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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의 대한민국 파괴 음모를 직시하자

왜곡과 모함으로 점철된 선동 영상물 '백년전쟁' 의 핵심내용은 건국세력=친일파=친일파가 세운 대한민국은 정통성 없고 미제의 식민지 불과...

Written by. 김효선   입력 : 2013-04-28 오전 6: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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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을 한 달 여 앞둔 2012년 11월 26일 서울아트시네마의 시사회를 시작으로 ‘백년전쟁’이라는 동영상 두 편이 공개됐다. 1편은 ‘두 얼굴의 이승만’이라는 제목으로, 또 한 편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업적을 전면 부정하는 내용으로 꾸며진 ‘프레이저보고서’라는 제목의 영상물이다.

 이 두 편의 ‘백년전쟁’은 「민족문제연구 소」가 주관하고 「4·9평화통일재단(인혁당사건 사형수의 유가족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단체)」이 제작비 일부를 지원해 제작됐다고 한다. 이후 ‘백년전쟁’은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려졌고, 지금까지 약 400만 명이 본 것으로 알려졌다.

 영상물을 제작한 측에서는 5월 말까지 ‘프레이저보고서’ 2부를 제작해 공개할 예정이라며, 2부에서 4부까지는 이 前 대통령의 하야부터 박정희 前 대통령 시기, 전두환-이명박 전 대통령 정권까지 영화제목처럼 100년에 이르는 역사를 다룰 예정 이라고 한다.

 ‘백년전쟁’을 제작한 감독으로 알려진 김지영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1년 한 지상파 방송에 나온 이승만 前 대통령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前 대통령을 미화하고 있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라고 밝힌바 있다.

 김지영은 이때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과 학계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관련 서적을 읽기 시작했고, ‘백년전쟁’을 만들기 위해 2년간 美 중앙정보부(CIA) 문서, 케네디 도서관에 있는 외교문서와 일본 극우파들의 전기까지 섭렵했다고 한다.

 이렇게 각종 문서를 섭렵한 결과물로 만들어진 ‘백년 전쟁’을 김지영은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김지영의 주장과는 달리 ‘백년전쟁’은 이승만의 애국심과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목적하에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선전물이었다.

 ‘백년전쟁’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1910년 한일합방 이래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친일파와 내전중인 나라로 설정해 놓고 시작한다. 그래서 이 영상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친일과 반일이라는 이분법 아래 무장투쟁만이 독립운동의 올바른 노선이라고 역설 한다.

 ‘백년전쟁’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내용은 이승만을 비롯한 건국세력은 친일파이고, 따라서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은 친일파들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미제의 식민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 이승만은 악질 친일파여야 하고, 김구를 비롯한 임정세력과 여운형 등은 저항세력 즉 반일세력으로 미화돼야 했다. 그래서 ‘백년전쟁’은 이승만을 ‘악질 친일 정치깡패·모리배’ 로 만들었다. ‘백년전쟁’은 이승만의 실체를 밝히겠다며 12개의 사례를 들었다.

 ‘백년전쟁’에 드러난 사례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이승만은 김노디와 불륜(Mann Act)으로 미국 법원에 기소됐다. 

 2) 하와이 교민들의 성금을 가로챘다.

 3) 이승만의 박사학위는 실력이 아니라 미국 기독교계의 지원으로 가능했다며, 이승만의 학문적 성과를 폄하했다. 

 4) 자신을 안중근과 같은 독립투사로 보이기 위해 일본 감옥에 가지도 않았으며 일본 감옥에서 고문을 당해 손끝이 시리다고 거짓말을 했다.

 5) 럭셔리 레스토랑에서 백인 미녀들에게 돈을 뿌렸다.

 6) 이승만은 자신을 안중근과 같은 독립투사로 보이기 위해 일본 감옥에 가지도 않았으면서 일본 감옥에 갔었다고 거짓말 했다.

 7) 이승만은 일본으로부터 아무런 위협을 당하지 않았다.

 8) 이승만이 김구에게 극언을 했다.

 9) 이승만이 호놀룰루 영자신문에 “일본과 잘 지내자”라는 친일 발언을 기고했다.

 10) 이승만은 1918년 하와이 법정에서 동포의 독립 운동을 밀고하는 증언을 한 민족 반역자다.

 11) 이승만은 맥아더에게 꼬리쳐서 대통령을 해먹었다.

 12) 1948년 CIA는 이승만을 “권력욕에 사로잡힌 노인”으로 평가했다.

 ‘백년전쟁’이 제시한 12개의 사례 중 이승만과 김노디의 불륜으로 미국 법원에 기소되었다는 첫 번째 사례 가운데 “고발되었다는 사실” 만을 제외하고는 그 나머지는 모두가 거짓이거나 편협한 왜곡 조작이었다.

 이른바 이승만과 김노디의 불륜으로 불리는 'Mann Act 위반 사건'은 구타펠이라는 미국 여성의 앙심으로 고발 되었으며, 기소되거나 재판에 회부된 적이 없는, 즉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건으로 불륜으로 고발된 것이 아니라 ‘이민법’ 위반으로 고발된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일본 감옥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고문 코스 프레나 CIA문서 건, 친일 발언과 독립운동을 밀고했다는 주장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이승만을 비판하는 단골 메뉴로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우려하는 바는 대한민국 건국을 주도 했던 이승만을 친일파이며 민족 반역자로 낙인찍기 시도를 했다는 사실이다.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은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과 국가 정체성을 파괴하기 위한 선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백년전쟁’ 동영상의 해악을 국가안보 사안으로 인식한 이인호 선생님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히도 학계의 원로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 문제를 직시했다는 사실이다. 1980 년대 이후 제도권에 진입하거나 학술단체라는 명목으로 꾸려진 곳에서 활동하던 반체제 운동권들에 의해 왜곡되고 비틀어진 우리의 현대사를 바로 잡는 계기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커다란 소득이 아닐 수 없다.

 ‘백년전쟁’에는 우리나라 사학계의 원로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인터뷰를 통해 현대사 왜곡 내지는 이승만 비난에 앞장섰다. 특히 국사편찬위원장을 역임했던 이만열의 등장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反대한민국적인 인물들에 의해 장악되었고 그들이 양산해 내는 왜곡된 사료들이 학계는 물론 교단에서까지 버젓이 정사인양 교육되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 서술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나 해석을 첨가하여 그 사건에 대해 경직된 시각이 아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것은 학자의 본분이라 할 것 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건 또는 사실을 왜곡함이 없는 바탕에서 시작돼야 한다. 그러나 ‘백년전쟁’은 역사적 사건 또는 사실을 철저하게 왜곡 시킨 채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국민을 강요하는 선전·선동물이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역사학계의 좌편향도 문제지만, 국가 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의 현대사에 대한 인식이다.

 이승만은 건국을 주도하여 대한민국을 세운 건국 대통령이자 초대 대통령이었다. 뿐만 아니라 2대·3대까지 역임하며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진영과의 체제 전이었던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의 원천이 누구로부터 비롯됐는지를 잊은 전형적인 배은망덕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고 있는 자들이 국가기관에 포진하여 이승만을 악덕 모리배 친일파로 매도하는 일에 기여했다는 것은 커다란 충격이다.

 이승만은 기록 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독립운동 중에는 물론 국가체제가 미비하던 건국초기에도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수많은 기록물을 남기고 보존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들이 이승만의 사상이나 활동을 연구하는 자료로 제대로 활용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99년에 생산한 ‘대한인국민회와 이승만<1915~36년간 하와이 법정자료>’의 「해제(解 題)」는 왜곡의 전형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하와이에서 활동한다는 자칭 역사가라는 로버타 장(Roberta W. S. Chang)이라는 여인에게 <법정자료>의 해제를 요청하고 이화여대 교수인 정병준이 번역하여 버젓이 출판했다.

 자칭 하와이 한인연구가라는 로버타 장이라는 여인은 누구인가? 로버타 장은 독립운동 후원자로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장금환의 딸이라고 한다. 장금환은 평안남도 안주 출신으로 1905년에 하와이로 이주해 국민회 활동을 하던 박용만 지지자였다. 이승만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없는 로버타 장 이라는 인물을 내세운 국사편찬위원회의 작태가 이 뿐만은 아닐 것이다.

 로버타 장의 <법정자료> 해제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 한 것이 아니라, 하와이 국민회의 박용만 지지자들 사이에 떠돌던 가십성 이야기들을 기록한 것으로 사료에 대한 객관성이 결여되었다. 건국 대통령에 대한 왜곡된 역사에 노출된 국민은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나 애국심은 물론이고 국가의 소중함을 망각한다.

 과거는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말을 상기할 때, 우리의 현재는 과거와 단절되었거나 또는 애써 단절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자성하고 지금 부터라도 바른 역사관 교육에 힘써야 할 것이다.(konas) 출처 : 월간충호

김 효 선 [(사)건국이념보급회 사무총장]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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