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우경화와 우리의 대응
지난 2012년 12월 26일 재출범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90대 및 96대 총리) 정권은 한국과 중국은 물론 미국마저도 우려를 표할 정도로 노골적인 우경화의 특징을 보여 왔다. 아베 총리는 궁극적으로 전쟁 포기와 군대 보유 금지를 규정한 헌법의 개정을 겨냥하여 우경화 움직임에 앞장서 질주해왔다. 그는 야스쿠니 참배를 옹호하고 과거 침략을 부정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등 마치 계산된 듯한 망언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12년 12월 16일 총선에서 ①과거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의 수정, ②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법 개정, ③독도 영유권 주장 강화, ④자학사관교육 철폐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압승했기 때문에 아베 총리의 행보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경화와 관련된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역사왜곡 망언이 이미 한계를 넘어서서,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독도영유권 주장은 물론 위안부를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731부대의 군국주의적 만행조차도 정당화하려 하고 있어 일본의 침략사가 되풀이 되는 듯하다.
물론 과거 자민당 시절에도 일본 보수진영은 보통국가론을 내세워 재무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망언들을 계속해 왔던바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라 할 수 있다. 또한 지난 2009년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었을 당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동아시아공동체를 내세워 이웃국가와의 선린관계를 강조하면서 보수 세력의 우경화와는 흐름을 달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핵무장의 길을 트고, 집단적 자위권 인정 촉구에 이어 국민투표로 평화헌법 개정 여부를 물어보자는 구체적인 움직임까지 보임으로써 우경화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우경화의 개념과 전개
우경화(右傾化, conservative swing)의 사전적 의미는 “우익적인 사상으로 기울어지게 됨, 또는 그렇게 되게 함”이다. 좌익(左翼)은 ‘왼쪽 날개’라는 뜻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급진적ㆍ혁신적 정파를 뜻하고, ‘오른쪽 날개’라는 뜻의 우익(右翼)은 정치적으로 점진적ㆍ보수적 정파를 뜻한다. 따라서 우경화(右傾化)란 사회적 기류가 보수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역사인식에서 일본의 우경화란 일본이 저지른 과거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는 경향이 강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일본근대사를 보면 국가진로에 중대한 갈림길이 된 예가 두 번 있었는데, 개국(開國) 전후의 1850년대와 1920년대 다이쇼시대의 국가진로 논쟁이 그것이다. 두 번 다 10여 년간의 논쟁을 벌인 끝에 앞에서는 메이지유신이라는 절대군주체제에 의한 근대화노선을 선택하였고, 후에는 국가주의노선을 따라 군국주의와 전쟁의 길을 걸었다. 현재는 전후 특히 탈냉전 이후 세계체제의 전환기를 맞아 국가진로를 모색하는 세 번째의 과도기로 보인다.
1945년 이후 일본은 요시다(吉田茂) 독트린을 국가전략으로 삼고, ‘평화헌법 준수,’ ‘미일동맹에 안전보장 의존,’ ‘경제성장에 주력’ 등의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특히 1990년대 이후 일본의 국력이 성장하고 이에 걸맞은 국제사회 내 역할을 요구받게 됨에 따라 요시다 독트린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일반적으로 전후 일본의 우경화는 ①일본 역사 왜곡화, ②일본 평화헌법 개정 추진, ③자위대의 군대 전환 추진, ④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과 같은 사건을 중심으로 표출되어 왔다. 문제는 과거역사를 왜곡하여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보통국가론을 내세워 재무장을 하려는 데 있다.
지난 2013년 4월 21일 아소 다로 부총리의 참배에 이어 이틀 후인 23일에는 여야 국회의원 168명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아베 총리는 다음날인 22일 참의원 답변에서 “아베 내각이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는 않을 것”이라 한데 이어 23일에는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면서 일제의 과거 침략을 부인하는 말을 했다. 그 다음날인 24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국가를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영령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신사참배를 정당화했다.
그 후 4월 27일 아베 총리는 일본 패전 이후 처음으로 정치 지도자가 전투복을 입고 탱크에 오르는가 하면 4월 28일 주권회복의 날에는 “천황폐하 만세” 삼창으로 우경화 행보가 절정에 달하기도 했다. 그것도 모자라 5월 12일에는 아베신조 총리 본인이 731부대를 연상케 하는 자위대 항공기를 타고 엄지를 치켜세우는 등 우경화를 부추겨왔다. 또한 차세대의 지도자로 떠오르고 있는 하시모토 도루 일본유신회 대표(오사카시장)도 이에 호응하여 5월 13일 “과거전쟁 당시 위안부가 필요했다”는 망언에 이어 5월 22일에는 “종군 위안부는 전쟁터의 매춘부” 등의 망언을 거듭하고 있다. 마치 지난날 군국주의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일본 우경화의 배경과 의도
최근 아베 정권의 우경화정책은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이라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우경화의 행태는 ①일본 국력의 강화, ②역사적 부채의식이 없는 전후 세대 정치인의 등장, ③전후 전범에 대한 처리의 미흡, ④중국의 국력 추월 및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사회 내 자신감 상실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우경화는 지난 20여 년 동안 계속되는 내수 침체에 2011년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등으로 일본사회 전체가 무기력해진 데다가, 최근 독도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한국, 중국과 갈등을 빚으면서 그 흐름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조셉 나이 교수는 지난 2013년 1월 14일 일본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우경화를 ‘잃어버린 20년에 대한 반동’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그는 최근 일본의 우경화를 1930년대 군국주의와 구분하여 1930년대에는 일본의 과잉 자신감이 침략주의로 치달았지만, 지금의 우경화는 일본이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최근 우경화에는 바닥까지 추락한 일본경제를 살리고 전후의 세대들에게 막강했던 제국주의를 선전하여 다시금 자신들이 세계의 주역이자 일등 국민임을 과시하려는 정치적 선동의 의도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최근 일본의 우경화는 지난 20년간의 경기침체를 벗어나 ‘강한 일본을 되찾겠다(強い日本を取り戻す)’는 몸부림이자 모험이다. ‘보통국가’라는 이름하의 군사대국화를 추진하여 자국의 동북아에서 패권 및 영향력을 유지․확대하려는 의도도 함께 함축되어 있다. 그러기에 저들은 역사를 왜곡을 하고 많은 피해와 상처를 주었던 이웃나라들에게 조차 지난날의 용서와 사죄는커녕 시대상이며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강변을 하고 있으며 자신들은 절대로 침략을 하거나 인륜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며 선진국으로서 미개국을 개화시키고 발전시킨 것이라고 호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대응
2012년 12월 26일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재집권한 이후 두드러진 현상은 우경화이다. 일본의 우경화는 뿌리가 깊을 뿐만 아니라 이를 견제할 브레이크가 없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에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유신회 대표가 망언의 흐름을 이어받고 있다. 이것은 지난날 군국주의 시절로 되돌아가겠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기도 하다.
아베 신조 일본총리의 “침략에 대한 정의가 확실치 않다”는 망언과 우경화 움직임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즈(NYT)』등과 같은 외신들도 “군국주의”라며 맹비난이 이어진 바 있다. 우리 국회도 4월 29일 최근 아베 신조 정권의 우경화 행보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일본각료 등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및 침략전쟁 부인 만언 규탄 결의안’(재석의원 239인중 찬성 238인, 기권 1인)을 채택한 바 있다.
현명한 민족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터득하기 마련이다. 독일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책임지려는 겸허한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나치 전범에 대해서는 지금도 끝까지 추적해 법정에 세우고 있다. 거기에 비교한다면 관동군의 생체실험을 연상시키는 자위대 항공기에 올라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아베 총리나 그를 추종하는 일단의 정치인들의 역사인식은 아직 덜 떨어진 미숙아단계임을 연상시켜줄 따름이다.
일본 아베정권의 우경화는 이미 예상되어 왔지만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향후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라 ①무라야마 담화 수정, ②고노 담화 부정, ③독도문제 국제사법재판소(ICJ) 단독 제소, ④8월 15일 일본 각료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⑤10월 야스쿠니 추계 예대제(例大祭·제사) 참배 등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외교적 대응 및 군사적 대비가 함께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일본의 역사인식과 우경화정책기조의 저의를 직시․간파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북한의 도발위기를 역이용하여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일본과 우호협력의 기조를 유지해 나가되 우경화에 앞장선 정치인들이 인기몰이 차원에서 침략역사를 정당화하려는 무책임한 책략에는 당당히 맞서 나가야 할 것이다.일본 정치가들의 잘못된 역사인식, 일제의 한국침략과 일제만행을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으로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일본 국민임을 상기시켜 줄 수 있는 전략적 마인드와 방책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셋째, 굳건한 한미동맹의 바탕위에서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한 자주적․공조적인 군사적 대비책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국권을 침탈․유린당한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국력을 튼튼히 하고 국민의 안보의식을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로 승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konas)출처: 월간자유
김강녕(조화정치연구원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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