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용사묘지 예산 미루지 말라"
본 내용은 문화일보 13일자 37면 기고란에 게재된 글임.(편집자 주)
2011년 2월 27일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중 최후의 생존자 프랭크 버클스 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워싱턴 시내에는 일제히 조기가 나부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이 엘링턴 국립묘지 장례식에 참석했다. 수천 명의 추모 인파가 몰렸다. 미국의 그 어떤 유명 인사의 장례식보다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졌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미국이 세계 최고 군사 강국, 경제 대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지도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를 강조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6ㆍ25 기념식에서 "참전용사들의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식적으로 서울과 대전에 국립현충원이 있다. 그런데 서울은 거의 다 찼고, 대전 역시 여분이 많지 않다. 영면 대상 자격도 엄격하다.
군인의 경우 20년 이상 복무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10년에서 19년 복무하고 돌아가신 분들은 영면할 곳이 마땅치가 않다. 그뿐 아니라 영남ㆍ호남 등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후손들이 찾기가 쉽지 않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한민국재향군인회에서는 수 백억 원의 자체 예산을 들여 전국 각지에 향군 묘역을 조성해 왔다.
2001년에는 경북 영천, 2002년에는 전북 임실, 2008년에는 경기 이천에 호국용사묘역을 조성했다. 여기에는 서울ㆍ대전의 국립묘지에 가지 못하는 참전용사, 그리고 갈 수 있어도 거리 때문에 근처에 묻히기를 원하는 참전용사 수만 명이 영면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경남 산청에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산청호국원은 2012년 착공해 내년 10월 완공 예정으로 이미 공사가 50% 가량 진척된 상태다. 돌아가신 500여 참전용사가 산청호국원 완공을 기다리며 임시 안치된 곳에서 대기하고 있다.
또 앞으로 1년 새 고령의 호국용사 가운데 돌아가시는 분도 있을 것이므로 산청호국원 완공은 매우 시급하고 절실하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내년 정부 지원 예산 100여억 원이 2015년으로 이월돼 불가피하게 준공이 1년 지연되게 된 것이다. 복지 예산을 충당하다 보니 호국원 건립 예산을 삭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예산 당국의 해명 아닌 해명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자처하며, 연간 342조 원의 예산을 쓰는 대한민국이 100억 원이 없어 호국용사묘역 준공을 늦춘다니 호국영령들도 놀랄 일이 아닌가? 또 전 세계인은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 대한민국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겠는가?
모름지기 "참전용사를 예우하지 않는 국민은 자유와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고 했다. 국민과의 약속도 중요하고, 살아 있는 자의 복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사후에 참전용사들의 묘역을 조성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동안 향군이 자체 예산으로 완성한 3곳의 호국원과 내년에 완공될 산청호국원은 단순히 참전용사들의 묘역만은 아니다. 지역 내 수많은 학생ㆍ청소년ㆍ주민이 수시로 방문해 그들의 위훈을 기리고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체험할 수 있는 안보 교육의 산 도장이기도 하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참전용사가 예우받지 않고서 어떻게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달려 나가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게 하는 것, 전쟁이 일어나면 너도나도 나서서 나라를 지키는 것, 이 같은 지상 명제를 이뤄내는 일은 간단하다.
나라를 위해 목숨바쳐 싸운 참전용사들이 살아서는 전쟁영웅으로 예우받고, 사후에는 호국의 주역으로 존경받도록 하면 된다.
산청호국원이 계획대로 차질없이 준공돼 참전용사들이 편히 영면(永眠)할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 당국의 용단을 기대한다.
박세환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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