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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종착역, 한반도 평화공존 ③

Written by. 김명배   입력 : 2012-12-23 오전 10: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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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전쟁의 경과

 개전 초기 스탈린과 김일성의 예상대로 만반의 준비를 갖춘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하했으나, 미국의 예상 밖의 조기 참전으로 점차 전황이 북한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9.15 인천상륙작전과 9.28 서울 수복으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하고 만주 폭격설이 유포되면서 중국의 참전 여부가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중국은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에게 38선을 넘지 않도록 수 차례 경고한 바 있었지만 만주 폭격 설에 자극을 받은 중국이 어렵사리 참전 결정을 내리면서 30개 사단 병력이 대거 투입되어 ‘인해전술’이 구사되면서 전황이 다시 공산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1.4후퇴로 수도 서울이 다시 중공군의 수중에 들어가고 미국의 춘계 대 공세로 서울이 재 탈환되면서 전쟁은 개전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 갔다.

 쌍방의 100만 군대가 38선 주위에서 팽팽히 대치한 상황에서 병력은 대등하고, 화력은 미국이 우세한 가운 데 쌍방 간에 전투와 휴전협상이 병행되면서 2년 반의 장기 교착상태로 돌입하게 되었다.

 미국 내에 점차 반전여론이 형성되고, 조기종전을 선거공약으로 내건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은 휴전 쪽으로 기울어 지고, 중국 역시 산적한 국내문제로 인해 내심 휴전을 원하는 등 작전지휘권을 갖고 있는 미,중 양국이 휴전 쪽으로 기울어지는 상황으로 전황이 전개되었다.

 51년 4월에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자신감과 한국전에 직접 참전하지 않은 소련이 여유를 갖고 협상 이면에서 공산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북한군은 사실상 전투능력을 상실했을 정도로 궤멸했고, 오로지 한국 혼자만 휴전을 거부하고 ‘북진통일’을 외쳤지만 기실은 휴전 이후 북한의 재침에 대비하여 전쟁 억지력의 확보수단으로 ‘한미동맹’의 체결을 기필 관철코자 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안보 차원의 정략 때문이었다 할 것이다. 미,중, 북한이 내심으로 휴전을 원하고 한국 홀로 휴전을 반대하는 상황이 휴전협정 체결 시 까지 이어졌고, 한국은 끝까지 휴전협정의 조인을 거부했다.

 38선에서 전선이 교착된 것은 쌍방의 보급, 병참 등 군사적 이유도 있었지만 이보다는 전쟁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휴전협정을 맺고자 하는 미,중 양 강대국의 내심이 작용한 결과라 할 것이다. 한국전 3년의 대부분인 2년 반의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협정에서의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휴전협상 개시 이전보다 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형태로 한국전이 전개되었다.

 당시 남,북한 인구 2천 6백만 중 4백만의 인명손실이 있었고, 양쪽 군의 전사자 수가 100만에 달했고, 한반도 전체가 잿더미로 변할 정도로 처참한 전쟁이었다. 겉으로는 전쟁 이전 상태로 돌아갔지만 속으로는 민족이질성의 심화, 동족상잔의 적개심, 북한의 재침야욕, 남,북한 간의 체제경쟁 등으로 한국전쟁은 남북한 관계가 장 기간 ‘제로 섬 게임’을 벌이는 적대관계로 고착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6.  휴전협상과 포로송환 문제

 한국전쟁은 휴전을 위한 전쟁이라 할 만큼 휴전협상이 장 기간 지속되었다. 한국전 이전 상태에서의 현상유지를 원하는 미,중 간의 전략적 묵계가 주 원인이라 할 것이다. 휴전협정의 3대 의제는 상호외군철수, 전쟁 이전 상태로의 복원, 포로송환이었다.

 외군 상호철수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이 표면적인 강경 입장과는 달리 내면적으로는 융통성을 갖고 접근한 면이 있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경우 일본의 재무장이 기정사실화되고, 중국이 미,일을 상대로 동시에 패권경쟁을 벌이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 될 것을 중국이 가장 경계했을 것이다.

 또한 중국은 상호 외군철수 문제에 있어서도 지리적 근접성 때문에 미국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었으므로 외군철수 문제에서 양보하면서 휴전선 확정과 포로송환에서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 내는 데 협상의 초점을 맞추었을 것이다. 또한 휴전선 설정문제는 휴전협정 당시의 전황을 반영한다는 미,중간의 묵계가 서 있었고, 미,중 공히 전쟁 이전 상태로의 복귀와 조기종전을 원했기 때문에 미.중간에 협상의 틀이 어느 정도 양해된 상태였다.

 결국 휴전협정의 최대 난관은 포로송환 문제였다. 1949년 체결된 제네바 협정 118조에 의해, “전투행위가 종료되는 대로 지체 없이 포로를 송환시킨다”(Prisoner of war shall be repatriated without delay after the cease of hostilities.)라는 원칙은 서 있었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매우 복잡했다. 인민군 포로의 상당 수는 미쳐 피난 가지 못한 남한 국민들로서 북한당국의 강요에 의해 소위 ‘의용군’ 명목으로 인민군에 편입되어 참전한 포로들이며 이들의 소속은 인민군이지만 국적은 남한이고 북한으로의 송환에 결사 반대하는 포로들이었다.

 따라서 북측은 전원(all for all)의 조기송환(the principle of quick and compulsory repatriation)이라는 군사적 측면에서 포로송환문제에 접근했음에 반해, 유엔군 측은 포로 개인(one for one)의 자발적 의사(the principle of voluntary repatriation)를 존중하는 인도적 측면에서 접근함으로써 팽팽한 대결이 지속되면서 휴전협상이 장기화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조기종전을 바라는 국민여론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미국이 양보하면서 공산 측에 크게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이 타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국군포로들을 혹은 강제 전향시키고, 혹은 기만전술을 구사하여 송환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등 온갖 비 인도적인 수단, 방법을 동원하면서 국군포로 8만2천 명 중 1/10 정도만 송환시키는 비 인도적 만행을 저질렀다. 북한은 오늘 날 까지도 국군포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미국은 국민여론 때문에, 중국은 국내사정상 조기종전을 원했다. 북한은 전쟁 수행 능력이 없었고, 한국은 북한의 재침을 막는 전쟁억지력의 확보 수단으로서 ‘한미동맹’의 체결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상황이었다. 특히 미국은 3차 대전으로의 확전을 결코 원치 않았기 때문에 1951년 핵실험에 성공한 소련이 참전의 뜻을 넌지시 비치면서 휴전협정을 이면에서 조종한 것이 미국에게 적지 않은 부담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53년 4월 스탈린의 사망과 더불어 소련이 조기 휴전을 원하게 된 것이 협상타결을 촉진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종전이 아닌 휴전이라는 미봉책으로 한국전쟁을 잠정 봉합한 결과 60여 년이 지난 오늘 날 까지도 한반도에서 남,북한 간의 적대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할 것이다.

  7. 한미동맹의 체결

 (1)  한미동맹의 체결 배경

 동맹은 주고 받는 것(give and take)이 균형을 이룰 때에 비로소 성립되는 것이다. 한국전 당시만 해도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면에서 한반도의 비중이 오늘 날에 비해 매우 낮았기 때문에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고 미국에게 줄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도 한반도에서 미국의 젊은이 들이 두 번이나 피를 흘리는 것을 미 국민 절대다수가 원치 않었다. 한국의 입장에서 한미동맹이라는 억지력(deterrence)이 없으면 북으로부터의 재침 위협에 단독으로 대처해야 하는 최악의 안보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미동맹이 국가안보에 절체절명의 요소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단독 ‘북진통일’을 주장한 것은 결코 한국군이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할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미국에 압력을 가해 한미동맹을 기필 성사시키고자 하는 절박한 압박수단이었을 뿐이다. 미국이 한반도를 방치한 결과 공산주의 침략에 한국 국민을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킴으로써 수 많은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켰다는 국제사회의 인도적 차원에서의 비난을 의식해서 한미동맹을 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미국을 몰고 갔다 할 것이다.

 이 대통령이 53년 6월에 미국과 사전 협의 없이 2만 7천 명의 반공포로를 석방하는 극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미국을 코너로 몰아부친 결과 마침내 미국이 양보하여 체결된 것이 한미상호방위조약(53.10.1)이었다. 

 미국은 비록 억지로 맺다 싶이 한 한미동맹이지만 일단 맺은 이상 한국을 자유민주주의의 ‘모델케이스’(model case)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비단 안보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귀중한 국민세금을 아낌없이 투입했다. 미국은 한국전쟁에 400억 불을, 전후 복구와 경제재건에 250억 불의 국민세금을 투입했다.

 실로 현재가격으로 1조 불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였다. 미국의 정치, 안보, 경제 등 전 방위적 지원은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하는 바탕이 되었다. 미국은 한국의 월남전 참전에 따른 두 번에 걸친 혈맹우의에 대한 보은 차원에서 월남 전후 특수, 중동오일 특수를 한국이 누릴 수 있도록 이면에서 적극적으로 한국을 지원하면서 한국이 ‘G-12경제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다.

 앞으로도 한미동맹은 공동의 이념과 국익과 전략을 바탕으로 더욱 견고한 전 방위적 동맹체제로 발전하면서, 장차 한국이 ‘G-7선진조국’의 비젼을 실행하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천안함 사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주가가 오히려 오르는 것은 오로지 주한미군의 전쟁 억지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신뢰 때문이라 할 것이다.

 (2) 한미동맹이 폐기되는 경우의 문제점

 국제사회에서 차지 하는 동북아의 정치, 경제, 군사적 비중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면서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한 한반도의 전략적 비중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반도가 미,중 패권경쟁의 완충 역을, 주한미군이 중국의 경제대국화와 일본의 정치대국화의 균형 역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주지된 사실이다.

 세계의 경제권이 미주, 유럽, 동북아 경제권으로 3분 되면서 동북아의 경제적 비중이 강화 일로에 있다. 오늘날 세계교역의 1/4이, 또한 미국의 대외 교역의 1/4이 동북아에서 이루어 지고 이러한 교역이익을 보호하는 역할이 주한미군의 몫이다. 특히 중국의 경제력이 급 부상하면서 동북아의 경제비중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장차 북한이 한반도 평화공존을 받아들여 한반도-시베리아-EU를 연결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the trans-Siberian railways)가 부설되어 운송비 절감 등 한반도가 세계 물류운송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경우 한반도의 전략적 비중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한미 양국이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할 이유라 할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팩스 아메리카나’ 시대 (pax Americana era) 에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함으로써 예상되는 중.일간 패권경쟁에 휘말리는 19세기 말의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장차 ‘G-7 선진도약’의 실현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동북아의 경제력 신장 못지않게 군사력 또한 북한의 강성대국 지향과 핵 무기 개발, 중국의 군사대국화, 미,일의 신 안보 협력 등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증강되고 있다. 경제력과 군사력의 급 성장 과정에서 자칫 와해되기 쉬운 동북아의 현상유지와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에 주어져 있으며, 그 중요성은 증대일로에 있다.

 한미동맹이 해체되는 경우 중국의 경제대국화와 일본의 정치대국화의 균형 역을 수행하는 주한미군의 역할이 사라지면서 중일 간의 패권경쟁이 첨예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미국은 아시아 대륙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잃게 되면서 ‘초 강대국’으로서의 지위가 흔들리고, 일본의 군사대국화 및 핵 무장으로 인해 중국이 동북아에서 미,일을 상대로 동시에 패권경쟁을 벌이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가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동북아에서 중,일 간의 패권경쟁에 휘말리는 19세기 말의 상황이 재연될 우려가 있으므로, 동맹에 관한 한 중,일은 한국에 대해 결코 미국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경우, 북한의 재침 가능성이 커지고, 미국의 핵 우산 보호가 사라지고, 국가신인도 추락과 투자 위축 등 한국은 안보, 경제 등 전반적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의 체스 판에서 한국이 희생의 제물(scape goat)이 될 가능성이 클 것이며, ‘G-7 선진조국’의 꿈과 비젼도 사라지고, 미군철수 후 아시아 제2의 경제강국에서 ‘아시아의 병자’로 전락한 필리핀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한미동맹의 폐기는 한,미는 물론 4강 모두의 이해에도 부합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4부에서 계속)
(konas)

김명배(호서대학교 초빙교수, 전 주브라질 대사, 평화통일국민포럼 고문)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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