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물지 않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
“우리가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 하늘나라 가기 전에 위안부 문제 꼭 해결해 달라고 교황님께 청하고 싶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보금자리인 경기 광주의 ‘나눔의 집’의 한 할머니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초청을 받고 눈시울을 붉히며 한 말씀이다. 제69주년 광복절을 맞아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아마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민은 8월15일이 광복절이라는 것을 아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하지만 8월14일이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라는 것을 국민들은 과연 몇이나 알고 있을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은 한국 피해자 고(故)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최초로 공개 증언했던 날인 1991년 8월14일을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선포하고 각지에서 세계연대행동을 개최하기로 결의한 데서 유래했다.
일본은 꽃다운 나이의 한국인 처녀 수십만 명을 강제로 끌고 가 군사 물자를 만드는 공장에서 부려먹었으며, 수많은 한국 처녀를 위안부로 이용하였다. 한국인 처녀 스스로 자원했다는 의미인 정신대라는 명칭으로 오랫동안 불려왔던 위안부는 일본 군인을 위해 자원이 아닌 강제로 성노예 생활을 해야 했던 여성들을 일컫는 말이다.
전쟁 내내 참혹한 만행을 저지른 일본이 전쟁에서 지자, 일본군은 위안부를 숨기기 위해 위안부를 한데 모아 죽이기까지 하였으며, 살아남은 여성들은 가족 앞에도 떳떳이 나서기 어려워 가족과 이웃을 피해 평생 숨어 지내는 고통을 겪었다. 이러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참혹한 일이 바로 우리 조국의 여성들이 당했던 일이다.
그러나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부끄러운 과거사를 반성하고 참회하는 독일과는 반대로 일본은 긴 시간이 무색하게 아직도 과거사를 반성하기는 커녕 1990년까지는 “위안부는 일본군이 한 일이 아니며, 위안부는 자원해서 온 사람”이라고까지 했다. 그 후 많은 위안부 관련 자료가 발견되고 마지못해 부분적으로 인정을 할 뿐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을 볼 때면 꽃다운 어린 나이에 성적인 노예로 그 시대를 보내야 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고 곪아 터졌을지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리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하고 다시는 그런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정확히만 알아서는 안 된다.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민족은 다시 그 역사를 반복한다는 말이 있다.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를 교훈삼아 미래의 후손들에게는 더 이상 부끄러운 과거사를 인식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후세에게 또 다른 아픔을 물려주게 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 때 고통 받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본 대사관 앞에서 개최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1,000회가 훌쩍 넘어가고 있다. 매체에서 보도되는 독도나 위안부 관련 내용을 듣고 분노하는 우리는 말뿐이다.
수요집회에 직접 참석하여 고통 받는 위안부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따듯한 말 한마디라도 건넬 수 있는 그런 용기가 지금 우리에겐 필요하다.(Konas)
김승진 (의정부보훈지청 보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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