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의 총소리
최근에 새로 이사해서 터 잡은 곳이 구파발역 근처의 은평뉴타운이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이고 북한산자락에 위치해 있는데 가끔 총소리(?)가 들린다. 부근에 군부대와 예비군훈련장이 있기 때문에 사격훈련이려니 하고 별 생각 없이 지나친다. 오늘은 저녁 시간인데 총소리가 들린다. 아마 야간훈련인 것 같다.
총소리 얘기를 하니 20년쯤 전의 일이 생각난다. 외교부에서 일하던 필자는 1994년 중동의 예멘이라는 나라의 우리 대사관에 1등서기관으로 발령받았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나라지만, 가장 가난한 나라이기도 해서 현지의 생활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2년간 사용할 생필품들을 사소한 것까지 전부 이삿짐에 꾸려넣고 가야 할 정도였다. 인터넷도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고국의 소식과는 단절된 채로 그야말로 이역만리 낯선 땅으로 귀양 가는 느낌까지 들었다.
당시 예멘에서는 탱크와 미사일을 빼고는 무슨 무기든지 다 돈 주고 살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민간인들이 권총이나 소총을 많이 가지고 다녔다. 정부의 고위인사나 민간기업의 고위경영자들이 AK소총으로 무장한 민간 경호원들을 몇 명씩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4륜구동 SUV의 조수석에 VIP가 타고 뒷자리를 개조해서 경호원들이 4명 정도 함께 타고 다니는 식이었다.
게다가 예멘은 남북이 통일됐음에도 불구하고 남북 양측의 군대는 아직 하나로 통합되지 않은 채 우발적인 무력충돌이 반복되고 있었다. 현지에 부임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우려했던 내전이 발생했다. 수도 ‘사나’를 전투기가 공습하고 대공포 소리가 귀를 찢는 혼란 속에서 한국교민과 대사관 직원 가족 25명을 긴급 철수시키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군용기를 동원해 자국민을 철수시키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대사관을 찾아다니며 우리 교민들을 탑승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만에 겨우 프랑스 군용기에 자리를 확보해서 철수시킬 수 있었다. 필자도 아내와 어린 두 딸을 군용기에 태워 보냈다.
대사관에는 남자 직원들만 남아서 3개월을 버틴 후에 겨우 내전이 끝났고 철수한 가족들도 다시 복귀했다. 그러나 전쟁은 끝났어도 아직 예멘의 국내 상황은 안정되지 않은 상태였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심심치 않게 총소리가 들렸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쉬다가 밤중에 총소리 몇 발이라도 들리면 혹시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본격적인 충돌은 아닐까 하는 걱정과 불안감에 가족들과 마음을 졸이며 밤을 보냈다. 전쟁을 겪어본 트라우마라고나 할까.
그때나 지금이나 저녁 늦은 시간에 집에서 총소리를 듣기는 마찬가지인데 마음의 상태는 정반대다. 그 이유는 ‘안심감’ 때문이리라. 나의 안전, 가족의 안전, 국가의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과 안심감, 그것이 전제되기 때문에 총소리가 들려도 불안하거나 걱정되지 않고 일상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국가안보란 이처럼 개인의 안전과 일상을 보호해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마치 공기와도 같이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다.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 전 외교통상부 동북아국장)
* 출처 : 국방일보 7월15일 16면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