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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 기념일에 즈음하여...

Written by. 장보영   입력 : 2014-07-24 오후 2: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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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27일은 3년여에 걸친 6.25전쟁이 종결된 정전협정일이자 6.25전쟁 당시 참전한 유엔군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는 유엔군 참전 기념일이다.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을 기습 남침하여 시작된 6.25전쟁은 3일만에 서울이 점령당하고 한 달여만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리는 등 초전 전세는 북한군이 완전히 장악했다.

 그러나 9월15일 국군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전세는 역전되고 우리 군은 서울을 탈환하고 원산, 평양까지 진격하였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다시 역전되어 장기화될 조짐이 나타났다.

 1950년 10월 중공군의 개입 이후 서울 수도가 다시 점령, 탈환을 반복하였고, 1951년 4월22일 중공군은 서울을 다시 점령하기 위해 국군 및 연합군의 전 전선에 강력한 포격을 하며 서부전선(경기,충청, 전라도 일대)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며 서울을 포위하려 했다.

 이렇게 서부전선으로 공세가 시작되자 중공군은 중부전선에서도 춘천지역 사창리를 공격하여 서부전선 공세를 도와 서울 점령을 시도하였다. 중공군의 사창리 공격으로 이곳을 담당한 국군 6사단은 부대원 반 정도만 남고 대부분의 중장비는 파손되는 등 큰 피해를 보고, 4월25일에 가평일대에 집결하게 되었다.

 국군 6사단의 후퇴는 좌우에 배치되어 있던 우리 부대들의 후퇴로 이어져 전선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서부전선을 공격한 중공군이 아군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더 이상 남하를 하지 못하는 동안, 중공군의 사창리 공격으로 중부전선은 큰 문제가 발생된 것이다. 만일 중공군이 경춘가도를 따라 계속 남하했다면 서울은 다시 북한군에게 점령당하고 중공군의 공세가 성공되어 북한군의 승리로 될 위기였다.

 이를 막기 위해 동원된 부대가 바로 영연방 27여단이다. 뉴질랜드, 캐나다, 호주 군이 영국군을 중심으로 편제된 영연방 27여단은 무려 5배가 넘는 중공군을 막아내야 했다. 후퇴하는 국군 6사단을 구원하기 위해 가평으로 향한 영연방 27여단은 국군을 추격하여 내려오던 중공군 20군과 1951년 4월23일 가평에서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영연방 제27여단은 뉴질랜드 포병대대의 지원하에 호주군 대대와 캐나다군 대대, 영국군 미들섹스 대대 등 3개 대대 병력으로 3일 동안의 방어전을 전개하여 자신들보다 무려 5배가 넘는 중공군을 막아냈다.

 본진인 영국군과 호주 왕실 3대대는 가평의 죽둔리에서 부대원의 40퍼센트 이상이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서도 경춘가도를 지켜냈다. 캐나다 프린세스 패트리샤 2대대는 가평 남단 667고지를 사수하여 후퇴하는 제6사단을 엄호하고 경춘간의 주보급로를 확보하는데 공헌하였다. 뉴질랜드 16포병연대는 막강한 포병화력 지원으로 중공군을 완전히 차단, 격멸시켜 대승을 거뒀다.

 이 전투로 중공군 제20군은 제1차 춘계공세시에 북한강을 넘어서지 못하게 되었으며 국군과 유엔군은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얻게 되었다.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는 가평전투에 참전한 영국ㆍ호주ㆍ캐나다ㆍ뉴질랜드 4개국 유엔군의 희생과 공적을 기리기 위한 영연방참전기념비가 세워져 매년 영연방한국참전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6.25전쟁은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할 전쟁이다. 그래서 6.25전쟁이 언제 발발하였는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6.25전쟁이 언제 정전협정이 됐는지 어떻게 6.25전쟁에서 우리나라가 국토를 지켜내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지금 정치, 경제는 물론 각종 다양한 문화콘텐츠로도 세계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설 수 있을 만큼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이러한 성장의 기반에 목숨을 다해 우리나라를 지켰던 우리 국군과 유엔참전 용사의 숭고한 희생과 공헌이 있었다.

 6.25전쟁 발발 당시 우리의 군 장비와 군사력은 북한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빈약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6.25전쟁을 승리한 전쟁으로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군 뿐만 아니라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참전국 장병들의 목숨을 건 희생과 공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 정부는 작년 7월27일 정전협정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제정하고 6.25참전국가에 대한 국가차원의 감사를 표명했으며, 국가보훈처에서는 정전협정 제61주년이 되는 오는 27일 서울 코엑스에서 제61주년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을 개최한다.

 이 행사는 참전국에 대한 감사뿐만 아니라 정전체제 및 국군과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알려 정전체제를 유지하고 신뢰프로세스로 평화통일 기반구축을 위한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행사가 될 것이다.(Konas)

장보영 (의정부보훈지청 보상과)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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