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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병 롤 모델 수기집〕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Written by. 김우형   입력 : 2013-02-02 오전 9: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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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2012년 8월 육·해·공군 및 해병대 등 현역병을 대상으로 지원입영 복무 후 취업 또는 학업에 도움이 된 사례를 모은 ‘현역병 지원입영 롤 모델 수기집’ 『내청춘에 충성』에 실린 내용임. 이번 수기집은 실제 사례를 통해 현역병 모집제도의 장점을 소개하고, 입영대상자 스스로 복무 할 군과 복무분야를 선택해서 지원 입영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편집자 주)

 내가 대학교 수학교육과에 입학을 한 후 1학년이란 시간을 정면으로 순식간에 파고 들어오는 중간·기말고사를 대비하는데 쓰고, 측면으로 파고 들어오는 여러 전공, 교직, 교양 교수님들의 과제를 사방팔방으로 막느라 많은 시간을 학업 쪽으로 소진했다.

 아! 물론 1학년이라 놀 땐 놀아야 한다는 반듯한 마음가짐으로 연극·뮤지컬이나 맛집 탐방 등 평소에 못해본 것들을 즐기면서 대학생활을 꾸려 나갔다. 중간·기말고사는 머리와펜을 사용해 공부를 하면 어느 정도의 성과가 나타나는데 매주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과제가 나의 심신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과제가 단순 레포트(Report) 제출이 아닌 한글이나 엑셀(Excel), 파워포인트(Power Point) 파일을 작성하여 교수님과 학생들 앞에서 발표하는 과제일 경우 과제 하나를 마치는데도 며칠을 끙끙 앓아가며 했던 기억이 난다.

 한글은 적당한 수준의 타자능력이 있었지만 단축키를 몰라 하나하나 마우스를 이용해야 했고, 엑셀은 자체가 수학함수이기 때문에 먼저 수식어를 알아야 표·차트를 만들 수 있는데 이것도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PPT! 대학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문서가 PPT인게 무색할 만큼 제일 골칫덩어리 였다.

 PPT로는 무궁무진하게 할 수 있는 것 들이 많다. 동영상을 재생시킬 수 있고 노래도 들을 수 있는 등 수많은 기능이 있지만 나에게는 너무 벅찬 것 들이였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글을 쓴 후 모두가 할 수 있는 글씨체 바꾸기, 그림 붙여놓기 등등 이런 단순한 것만 할 수 있어서 밤낮을 끙끙 앓아도 과제 점수가 매우 낮게 나왔다.

 이렇게 대학생활 1년이 훅 가고 대한민국 남자들의 통과의례라고 불리는 곳!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는곳! ‘군대’에 입대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내가 수학교육과인 만큼 복학한 선배들의 조언을 들어보면 ‘수학에 도움이 되는 포병의 FDC가 제일 괜찮다.’란 말을 듣고 105M 견인포병 FDC에 지원했다.

 FDC로 입대하여 훈련병시절이 끝나고 곧바로 자대에 전입하게 되었다. 전입하자마자 내가 수학교육과이고 FDC란 직책을 갖고 왔기 때문에 본부포대로 분류되었다. 우리 대대는 3개의 곡사(A.B.C)포대와 본부포대(Head Quater)로 나뉘었는데 아무래도 본부(HQ)란 단어 때문인지 벌써부터 내가 멋있어 보이고 FDC이기 때문에 엄청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은 마음에 들떠있었다.

 입대하기 전에 복학한 선배들이 군대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전역하면 너에게 도움 될 것 없다.’란 말을 해주었는데 내 생각은 달랐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한다면 손톱만큼의 아주 작은 영향이겠지만 좀 더 우리대대, 연대, 사단까지도 위상이 높아질 수 있고 뭐든지 열심히 하면 전역 후 사회에 나가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했다.

 자대전입 후 2주대기 동안 선임들이 앞으로 군 생활 동안 해야 할 것들을 소개해 주었다. 가장 우선순위인 FDC능력 향상시키기, 다음은 대대의 크고 작은 일정들을 하나하나 체크해주는 상황병, 각종 비문을 보존하고 문서를 편집하는 작전병 임무였다. 말 그대로 지휘통제실 지킴이였다. 이런 중요한 업무들을 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정보·작전분과를 이끌어 나가고 싶어 “제가 분대장 하고 싶습니다.”란 말씀을 드렸고 상병이 될 즈음에 자랑스럽게 분대장이란 녹색 견장을 어깨에 달았다.

 군 생활 동안 나라는 사람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준 것들이 있는데 가장 첫 번째로 전역한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윗사람에 대한 예의이다. 더욱이 나는 지휘통제실에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간부님들을 많이 마주치기 때문에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좀 더 빠르고 엄격하게 배울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작전병 업무인 상급 간부님들에게 보고하는 문서 작성하기다. 물론 보고할 문서들의 초안을 작성하는 것은 보좌관, 작전과장이지만 초안을 완성하고 난 후 시각적으로 한 눈에 보기 편하게 편집하는 것은 우리 업무였다.

 처음 이등병 때에는 선임들의 가르침과 스스로 PPT 연습을 해가면서 실력을 점차 늘려갔다. 그러다 보니 편집시간은 줄이고 동시에 편집능력을 확연히 늘릴 수 있었다. 한글파일작성은 거의 마우스를 이용하지 않을 정도로 단축키로만 편집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

 복학을 한 후 지금 한 학기를 마친 상태인데 공부할 것은 많고 과제할 것도 많았지만 과제하는데 있어서는 시간절약은 물론 PPT 파일작성 후 발표하는 과제면 학생들의‘오~’란 감탄이 나올 정도로 보기 좋게 만들 수 있었다.

 아! 여기서 한 가지 더! 앞에서 언급했듯이 레포트 작성 후 발표를 하기도 하는데 발표력 역시 군대에서 많이 키웠다. 사단급과 연대급에서 정기·불시 순찰에 대비하여 많은 발표 연습을 하였다. 또한 우리는 포병대대라서 실 포탄사격을 나가기도 하는데, 실 포탄사격은 민간지역에 포가 떨어지면 심각한 상황을 발생시키므로 안전을 제일 중요시 여긴다.

 그래서 포탄사격 전 수많은 점검관이 하나하나 체크를 하는데 미리 대비하여 작전보좌관과 함께 안전도판 및 안전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점검관 앞에서 발표를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노력하면 안 될게 없다.’란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나의 전(前) 분대장은 대대ACE란 말을 들을 정도로 정보·작전 분과를 잘 이끌어 나갔는데 내가 분대장이 된 이후엔 간부들에게 많은 꾸지람을 들었다. ‘FDC 능력이 매우 저조하다.’, ‘대대상황병들이 점점 상황 볼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 등등 분대장이 된 후 힘들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뒤처지면 사회생활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란 마인드로 다시 한 번 마음을 잡고 놓쳤던 것을 하나씩 바로 잡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발로 뛰면서 이등병이 실수 한 것이 있으면 직접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주고 하다 보니깐 점점 꾸지람이 줄어들었다. 또한 내가 분대장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군단포술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대대는 FDC능력이 사단 안에서도 상위급이 아닌 중하위급의 대대였다. 하지만 우리 FDC병사들은 ‘전역하기 전에 큰 일 한번 내보자.’란 생각으로 작전보좌관과 함께 한 달가량을 무척 열심히 연습을 해서 군단 포술 전(前) 사단포술에서 1등을 하고, 결국에는 군단포술에서도 1등을 하는 바람직한 결과를 얻어냈다. 정말 이때 비로소 ‘노력하면 안 될게 없다’라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역시 군대이야기를 꺼내면 밑도 끝도 없이 술술 나온다. 왜냐하면 군대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든 곳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의 소소한 행복과 자그마한 배움들이 결국 내 인생에서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탄탄한 밑거름이 되어주기 때문이다.(Konas)

김우형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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