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목숨으로 지켰다"
유격백마부대, 제62주기 추도식
“1950년 6·25전쟁은 김일성이 일으킨 동족상잔의 비극이요, UN군이 참전한 국제전쟁이요(중략)...오직 나라를 위한 일념에 북위 40도선을 넘나들며 싸우기를 3년, 이름 없는 섬과 험한 산골에서 적탄에 쓰러진 전몰자가 552이에 이르렀으니 첫 추도식이 백령도였고 그 후 이곳 저곳 전전하며 위령의 제단을 쌓기 50년에 여기 서울 시민의 숲에 님들을 기리며 탑비를 세우노니 님들이여 고이 잠드소서! 조국통일을 지켜보소서(유격백마부대 제62주기 추도식 약사 보고에서)!”
6·25전쟁 당시 어린 청소년들이 군번도 계급도, 무기지원도 없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애국충정과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유격활동을 펼치다 전사한 전우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유격백마부대 제62주기 추도식’이 25일 정오 서초구 양재동 소재 양재 시민의 숲에서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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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백마부대전우회(회장 최성룡) 주관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신명철 남부보훈지청장을 비롯해 박희도 前 육군참모총장, 전제현 용문산전투전우회 회장 등 전우회 회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에 이어 약사보고, 추도사, 만세삼창, 헌화 및 분향, 유격백마부대 행진곡 제창 순으로 진행 됐다.
신명철 남부보훈지청장은 추도사를 통해 조국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피 끓는 애국심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유격백마부대전우회 회원과 명을 달리한 호국영령에 감사와 위무의 뜻을 전하며 “6·25 참전 용사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경제적인 발전을 거둘 수 있었다”며 참전용사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지원사업에 만전을 기할 것을 표했다.
전제현 회장은 6·25전쟁 당시 유격백마부대 결성 배경을 회고하고, 전투경험도 없는 청소년들이 무기도, 보급도 없이 싸웠던 당시의 아픔을 전했다.
전 회장은 또 그 무엇보다 552인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면서 오늘날 국가정보원을 무력화 시키고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는 세력에 대한 철저한 응징과 타도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자유는 눈물과 희생 없이 거져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며 “희생을 통한 평화는 입과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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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룡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조국이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분연히 일어났던 것처럼 남아 있는 유격백마부대원들은 끝까지 조국의 안녕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면서 오늘날 흔들리고 있는 국가안보를 위해 정부가 공권력을 가지고 안보의 틀을 다져 나갈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고 주장했다.
유격백마부대는 1950년 10월 38도선을 넘어 북진하였던 UN연합군이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철수하자 평안북도 정주군과 박천군 일대에서 치안활동을 하던 청년들과 오산학교 학생들이 그해 12월 유격백마부대를 조직했다.
김응수를 부대장으로 한 대원들은 군번도 없고 무기 등 변변한 지원이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혁혁한 전과를 올려 UN연합군의 정규작전에 크게 이바지 했으며, 이 기간 중 552명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었다.
이에 생존 대원들이 1952년 백령도에서 추도식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각 처를 전전하며 추도행사를 하다가 1992년 양재 시민의 숲에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충혼탑을 세웠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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