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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복지환(心腹之患)이 된 종북세력

굳이 비유한다면 무인기가 눈앞에 날아드는 모기떼라면 종북세력은 심장에 퍼져가는 암세포라고나 할까?

Written by. 김희상(조갑제닷컴)   입력 : 2014-04-18 오전 1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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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무인기 도발에 지금 온 나라가 허둥대며 ‘맞춤 갑옷’을 찾는 데만 관심을 집중하는 듯하다. 언필칭 ‘새로운 위협’이라지만 어디까지나 NLL 포격과 같은 재래식 도발의 하나다. 이런 경우는 ‘튼튼한 갑옷’ 보다도 ‘억제’가 필요하다. 우리의 의지와 용기가 문제 일뿐 억제가 그리 어렵지도 않을 것이고, 이런 종류의 도발은 하나 둘이 아닐 텐데 북한이 ‘새로운 방식의 도발’을 할 때 마다 우리가 비싼 돈을 들여 새로운 갑옷을 맞추려 들다가는 우리가 먼저 견딜 수 없을 테니까. 또 북한이 굳이 ‘북한 무인기’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을 보면 당분간은 같은 도발을 또 하지는 못할 것이다. 더욱이 북한의 위협이 어디 무인기뿐인가? 북한 장사정포나 핵․미사일은 훨씬 더 무섭다. 그러나 이런 도발은 전면전쟁의 문을 여는 행위인데 적어도 북한이 당장 연합사와 정면 대결을 각오하고 그런 도발을 강행 할 것 같지는 않다.

 1. 종북세력(從北勢力)의 위협?

 더 치명적인 위협은 따로 있다. 우리사회 내부의 적(敵) ‘북한 간접침략과 연계된 종북세력’이 바로 그것이다.

 종북세력? 1964년 북한은 한반도 적화통일을 위한 이른바 3대혁명역량 전략을 채택하고, 대남(한국)혁명역량 강화를 위해 인민혁명전쟁 차원에서의 간접침략을 시도한다. 그 결과 한국사회 내에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며 우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하고 적화통일을 추구하는 세력이 형성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종북세력이다.

 물론 건강한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서로 대립 갈등하는 이념과 집단은 어디서나 있기 마련이요 그것이 바로 민주사회의 강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라야지 그런 반체제 반사회적 세력이 정도를 넘어 창궐(猖獗)하고 그것이 외침과 맞물리면 그런 사회, 그런 국가는 견딜 수가 없는 법이다.

 1차, 2차 세계 대전 직전의 프랑스가 그랬고 나치 독일과 합병되기 전의 오스트리아가 그랬다. 한국에서도 6.25 남침 전에 여수 14연대 반란, 대구 폭동, 제주폭동 등을 조기에 진압하고 정리했으니 망정이지 만약 6.25 북한의 남침과 맞물렸더라면 대한민국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 까? 우리가 아는 1975년 자유 월남의 패망은 그 가장 극적인 경우의 하나일 뿐이다.

 일찍이 프레데릭 대왕이 후방의 적 3명은 전면의 적 28명과 같다고 했는데, ‘내부의 적’은 또 다르다. 외부의 적보다 훨씬 더 무서운 법이다. 굳이 비유한다면 무인기가 눈앞에 날아드는 모기떼라면 종북세력은 심장에 퍼져가는 암세포라고나 할까? 월남 패망을 현장에서 지켜본 이대용 공사는 ‘대략 5만, 국민 0.5% 정도의 공산당 간첩들이 월맹에 비해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자랑하던 월남을 뒤흔들고 마침내는 패망시켰다면서 이미 걱정이 태산이다.

 실제로 그런 방식은 오늘 북한에게도 ‘연합사와 정면 대결하는 모험을 회피하면서’ 적화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유용한 길의 하나일 것이다. 북한도 그래서 끊임없이 종북세력의 씨를 뿌리고 가꾸어 온 것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 그동안 우리 사회에 대한 종북세력의 도전 또한 매우 격렬했다. 예컨대 우리 인터넷에는 일찍부터 사상적 배경과 목적이 의심스러운 수많은 글들이 아주 난무(亂舞)해 왔다.

 2004년에는 ‘목숨을 버려 10년 내 적화통일을 다짐’하는 현직(당시) 여고(女高) 국어 교사의 시가 인터넷 가득히 흘러 다녔다. ‘군자산의 약속’이 그것이다. 지금도 북한 당국과 입을 맞춰 ‘천안함 폭침도 한국정부의 자작극’이요 ‘무인기 도발은 선거를 앞둔 한국 정부의 음모’라고 고집한다.

 일부 방송 같은 데서는 역사적 진실을 왜곡해가며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충성을 조롱하기도 했다. 또 문화 권력이 좌파의 손에 넘어 간 것은 이미 오래라더니 영화와 연극 같은 데서는 전혀 비현실적인 상상력과 거짓으로 한·미동맹을 폄훼(貶毁)하고 우리 정부와 국군에게는 망신을 주어왔다.

 젊은 층에게는 반 기업정서를 부추기기도 하고. 그래서 조국에 대한 긍지를 짓밟고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가치와 신념 그리고 우리 국가 안보태세의 뿌리를 흔들어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드는 것이다.

 이처럼 명백한 위협이 공공연히 진행된다면 그것은 이미 또 다른 침략 전쟁이나 다름이 없다. 선전포고도 없고 포성도 울리지 않지만, 자유민주 체제로서는 오히려 효과적 대응이 가장 어려운, 그런 전쟁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침략전쟁에 ‘포용’이니 ‘이념의 시대는 지나갔다.’느니 해가며 단호히 대처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명백한 불법에도 엄정한 법집행을 망설임으로써, 사회저변에 종북세력이 함께 가야 할 합법적 진보인양 폭넓게 정착되게 만들었다. 사실상 방조(傍助)한 셈이라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종북세력이 오늘 저렇게 커진 데는 우리 잘못도 크다. 요약하자면 북한에 의해 씨가 뿌려진 종북의 암세포는 이른바 군사권위주의 통치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모순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조금씩 뿌리를 내리다가 10년 햇볕정책을 맞아 공산주의가 우리 국민의 정서(情緖)에 함께 가야 할 진보인양 한껏 꽃을 피워 막강한 사회세력의 하나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 뒤를 이은 보수 정부가 ‘중도(中道)’를 내 세워 엄정한 법집행을 망설이면서 공산주의 이념과 활동이 마치 합법적인 것처럼 관념화되고, 여기에 일부 기득권층의 탐욕과 부도덕성 같은 것들이 거름이 되어 사회전반에 폭넓게 뿌리를 활착시킬 수 있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전쟁의 수행은 군대가 아니라 주로 공권력과 법의 몫인데 오늘의 정치(政治)는 물론 법(法)도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지가 의문이다. 예컨대 경찰관 500여명을 다치게 하고, 경찰 차량 100대 이상을 파괴한 2008년 광우병 난동자들을 거의 다 풀어주고 심지어 일부 판사들은 난동자들에 대한 재판을 빨리 하라고 권유한 법원장을 몰아내려고 좌파적 이념서클 들이 집단행동까지 하지 않았던가? 최근에는 김일성 묘소에 참배한 사람에게 동방예의지국 운운하며 준엄해야 할 법조문을 희롱한 판사도 있다.

 이래저래 법원, 검찰, 언론기관은 물론 국회에도 종북세력이 있을지 모른다는 어느 전(前) 국정원장의 술회나 북한 간접침략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있는 검사나 판사가 20-30% 이상일 것이라며 우려하는 우익 사회학자들의 주장에 두루 공감이 간다. 오죽하고 ‘좌파무죄(左派無罪) 우파유죄(右派有罪)’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지 않는가?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공권력과 법치(法治)가 함부로 유린당하고 사회의 안정과 평화가 깨지고 있는데, 어이없게도 법을 만드는 입법기관 혹은 법을 수호해야 할 법조인들이 앞장서서 한국의 법질서를 우롱하고 훼손하고 있다는 불신이 가득하다.

 2. 오늘의 종북세력, 어디까지 왔나?

 그 결과 이제 종북세력은 너무 커졌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단순한 사회적 다양성으로 감싸 않을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우리 국가 안보차원의 중대한 위협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1997년 황장엽 선생의 망명서신에 이미 “남한에 고정간첩이 5만 명이고 권력 핵심부에도 침투해있다.”는 경고가 있었는데 2011년 어느 공영방송의 ‘2011년 국민 통일의식 조사’에서도 북한 정권에 적극 호의적인 세력이 9.6%로 나타났다.

 간첩은 아닐지라도 북한이 무슨 짓을 저질러도 변함없이 지지하는 세력이 10%대나 된다는 뜻이다. 하긴 어느 우국지사는 국민의 10%가 친북이요, 동조세력까지 포함하면 30%는 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고, 미국 정보 당국에서도 종북·맹북(盲北)·친북세력을 합쳐 20만 명으로 추산한다고 한다. 이러니 광우병 사태 때 김정일이가 광화문에 언제든 10만은 모을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을 것이다.

 천안함 사태 시 서울의 고등학교 학생 중 91.1%가 북한 소행임을 못 믿겠다.’고 했고 아직도 정부의 천안함 발표를 믿지 않는 사람이 30%를 넘는다니 이 모두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2004년에 넘어 온 북한 통전부 출신의 한 탈북자는 어느 여의도 정치인을 방문했더니 ‘아주 감명 깊었다.’며 자랑스레 보여주는 책자가 바로 통전부에서 자신이 만들어 보낸 것이더란다.

 이석기 사태는 또 어떤가? 광우병 파동 때는 북한 ‘구국전선’에서 ‘촛불시위 투쟁지침이 하달되고’ 난 후에 촛불시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하고, 한동안 일부 군인들까지도 종북(從北)사이트를 열고 법정에서는 ‘김정일 만세’ 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오늘 북한 간접침략이 어디까지 침투해 있고 우리 사회의 이념적 질병이 얼마나 깊은지 알만 하지 않은가?

 물론 이들을 모두 다 우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종북세력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민주화를 지향하는 ‘지성인’이나 종교계의 개혁을 추구하는 ‘참 종교인’ 순수 ‘노동운동가’ 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우리는 과거 고 딘 디엠 정부의 독재와 부패에 항의하던 월남 사회의 지식인 들이나 분신자살하는 승려들이 결과적으로는 월남 사회에 베트콩을 뿌리내리게 하고 끝내는 월남을 무너뜨리는 단초가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민주화와 사회개혁 운동에 뛰어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본의 아니게 베트콩의 앞잡이가 되어 불법적 사회혼란을 부추기고 월맹의 간접침략에 이용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적지 않은 순수한 인사들이 스스로 증언하고 있듯이 지난시기 우리 사회에서도 그랬다. 때로는 그들이 순수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위협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학교 교육부터가 문제다. 교육 현장에서는 어린 학생과 젊은이들에 대한 이런저런 좌파적 교육이 과거보다도 한결 더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래서 한 때 뜻있는 이들이 모여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올바른 현대사 교육을 하지는 운동도 있었다. 그에 호응해 교육현장에 서 보니 잘만 하면 학생들의 역사인식을 바로잡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끈질긴 전교조의 반발 등으로 금방 중단되고 말았다. 하긴 전국 2322개 고교 가운데 유일하게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선택한 학교 교장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결단”으로 채택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학교는 수많은 비난과 압력 공갈 협박으로 큰 고통을 당했다.

 존경받는 어느 원로 학자는 ‘좌익 전체주의의 발호(跋扈)’라고 절규했다. 탈북동포들이 ‘북한 교과서로도 손색이 없다’는 교과서는 괜찮은데 대한민국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기술했다는 교과서를 선택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식이니 오늘 우리 교육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어떤 모양새일가?

 사회교육은 더 큰 문제다. 예컨대 지금도 ‘00 추모공원’이니 하는 등의 이름으로 사실상 반(反) 대한민국 추모 시설들이 전국 곳곳에 널려있다. 돌아보면 대체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 군경(軍警)은 왜 그런 작전을 펼 수밖에 없었는지 하는 원인과 배경은 없고 국군과 미군이 우리 국민을 무작정 잔인무도(殘忍無道)하게 학살하는 장면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것을 국가예산으로 지어서 국가 공무원을 배치하여 국가가 관리한다. 그러면서 주변 어린 학생들에게 참배하게 한다. 배움의 전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6.25 당시 북한 인민군이나 공산 빨치산들에게 희생되고 집단적으로 학살된 국민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우리 국민 희생자들을 위한 이른바 ‘추모공원’은 별로 본적이 없다. 북한은 공산당의 주민 학살로 시작되어 피로 피를 씻는 좌우익 투쟁으로 3만 5천여 주민이 학살된 것을 소수의 수색대 외에는 근처에 가지도 않았던 미군에게 뒤집어씌운 이른바 ‘신천양민 학살사건’을 날조해서 체제 선전에 활용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 사건을 선전하는 ‘신천박물관’은 피카소가 속아 넘어가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을 그려서 더욱 유명해 지기도 했다. 남과 북의 태도가 지극히 대조적이다.

 최근에는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한 편에서는 열혈지사들이 ‘희생자를 가짜로 심사하여 대통령을 비롯한 국무회의 장관들과 국민들이 폭도사령관 김의봉 이하 2,500여명의 좌익 폭도들 앞에 머리 숙여 추념한다면 그 나라는 대한민국인가? 인민공화국인가?’라고 절규하고 있는데, 정부는 2014년 3월 18일 국무회의에서 4.3 폭동을 추념일로 결정하고 3월 24일 서명 공포한 것이다. 국무회의 이전(以前) 보훈정책과 관련해 국무총리 및 관련 장관들이 함께하는 회의가 있어 이 문제를 제기 했다.

 ‘보훈의 기본은 보훈대상이 되는 분들의 업적과 뜻을 기리고 영광되게 하는 것이 출발점인데, 아무리 화합도 좋지만 4.3 폭동의 주동자에다 군경과 그 가족을 학살한자들까지 뭉뚱그려 추념한다면 보훈의 큰 뜻을 모욕하는 것 아니겠는가? 또 진압 작전에 참여했던 군경은 어쩌라는 것인가? 앞으로는 국가가 불러도 이런 작전에는 참여 하지 말라는 뜻인가?’ 전국적인 저항이 있을 것이라는 식의 좀 격앙된 발언까지 했었지만 결과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담당자들이 ‘제주 4·3평화공원’이나 둘러보고 기념일로 지정했는지 모르겠다. 북한군과 좌익의 손에 학살당한 양민을 위한 국가 추념일은 없는데 남로당이 주동한 반란 사건을 옥석구분도 없이 국가가 기념하는 것은 호국영령을 모독하는 것이요 국가적 자해행위에 다름 아닐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 모두 국가가 앞장서서 종북세력을 양산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국가에 충성하고 국방의 임무에 종사한 사람들이 느낄 모멸감은 무시하더라도 학교와 사회에서 그런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의 뇌리에 국군이, 대한민국이 어떤 이미지로 박힐 것인지 모골(毛骨)이 다 송연(悚然)해진다.

 그 뿐이 아니다. 명확한 증거도 없이 함부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이런저런 명목으로 좌익집단에 지원되는 국가 예산도 결코 적지가 않다고 한다. 좌파 정부 때는 또 그랬다 하더라도 보수 우파 정부가 들어선 지가 언젠데 지금도 ‘부유한 좌파 vs 가난한 우파’라는 우파단체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하긴 반군, 반국가적 영화 마다 이름 있는 재벌에서 돈을 대고 이른바 국민배우 들이 줄을 서서 등장하고 있는 것도 불쾌하기는 마찬가지다.

 계속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무릇 모든 국가정책은 국민의 공감대 위에 서야만 성공이 가능한 법이고 크든 적든 국민적 희생이 뒷받침 되어야 할 통일정책의 경우는 특히 더 일치된 공감대가 필수적이다.

 그런 차원에서 자유통일을 위해 가장 서둘러야 할 사안은 자유통일의 대척점(對蹠點)에 서있는 종북세력을 정리하는 것일 것이다. 도대체 오늘 우리 사회를 이리저리 찢어 놓고 도약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그들을 잘 관리하고 정리하지 않고서는 통일은커녕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가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이 시대의 화두 ‘자유통일대박’의 꿈은 당연히 불가능 해 질 것이고. 하긴 ‘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정부의 구상이 좌편향 교육으로 되치기 당했는데, 통일대박도 적화통일로 되치기 당할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우국지사도 있다.

 훨씬 더 긴박하게 우려하는 이도 있다. 계속 이래서는 우리의 미래가 없어질 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주의적 신념과 공동체적 응집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와해(瓦解)되어 가고, 그동안 그래왔듯이 좌파적 이념이 그 공백을 메워 친북 종북세력이 그 뒤를 이어 확장되어 나가면 자유 대한민국의 미래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월남과는 다르다고? 물론 그렇다. 그러나 그 대신 오늘의 북한은 핵에다 20만 가까운 특수작전 전력을 비롯한 강력한 재래식 전력과 제법 발전된 Cyber 전력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장차 종북세력이 더욱 커지고 그것이 이들과 연결되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말이다.

 더욱이 이럴 때일수록 공권력이 강하고 법질서가 확고해야 하는 법이다. 국가는 군대가 허약하면 외침에 무너지지만 공권력이 흔들리면 스스로 주저앉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공권력의 상징인 정복(正服)의 경찰서장이 불법 시위대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들을 호되게 경을 치게 해도 시원찮을 일인데도 법은 어디로 갔는지, 구속이 안 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영웅이 된다. 언필칭 법치국가에서 이렇게 법질서가 무너지고 공권력이 무기력하면 국체(國體)인들 어떻게 수호할 수 있을 것인가?

 3. 종북세력,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그렇다면 더 늦지 않게 서둘러 ‘종북세력을 발본색원’해야 한다. 그러나 신통한 대책도 잘 보이지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이제 ‘사회적 병리현상이라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지만 ‘단순한 이념 문제를 넘어선 세대, 뉴미디어, 경제난 등 구조적 요인이 얽힌 문제이기 때문에 당장 해결책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보니 오늘 우리 사회의 높은 IT기술을 바탕으로 한 효율적인 신종 매체들도 종북세력의 확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오늘 SNS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기본 인식체계(충분히 성숙되지 못한 선진민주시민의식)와 좌편향 학교교사들이 결합된 시너지(synergy) 효과가 이런 좌파적 분위기를 더욱 급속하게 확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SNS 등의 기술 수준은 너무 앞서가는데 정부의 대응은 미숙한데다, 오늘의 다양한 사회적 비리와 부패, 양극화 그리고 일부 기득권층의 비도덕성(非道德性) 같은 것들이 여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고도 한다.

 결국 오늘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제대로 지켜 내자면 정부는 물론 온 사회가 다 함께 관심을 기울이고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저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의 다양성’정도로 보는지 극히 일부 보수적 선각자를 제외하면 우리 사회는 물론 정부도 별로 적극적이지 않다.

 젊은이들의 인식에 오해와 혼란이 있으면 이를 바로 잡아 주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꾸짖기도 해야 할 일이지만 다들 야무지게 가르치기 보다는 오히려 이들의 ‘분노’에 아첨하기 바쁘다.

 사회도 그렇지만 특히 정치권은 명백한 잘못이 있어도 오히려 그것을 합리화해 주고 젊은이들에 아첨해서 다만 몇 장이라도 표를 지키는데 몰두한다. 실은 그 모두 불법적 사회혼란, 북한 간접침략에 방조하고 있는 것이요, 나라의 미래, 바로 그 젊은이들의 미래에 헤어 날 수 없는 함정을 파는 일만 열심히 하고 있는 것과 같을 텐데도.

 물론 오늘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 모두를 우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종북세력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더러는 공권력에 격렬하게 저항 하는 사람들 중에도 순수하게 민주화를 지향하는 ‘지성인’이나 종교계의 개혁을 추구하는 ‘참 종교인’ 순수 ‘노동운동가’ 도 포함되어 있음은 사실이니까.

 그러나 그들도 좀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과거 월남에서는 고 딘 디엠 정부의 독재와 부패에 항의하던 월남의 지식인 들이나 분신자살하는 승려들이 결과적으로는 월남 사회에 베트콩을 뿌리내리게 하고 끝내는 월남을 무너뜨리는 단초가 되었다는 점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민주화와 사회개혁 운동에 뛰어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본의 아니게 베트콩의 앞잡이가 되어 불법적 사회혼란을 부추기고 월맹의 간접침략에 이용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달라야 할 것이다. 적어도 종북세력에 이용당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당연히 정부의 효율적 조치다. 아마도 일단은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 경찰 등 국가 대공기구들이 어떻게 하든 북한의 간접침략을 차단하고 종북세력을 색출하는데 나서야 할 것이다. 그것이 그 시작점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더 이 시점 참담하게 흔들리고 있는 듯한 우리 대공부서의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더욱이 이 문제는 이제 어느 일개 부서의 역량만으로는 대처 할 수도 없는 중차대한 국가 안보위협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 오늘 종북세력의 암세포가 교육계와 문화계는 물론 법조계와 정치계 등등 사회 각 부분으로 너무 광범하고 깊이 전이(轉移)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 지도자가 직접 나서야 하고 그래야 해결이 가능 할 것이다. 아마도 흔들리고 있는 대공조직부터 다잡고 교육과 문화, 홍보 등 국가의 총체적 역량을 결집해서 종북 암세포의 확산을 막고 차단하는 것도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컨대 교육부에서는 학교 교육도 재점검해 보고 최근 문제가 된 4·3 국가 추념일이나 지난 십 수 년 사이 만들어진 수많은 추념시설들도 사회교육 차원에서 다시 한 번 면밀하게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그와 함께 자유민주주의적 법질서를 흔드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언론과 방송 문화계에 침투해 진실을 왜곡하며 국민을 오도하고 있는 종북세력들에 대해서도 어떤 방법으로든 효과적 대처가 필요할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좌파 행세가 먹고 살기위한 익숙한 방편이 되어버린 친북좌파로 살아온 자들을 선도하는 정치적 지혜가 필요하다’고도 하는데 그것도 일리가 없지 않아 보인다. 또 있다. 미국 ‘애국법’처럼 법도 재정비해야 할지 모른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니까 아마도 일단은 법체계부터 재정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위협은 철저히 예방 단속 제재 할 수 있어야할 것이다.

 결국 정부와 국가 지도자가 국가안보 차원의 관심으로 범정부 및 국가적 차원에서의 총체적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결론이 될 듯하다. 정부 각 부서는 모든 지혜를 발휘하고 온 몸을 던지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임은 당연하고. 그런 의미에서 지난 1월 헌법재판소 심리에 단호하게 직접 나선 우리 법무장관에게서 희망을 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미흡 할 수가 있다. 여기에 뜻있는 사회 지도층들도 적극 함께 하는 범사회적 노력이 경주(傾注)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궁극적으로는 전체 국민의 국가안보 현실에 대한 이해와 상식, 지혜를 제고(提高)하고 나아가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과 이념(理念)을 굳건히 해야만 완벽한 해결이 가능 할 것이다. 국민이 지혜로워야 국가정책도 바르고 지혜로울 수 있는 법이니까.

 어쨌든 이 시점 ‘종북세력의 발본색원’ 그것은 우리가 꿈꾸는 참된 통일대박을 위해서는 물론 미래에 안전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오늘 단호하게 내디뎌야 할 첫 걸음인 것이다.(조갑제닷컴)

김희상 육군중장(예) (정치학 박사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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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읍(jungup7933)   

    말이 필요없이, 미친개는 몽둥이가--, 이땅에서 뿌리뽑자, 좌빠세끼들--

    2014-04-18 오전 11:46:09
    찬성0반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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