 안심할만한 단계는 아니다.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일의 갈등으로 동북아의 정세가 긴장의 연속이며, 한 민족끼리 총구를 맞대고서 최근 NLL을 수시로 침범하면서 대한민국의 대응과정을 파악하며 도발을 준비하고 있는 북한을 실질적인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는 군인의 필수조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구선생이 그러하셨듯이 마음속에서만 담고 있지 않고 실천으로 옮길 때 국가의 안보는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실천의 방법은 국민 모두 각자 맡은바 최선을 다하여 남녀노소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틀림없다.
김구선생 또한 일제강점기하에 나라를 잃은 조건에서도 나라를 찾기 위하여 국방력에 무한한 힘을 들이셨다. 김구선생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한인애국단을 결성하여 이봉창, 윤봉길 같은 역사에 길이 남을 애국지사들을 진두지휘하셨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최초 정식군대인 광복군을 조직하여 미군 특수사령부와 합동으로 조선에 잠수함으로 광복군을 침투시킬 계획을 세우기도 하셨다.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도 정식군대를 창설하고 미군과 합동계획을 수립하였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능력 있는 민족지도자가 아닐 수 없다. 김구선생은 능력만 있는 민족지도자가 아니라 인품까지 고루 갖춘 분이셨다.
수십 년간의 타향살이, 광복운동과 나라와 가족을 잃은 슬픔에 지치고 힘들어서 자신부터 추스르는 게 당연할 법도 하지만 김구선생은 한인애국단 요원이었던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가족을 친히 방문하셔 위로의 말을 전하셨다고 한다.
능력과 인품을 고루 갖춘 김구선생은 어쩌면 타고난 지도자가 아닐까 싶다. 세상에는 수많은 지도자들과 리더들이 있지만 능력과 인품을 모두 갖춘 지도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태껏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능력이 중요하며 능력이 받쳐준다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며 따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힘든 시련과 역경의 세월에 심신이 지쳤음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챙기며 함께 이끌어가는 김구선생의 모습을 보며 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던 리더로서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소양의 항목에 인간적 리더십이라는 리더가 가져야 할 필수불가결한 덕목을 추가할 수 있었다. 능력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먼저 얻으려고 노력하는 자가 진정한 리더로서 인정받고 대성할 수 있지 않을까.
김구선생은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광복군을 써보지 못하고 광복을 맞이하셨지만 보통사람과는 달리 온전히 기뻐하시기보다 민족의 지도자로서 민족의 앞날을 더욱 걱정하셨다. 민족의 해방은 분명 반길 일이지만 외세에 의한 해방은 자주독립국가 성립에 걸림돌이 되었으며, 우리나라는 결국 남과 북으로 나뉘게 되었다.
김구선생은 이후에도 UN에서 결정한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하고 당시에는 거의 자살시도나 마찬가지였던 북한으로 건너가서 북한을 설득하는 노력을 하시기도 한다. 또한 통일독립촉진회를 결성하는 등 단일적인 자주독립 국가를 이룩하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시지만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그만 서거하시게 된다.
나는 생전에 그토록 바라던 자주독립 국가를 이루지 못하시고 돌아가신 백범김구 선생의 일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백범김구 선생의 육체는 비록 돌아가셨을지라도 그 고귀한 영혼은 후대에 전해지며 자주독립 국가를 수호하려는 주체들에게 끊임없이 영감과 자극, 교훈을 주면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백범김구선생은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자유민주주의국가 대한민국의 수호를 위하여 힘쓰시고 민족의 번영과 무궁한 발전을 염원하고 계실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육군의 한 장병으로서 끝까지 국방의 의무에 맡은바 최선을 다할 것이며 이후에도 백범일지가 나에게 준 확고한 의지, 단호한 실천력, 조국에 대한 애국심 이 3가지 교훈을 항상 지니며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수호와 민족,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할 것임을 다짐한다.(konas)
종합정비창 항공기정비단 본부중대 병장 이승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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