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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가는 길손이여! 잠시 걸음 한번 멈춰보오...

“국가와 국민, 지역사회가, 후대들이 참전용사들의 바람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주어야 할 것인가를 성찰해야”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4-05-29 오후 4: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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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가는 손들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스무살 안팎 젊은 목숨을 반공 구국에 기꺼이 바친 뜻을 새기고 넋을 기려다오』(6․25전쟁 참전 유격백마부대 충혼탑에 새겨진 글)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에는 마치 금방이라도 목표를 향해 돌진할 것 같은 군인 형상의 우뚝 선 탑 하나가 눈길을 끈다. 탑에 새긴 글귀처럼 산책을 하건, 운동을 하는 이건, 아니면 지나는 길손이건 간에 한번쯤 절로 눈길이 가게 되는 탑이다. 마치 60여년 전 조국이라는 제단위에 피를 뿌리며 호국의 선봉이 되었던 그 젊은 주검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이제는 구식화기로 군사박물관에나 보관돼 있을 처지지만 6․25한국전쟁에서는 개인화기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했던 M-1소총을 오른손 높이 치켜들고 불끈 쥔 왼손을 허리춤에 붙인 채 강인한 인상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국군장병 모습의 충혼탑은 금방이라도 적진을 향해 포효의 함성을 지르며 ‘돌격 앞으로!’ 를 부르짖는 형상이다. 바로 유격군이다.

 6․25한국전쟁에서 이들의 활약상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정규군이 아니면서도 정규군 이상으로 적진에서 수많은 전과를 올리고, 많은 숫자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美 극동군사령부 소속으로 한국군은 물론 유엔의 연합작전에 크게 기여한 유격군, 유격백마부대 전사자 552위를 추모하고 기리는 충혼탑이다.

 유격백마부대. 군번도, 계급도, 그렇다고 제대로 된 보급지원이나 전투지원도 없이 오직 도살자(屠殺者) 공산무뢰배(無賴輩) 들로부터 조국을 구하고 내 고향을 되찾아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나선 나이 어린 학생들로 구성된 대원들은 1950년 11월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조직됐으며, 대부분 평북 일대의 치안대원과 오산중.고교 학생들을 비롯한 반공소년들이었다.

 평북 철산군 남쪽 서해상에 있는 섬 대화도(1950년 당시 중공군이 이 섬에 1천여명의 병력을 상륙시켜 대대적인 섬멸작전을 벌였던 곳)를 비롯한 인근 12개 섬을 근거지로 압록강 하구, 청천강 입구, 철산반도를 비롯한 서한만 일대에서 작전을 펼친 2천6백여명의 유격백마부대원(지휘관, 김응수)들은 적과의 교전 500여회, 북한군 사살 3천여명, 중공군 사살 600여명, 철도 교량 터널 등 주요시설을 파괴하고, 반공애국청년 2천8백여명과 민간인 1만5천여명을 구출하는 大 전과를 올렸으니 이들의 활동은 유엔 연합군 정규작전에 크게 이바지 했으며, 오늘의 우리 특수전부대의 모태가 되고 있기도 하다.

 5월26일 인천광역시 용유도 충혼탑 앞에서는 제63주기 유격백마부대 552위를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렸다. 이제는 70, 80대에 이르는 노병으로 변모된 대원들은 추모비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조국을 위해 먼저 산화해 간 전우들의 명복을 빌며 눈시울을 적셨다. 생존 대원들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백령도에서의 추도식을 시작으로 매년 전.후반기 인천과 서울에서 추모행사를 거행한다.

 이 날 추도식 분위기도 애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역 내 보훈기관장과 단체장, 참전단체 대표, 재향군인회원 등이 참석해 훈훈함을 보태지만 마음속에 맺힌 허전함은 60년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정부나 관계기관이 참전용사들을 ‘영웅’이라 칭하지만 한낮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용어로만 생각되어지기 때문이다. 겉포장용으로만 쓰여 진다는 인식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6․25참전용사 유격부대원들에게 있어 자유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평화번영, 시장경제체제는 그 어떤 가치보다 소중한 피 흘려 쌓아올린 형설지공(螢雪之功) 그 자체다. 매월 주어지는 12만원 참전명예수당이 다가 아니다. 존경과 존중과는 사뭇 다른 사회적 분위기, 거기에 북한의 공갈협박에 속절없이 끌려 다녀 온 지난 정권, 온 나라를 분탕질치는 종북좌파세력에 온전히 대처하지 못한 정부당국이나 위정자, 치자들, 보편적 사고방식과는 동떨어진 국민에게 아쉬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6․25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즉각적으로 UN안보리를 소집하고, 유엔군 파병을 결정했다. 그리고 연인원 485만 명의 병력을 파견했으며, 이 중 54,246명이 전사(국방부자료) 했고 468,659명이 부상을 입었다.

 미국은 2009년 한국전쟁 정전56주년을 맞아 백악관을 비롯한 美 전역 공공기관에서 조기(弔旗)를 게양 하고 정전 기념식을 거행토록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했다. 한국전 참전으로 사망한 美 군인들을 추모하는 의미로 계속되고 있다. 6․25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인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희생에 감사하는 美 정부와 국민의 뜻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그리고 2013년 7월27일 정전 60주년을 맞아 7월27일 워싱턴 D.C 한국전 기념공원에선 현직 미국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기념행사가 열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선언했다. “한국전쟁은 승리한 전쟁이다. 한국, 미국의 최대 동맹국” 이라며 “한미동맹은 보다 굳건할 것이며, 미국은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질 것”이라고 다짐했다.

 5월26일 인천 용유도 추모식에서 최성룡 유격백마부대전우회 회장은 국토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절감했던 당시 대원들의 마음을 추모사에 담으며, 당국에도 쓴 소리를 잊지 않았다. “휴전협정 체결이 임박할 무렵인 1953년 7월 피와 목숨으로 점령했던 모든 섬들을 포기하고 남하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우리 땅임을 주장해 보지도 못하고, 또한 NLL 영해선 안에 포함되지도 않았으니 그 아픈 기억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숱한 영혼들을 북녘 산하, 서해의 푸른 물결 속에 버려둔 채 후퇴하는 전우들의 심정은 뼈가 부서지는 아픔을 가눌 길이 없었지만 그나마 서해5도만은 NLL설정으로 영해와 영토를 보전하게 됨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고 견준 뒤 “어떤 경우에도 NLL은 최전방 방어선이며, 대한민국의 영토이자 생명선”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6월 63주년 6·25를 맞아 당시 유격백마부대의 일원인 KLO부대의 함장으로 혁혁한 전과를 올린 사실이 인정돼 전후 납북자로는 故 최원모씨(최성룡 회장의 부친, 납북당시 57세)가 최초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아들 최성룡 대리 수상). 현재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로 납북자와 국군포로 등 탈북자 구출운동에 열정을 쏟고 있는 최 회장은 “참전용사를 존중하고 우대하는 나라는 정신적 ․ 도덕적으로 강한 나라가 되지만, 현실에 급급해 홀대하는 나라치고 잘 되는 나라 없다”고 일갈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영토가 타협이나 양보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이산가족과 납북자, 국군포로의 생사를 갖고 장사수단으로 잇속이나 챙기려고 하는 파렴치 집단 북한이 또 다시 공갈 협박으로 국민을 우롱하거나 침략도발을 자행할 시에는 두말할 수 없는 단호함으로 그 싹을 잘라버리라”고 강조하고는 “北 추종 종북세력들, 스스로의 분수도 모르는 공무원도 색출해 엄중 처벌하라”며 목청을 높였다.

 이제 또 다시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는다. 전쟁 64주년이다. 6․25동이가 64세가 되는 세월로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다. 생존 참전용사도 갈수록 그 연령층은 옅어지고 있다. 평균연령이 80세를 넘기고 있다. 그분들이 원하고 바라는 건 결코 크지 않다.

 국가가, 국민이, 지역사회가, 후대들이 그들의 바람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주어야 할 것인가를 성찰해야 할 줄 안다. 시간이 많지 않다.(konas)

이현오(칼럼리스트, 수필가. holeekva@hanmail.net)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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