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자 병역이행 수기③〕'선택'
본 내용은 2012년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실시한 ‘외국 영주권자 병역 이행’에 대한 군 생활 수기 내용임.(편집자 주)
사람들은 살면서 수많은 선택들과 마주서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입고 나갈 옷을 고르는 등의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질 수 있는 중대한 결정들도 있다.
나는 지금껏 23년이란 짧은 시간을 살면서 두 가지의 큰 결정들을 하였다. 첫 번째는 영주권을 포기하지 않고 미국에서 공부를 한 것이고, 두 번째는 영주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군대에 오게 된 사실이다.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길들 중에서 군대에 오는 인생을 택했고, 그것에 대해서 후회는 전혀 없다. 누군가의 강요도 없었고, 사회생활로부터의 도피도 아니었다. 입대는 내가 나라에게 돌려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이었다.
나는 태어나기를 한국에서 태어나 두 살이 되던 해에 미국 플로리다 주로 넘어가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까지 걸린 4년가량의 시간을 그곳에서 자라며 다른 한국인들과는 조금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글보다 알파벳을 먼저 배웠고 하얀 쌀밥보다는 기름진 피자를 먹었다. 그 후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시기에 다시 한국에 오게 되었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환경 속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다시 배웠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지만, 모국이라서 그런지 금방금방 적응해갔다. 받아쓰기 점수가 언제나 0점이어서 체육수업 대신 한글 공부를 했는데, 그 덕분에 지금 이정도까지라도 한국어가 늘은 것 같다.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고, 한국어가 영어보다 더 익숙해 질 때쯤에 유학의 기회가 생겼다. 어렸을 때 신청하였던 영주권이 그제서야 나온 것이다. 한국이 더 편했던 시절이었기에 고민을 많이 했었고,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두려웠었다.
고민 끝에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다행히도 어렸을 때 있던 곳이라 그런지 쉽게 적응을 하였다. 그렇게 무사히 Syracuse University에 입학하여 광고학과에 들어가서 깊이 있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학교에서 공부하기를 2년째, 집에서 편히 쉬며 TV를 보던 어느 날 믿기지 않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이 터진 것이다. 두 눈으로 보면서 이게 영화인지 실제상황인지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마치 한국에서 9.11 테러사건 뉴스를 보던 때가 연상이 되었다. 곧 정황이 파악되었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두려움과 창피함이 섞인 아주 더럽고도 추잡한 기분이었다. 한국전쟁이 날까봐 두려웠고, 내 나라가 저 지경에 이르렀는데 나는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괴감이었다.
비록 내가 십여 년을 미국에서 살고 또 영주권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이 나의 조국이고 내가 한국인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게 그 사건은 나의 정체성, 내가 누구이고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 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날은 잠 못 드는 밤을 분노로 지새우고 그전 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입대가 결정 된 중요한 날이 되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할 수 있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남들은 아깝고도 고귀한 청춘을 군대에 바쳐서 뭘 하냐고 반문했지만 나는 묵묵히 나만의 길을 홀로 걸었다.
그렇게 절차를 밟던 중에 영주권을 유지하면서 군대를 갈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나의 선택은 더욱 더 확고해져갔다. 그렇게 5월 14일, 나는 군대에 입대를 하게 되었다.
나는 여기에 있는 시간을 아깝다고도 의미가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대한민국 남자로서 조상이 피와 땀 흘려 남겨주신 이 땅에 바쳐할 당연한 의무이자 보답이다.
내가 비록 한낱 보병에 불과하고 최전선에 북한군과 마주하고 있지는 않지만 입대를 함으로써 병력이 유지가 되고, 또 그게 국방력을 좌지우지 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걸 알기에 부끄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 오기 싫어함에도 징병제이기에 어쩔 수 없이 오곤 한다. 그 사실을 훈련소에서 알게 되었고 그 숫자에 나는 놀랐다. 정말 소수의 사람들만이 자진입영을 한 것이었고 나는 그 사실에 슬펐다.
자기가 어떻게 이 땅에 태어나고 또 이렇게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하고, 자신의 앞길만 걱정하는 그런 이기적인 모습들... 자신의 나라가 당장 전쟁 중 인 것도 모르고, 북한군이 적 인 것도 모르는 사람들...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을 나라에 보답할 의무가 있다고, 그런 식으로 안일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나에게는 선택이었고 그들에게는 의무였기 때문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간에 나는 많은 사람들이 끌려오기 보다는 자진해서 자기가 선택하여 와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Konas)
일병 임재민 (항공작전사령부 1항공여단 여단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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