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한류(韓流)와 패스트푸드다”
통일하면 한류와 패스트푸드가 생각난다. 북한에서의 한류 확산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한 정권은 지난해 11월 남한에서 유입된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음란물을 유통했다는 혐의로 강원도 원산을 비롯한 7개 주요 도시에서 80여 명의 주민을 무더기로 공개 처형했다. 북한 내부에 남한 영상물이 상당히 넓게 퍼져 있다는 방증이다. 북한 주민들이 영상물을 통해 느끼는 한국 사회에 대한 동경은 통일에 대한 열망을 높여 준다.
최근 한 언론사에서 탈북자를 대상으로 통일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탈북자들이 대한민국 국민들보다 통일을 더 원하고, 통일의 이익도 더 높이 평가했다.
이들이 통일은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이면에는 한류 영향이 크다. 한국 영상물에 비치는 자유와 풍요가 넘치는 한국 사회는 북한 주민들이 꿈꾸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20년 내 통일 가능성이 있다는 응답이 44%였지만 통일은 그보다 훨씬 더 가까이 와 있다.
통일과 패스트푸드는 어떤 관계일까. 탈북자 안보강사 중 북한군 군관(장교) 출신이 있다. 늙은 아버지를 무동(舞童)에 태우고 어린 두 아들의 손을 잡고 두만강을 넘어 2009년 북한을 탈출했다. 탈출한 지 1년여 만에 어렵게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그는 수년간의 노력과 고생 끝에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고, 아이들도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입학해 잘 적응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어느 날 탈북자 아버지가 물었다. “북한에 가고 싶지 않느냐?” “북한 친구들 보고 싶지 않느냐?” “한국이 좋으냐? 북한이 좋으냐?” 눈치를 보던 아이들이 대답했다. 친구들이 보고 싶지만 북한에는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유가 뜻밖이었다. “한국에서는 치킨과 피자를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지만, 북한에는 피자와 치킨이 없기 때문”이란다. 어린 나이에도 북한에서 배고팠던 기억이 가장 아팠던 모양이다.
이 아이들에게 통일의 이상향을 그리라면 아마도 피자와 치킨이 등장할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치킨과 피자를 맘껏 먹을 수 있는 한국 사회가 통일의 이상적인 모델인 것이다.
미국의 코카콜라 회사와 이탈리아의 피자 레스토랑, 한국인이 운영하는 치킨가게가 북한의 수도 평양에 문을 연 지 한참 됐다. 한 번이라도 피자와 치킨·코카콜라를 먹어 본 북한 젊은이라면 그 맛에 매료될 것이다. 폐쇄 국가의 문을 여는 상징이 코카콜라와 피자가 될 정도로 맛의 확산은 빠르다. 빗장을 열기 위해 음식이 먼저인 것은 경계심이 적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한류가, 젊은이들에게는 패스트푸드가 소박하고 현실적인 통일의 꿈인 셈이다.
통일은 힘든 대 여정이고, 한민족사의 가장 큰 대사(大事)이기는 하지만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북한 주민의 입장을 배려하는 통일은 원하는 것을 하나하나 이뤄 가는 과정이 돼야 한다. 의식주는 물론 취업과 미래에 대해 걱정 없는 사회, 차별도 없고 자유와 인권·풍요가 넘치는 통일이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의 꿈과 염원이 ‘대박’이 될 수 있도록 함께 통일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윤규식 (국방정신전력원 교수ㆍ정치학 박사)
본 내용은 국방일보 11일자 16면 ‘오피니언’란에 게재된 글임.(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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