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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자 병역이행 수기㉗〕대한민국 혹은 정체성

Written by. 진민우   입력 : 2013-01-20 오전 9: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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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2012년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실시한 ‘외국 영주권자 병역 이행’에 대한 군 생활 수기 내용임.(편집자 주) 

 내 여권에 찍힌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나의 정체성의 큰 일부임을 자각하게 만든 해외생활을 시작한지 13년 만에 다시 한국에 돌아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훈련소에 입소하여 바깥에서 누리던 많은 것들이 사치였다는 것을 몸소 깨달으며 고된 훈련에 힘들어 했던 훈련병 때의 생활이 벌써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사람은 이래서 참 간사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늦은 나이에 입대했지만 체력만큼은 평균 20대 초반 남성보다 우월했으면 우월했지 부족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가 완전군장 30킬로미터 행군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논두렁에 뛰어들고 싶었었던 그때 그 맘을 생각하니 창피해서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입대 전에는 군필자들의 푸념과 얘기들을 과장과 허세의 산물이려니 하며 냉소적인 시선을 갖고 있던 내가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군대 얘기가 나오면 침을 튀어가며 이런저런 힘들었던 일들에 대해 잘 얘기하고는 한다.

 내 군 생활은 현재 진행형이며 내 계급은 갓 진급한 일병일 뿐이지만 부모님과 군 생활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면 군 경력 10년 이상은 된 직업군인처럼 이런저런 썰을 푸는 나의 가벼움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행정병이라는 보직의 특성과 조직 구성원들과의 인간관계 다지기에 중점을 둔 생활을 함으로 인해 훈련소에서 다졌던 전투형 군인의 모습이 희미해지고 군이라는 특수 조직 내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으로 인식, 체화하여 군복무의 근본적인 의미를 생각하는 빈도가 점점 줄어가던 찰나에 6월 현충일을 맞아 처음으로 영외로 나가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6월의 무더운 하루, 화창한 날씨에, 전입 이후 처음으로 공식일정 소화를 위해 영외로 나간다는 마음에 들떠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버스에 올라타 국립현충원에 도착한 그날, 사방을 가득 채운 묘석을 보며 나의 들뜬 마음은 한 풀 꺾이고 말았다.

 푸른 잔디밭위에 꼿꼿이 서있는 묘비 중에서도 이병들의 묘석을 볼 때마다 나의 속은 거북해졌다. 자대배치 후 몇 개월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또는 훈련소에서 속성 배출된 이등병들, 개인화기, 전술훈련 이해가 미흡했을 이들이 실전에 투입되어 전투 중 전사하였음은 차치하더라도 대부분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 젊은이들 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아름다움이 극에 달한 건강한 육신으로 한창 공부하고 일하고 사랑하며 삶에 대해 배워나가며 인생관과 우주관을 정립하며 쓰러지고 고난을 겪어도 절대 좌절할 필요가 없는 그 나이 대에 대한민국의 존속을 위해 뜨거운 피를 흘리며 삶을 누릴 기회조차 반납했을 그들을 생각하면 어찌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들이 박탈당한 삶의 기회, 빛날 기회는 우리 아버지 세대가 궁핍하지만 삶을 영위할 기회를 제공했으며 우리 아버지 세대는 국가경제 발전과 민주화라는 공통목표를 가지고 자아실현의 꿈을 인생 최우선 순위에서 강등시켰다.

 결국 발전된 사회 인프라와 민주화된 선진 정치 제도 및 강력한 국방력은 대한민국을 위해 앞서 말한 모든 희생을 감수한 구성원들의 피와 땀을 기반으로 이뤄졌으며 80년대 이후 출생한 우리 세대가 최대 수혜자 되었다.

 따라서 군복무는 현세대가 전세대의 박탈당한 삶의 기회에 대해 경의를 표하며 감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2년간의 사회생활 공백을 아쉬워하기보다 한걸음 물러서서 사유해보는 것이 어떨까?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 형, 동생 또는 아버지였을 소중한 그들이 모든 삶의 기회를 강탈당하며 존속시켜온 대한민국을 위해 2년간 봉사하는 것은 절대 의미 없는 희생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 땅에 태어났거나 또는 타지에서 태어났으나 속인주의에 의해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받는 순간부터 전 세대에 대한 부채를 지고 태어나며 그들을 추모하며 감사할 수 있는 귀족적인 권리 또한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은 절대 형이상학적이거나 계량 불가능한 것들이 아니다. 단지 물적인 풍요로움과 우리가 국가에게 보장받는 기본권이 우리 삶 전반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느끼지 못 할 뿐이다.

 해외 영주권자들의 병역의무 자진이행 풍토는 젊은 세대들의 건강한 안보의식 이외에도 현실적인 계산이 존재하며 이는 한국이 사회 경제적으로 젊은 재외동포들에게 경제활동 및 자아실현을 실행하기에 매력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여러 방면에서 세계를 선도해나가는 리더 그룹군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국가경제 규모 및 선진화된 경제 체질, 안정적이고 투명한 민주주의 정치체계, 성숙도 높은 시민의식, 아이티, 레바논 등에 대한민국 국군이 푸른 베레모를 쓰고 유엔 소속 PKO로 파견 나가있으며 아이티의 경우 재건사업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것이 위 사실을 증명하는 척도들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해외 영주권자의 한 명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내가 한국에서 전역 후 펼쳐나갈 꿈들을 위해, 그리고 조국을 위해 남은 의무복무기간을 자랑스럽게 복무 할 것이다.(Konas)

이병 진민우 (국군 체육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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