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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병 롤 모델 수기집〕미래의 시간을 발굴하는 유해발굴병!

Written by. 서승완   입력 : 2013-01-24 오후 2: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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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2012년 8월 육·해·공군 및 해병대 등 현역병을 대상으로 지원입영 복무 후 취업 또는 학업에 도움이 된 사례를 모은 ‘현역병 지원입영 롤 모델 수기집’ 『내청춘에 충성』에 실린 내용임. 이번 수기집은 실제 사례를 통해 현역병 모집제도의 장점을 소개하고, 입영대상자 스스로 복무 할 군과 복무분야를 선택해서 지원 입영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편집자 주)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다. 1945년 8월 15일 이후 한반도는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었고 지금도 대치중이다.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군인으로 복무해야하는 이유는 바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국민으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군대에 복무하는 2년의 기간에 다른 것을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며 나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2년간 군대에서 복무하는 것이 나에게 어떠한 도움이 될 것인지, 그 시간동안 어떠한 일을 하게 되는지 여러 가지 불안함이 복합되어 있었다. 사실 군 입대 전에는 나라에서 부르면 입영하여 배치 되는대로 근무하겠다는 단순한 생각이 있었다.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월등한 것도 아니었던 나로서는 군 복무에 적합한 병과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뉴스에서 나오는 한 부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대한 뉴스였다. 6.25때 실종된 전사자의 유해를 조사하고 발굴하여 유가족에게 유해를 돌려주는 등의 일을 하는 부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는 한동안 나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은 2000년 조직되었다. 2005년부터는 부대로서 공식적으로 활동하였고 조직될 때부터 고고학, 역사학, 의학을 전공한 사람들로 전문적인 발굴체계가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는 나의 전공인 고고학 발굴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군 복무에서 발굴경험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전공에 대한 경험을 2년 동안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평소에는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발굴경험과, 유가족에게 유해를 찾아주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전사지역을 직접 조사할 수 있다는 많은 매력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유해발굴병에 지원하여 면접 등을 거쳐 합격한 후 특별한 군 생활을 하게 되었다. 훈련소에 들어가 여러 가지 대화를 하게 되는데, 감초처럼 나오는 말은 특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유해발굴병에지원했다.’라고 이야기하면 모르는 사람이 태반 이었다.

 나도TV에서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논산훈련소에서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부여 되었고, 5주의 기본훈련을 받고 자대로 이동했다. ‘과연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논산훈련소를 떠나서, 2007년 5월 25일 나는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으로 배치 받았다.

 신병이 가장 먼저 받는 훈련은 바로 유해의 각 명칭을 외우는 일이었다. 나중에 발굴현장에 나가서 알게 되었지만, 사람의 뼈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는 발굴병이라 할 수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뼈의 명칭을 암기하고 그에 대해 식별할 수 있는 훈련을 하게 된다.

 그 이후에는 사진촬영이라던가 발굴현장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발굴을 진행하는 지에 대한 교육이 이어진다. 또한 전사자들에 대한 유품이 국군의 것인지 식별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특징도 배우게 된다.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고 나면 비로소 유해발굴 현장에 투입된다.

 발굴 지역에서 유품과 유해를 찾는 일련의 과정은 마치 고고학 현장의 그것처럼 정밀하게 이루어진다. 먼저 전사지역에 파견된 부대의 부대원들과 함께 6.25당시의 개인호와 교통호들을 조사하여 전투가 직접 벌어진 전투호들이 능선에 따라 어떻게 배치되어있는지 크기와 간격을 기록한다.

 그 다음 실제로 발굴하여 그에 대한 정밀한 기록을 하고, 거기서 나오는 유품들을 식별 및 수거한다. 유해가 나올 경우에는 정밀하게 노출하여 유해의 위치와 특징 등을 자세하게 기록하여 감식팀에게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인계한다.

 간혹 복합유해라고 해서 많은 유해들이 엉켜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판단이 어렵기 때문에 더욱 정밀하고 자세하게 노출이 이루어지게 된다. 차트의 기록도 어려워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선임들만이 이 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

 노출된 유해의 기록이 끝난 후에 여러 차례에 걸쳐 사진을 촬영하고 유해를 수습하게 된다. 유해는 한지로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싸서 관으로 모신 뒤 그 분의 넋을 기리는 간단한 노제를 지내고 운구해서 돌아오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유해를 운구하는 광경을 담은 사진만을 보게 되며 유골수습의 과정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유해발굴단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수행하는지 궁금해 할 수도 있다.

 ‘유해발굴단은 땡보(편한 보직을 말하는 속어)다.’라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사실 유해발굴단은 전투훈련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아 편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유해발굴단이 비전투부대 과업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포병은 박격포나 자주포를 다루게 되는 반면 우리의 임무는 6.25 전사자를 찾아내어 유가족 품으로 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따른 전문지식을 외우고 개개의 전사지역을 종종 탐색해야한다. 그 어떤 부대도 편한 부대는 없다. 자신의 부대 업무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과업을 힘들지만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힘든 과정이지만 우리가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선배 전우님들을 유가족들에게 돌려줘야 하는 국가적인 사명감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유골만이라도 다시 찾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선배 전우들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초개같이 목숨을 바쳤고, 군번줄 하나 남기지 못하고 조국의 산하에 쓸쓸히 묻힌 것 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그 분들을 찾아드리고 이를 통해 그분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 대한민국을 지키는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부대의 특성상 파견을 많이 가게 되는데, 곳곳마다 정말 다양한 부대들이 있다. 환대해 주는 부대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우리로 인해 힘든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싫어하는 부대도 있다. 보급정보가 넘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군대리아 빵 안에 들어가는 고기를 받지 못해 사정사정해서 빵이랑 쨈을 겨우 얻어 아침을 먹었던 기억도 있는 반면, 저녁 늦게 들어와 배가고파 있을 때 라면을 뜨끈하게 끓여주던 전우에 대한 기억들도 있다.

 그러나 가장 힘든 일은 매일매일 산을 올라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내가 지원할 때는 없었지만 최근에는 체력검정도 실시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장비를 챙겨서 발굴지역으로 향하는데 6.25 전투는 대부분 고지전이었다. 즉, 가장 높은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공방전이 주를 이루었던 것이다.

 당연히 과거의 전투지역은 높고 험하기 때문에 이러한 곳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아침부터 산길을 힘들게 올라야 한다. 또한 발굴을 진행하기 위한 호미, 트롤, 정글도, 톱, 삽까지 많은 장비를 챙겨와야 한다. 기록을 위한 차트용지와 필기용구, 그리고 GPS, 무전기에 전사자를 찾아내면 그 분을 모시기 위한 관까지 챙겨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군장을 싸서 올라가는 것이다. 거기다 깍아 내린 듯한 고지를 빨리 올라가서 발굴부대에게 탐사할 곳을 파악하여 알려줘야 하며, 무언가 나올 때에는 그곳까지 달려가 중요한지를 판단해야한다.

 발굴이 끝나는 시간은 보통 오후 4시가 넘는다. 그러나 전사자 유해가 남아있다면 시간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유해를 늦은 시간까지라도 온전히 모셔와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때에는 한밤중에 막사에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 이후에도 기록을 정리하고, 유품의 수량을 파악하여 보고하는 등의 마무리를 하게 되면 밤늦게 일이 끝날 때가 부지기수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일이 매일매일 발생하기도 한다.

 나는 고고학 전공자로서 지금은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전역 후 바로 고고학 현장에서 일하였고, 졸업 후에는 바로 연구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비록 군대 업무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유해발굴 현장에서의 여러 가지 정밀한 작업과 경험들은 전역 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 때 배운 것들을 지금도 일할 때 마다 기억하곤 한다. 지금은 유해발굴단 만큼 많은 유해를 경험해볼 수는 없지만 실제로 고고학현장에서 인골이 나오는 경우에는 부대에서 했던 모든 일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면서 발굴하게 된다.

 유해발굴단은 나에게 있어서 단순한 군 복무가 아니었다. 군 복무 기간 중 전공과 관련된 수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관련 전공자들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경험하고 심지어 밤새 같이 공부한 적도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과 연락하며 군시절 이야기를 하거나, 현재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이야기도 하곤 한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군대의 가장 큰 매력이다. 나는‘사람’이라는 재산을 군대에서 얻었다. 같은 전공자들이 같은 부대에 모여있기 때문에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어 쉽게 친해지고 전역 후에도 소위 인맥으로써 활용되는 강점도 있었다.

 많은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군대에 입대하기 전, 자신의 특기를 살리지 못하고 단순하게 날짜에 맞춰 군대에 가곤 한다. 갈 때가 되었으니 가는 것보다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자신에게 유용한 군 생활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지원하면서 알아봤을 때 의외로 다양한 종류의 군 복무 분야가 있으며 전문적인 분야도 많이 있었다. 자신의 특기를 살린다는 것은 군 생활을 보다 알차고 즐겁게 할 수 있다. 또한 전역 이후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오히려 남들보다 앞서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군 복무는 의무이지만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에게 달렸다. 유해발굴병으로 복무한 2년은 나의 미래를 확고하게 해준 소중한 시기였으며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고마운 기회였다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Konas)

서승완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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