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붉은 산’
중국 만주의 한인마을을 다룬 김동인의 소설 ‘붉은 산’에서 흰옷과 함께 조국의 상징으로 묘사됐던 ‘붉은 산’은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가난했던 시절, 땔감으로 쓰이느라 온통 헐벗었던 한반도의 민둥산들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산업화와 함께 강력하게 추진됐던 산림녹화정책으로 인해 이 땅의 붉은 산들은 점차 푸르게 바뀌어갔다. 물론 산업화정책의 성공으로 인한 경제성장 그 자체도 우리가 자연을 아끼고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여유를 제공해 주었다.
실제로 필자는 군복무 시절, 고된 훈련 와중에도 끝도 없이 푸르게 펼쳐진 산악과 숲, 계곡 등 잘 보존된 우리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에 감탄한 나머지 육체적 고단함마저 잊어버리고는 했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한때 심각한 환경오염이 우려되기도 했지만, 저개발국이었던 나라가 이처럼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환경보전을 함께 이뤄낸 모범적 사례는 흔치 않다.
세계적으로도 도심지 가까운 곳에 이처럼 등산이나 단풍 나들이를 즐길 수 있을 만큼 숲이 우거진 산이 많은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반면에 국제환경단체들이 발표한 보고서와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금강산 등 외국인 관광을 위해 주민들의 접근이 제한된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현재 북한의 산 대부분은 여전히 헐벗은 ‘붉은 산’ 투성이다.
북·중 국경지대나 휴전선 너머로 보이는 북한지역의 산들도 온통 벌거숭이다.
“식량이 부족하면 산을 농지로 만들면 될 거 아니냐”며 실시한 ‘주체농법’과 사회주의적 통제경제의 실패로 인해 만성화된 식량난과 연료난으로 너도나도 마구 벌목을 해댔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매년 여름 대규모 산사태와 심각한 홍수피해가 반복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던 북한도 뒤늦게 그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김정은 정권 들어 봄철마다 주민들을 강제동원하며 나무 심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
하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묘목 중 30~40% 정도만이 살아남는 실정이다. 그나마도 주민들이 ‘살아남기 위해’ 마을 인근에 뙈기밭을 일구는 과정에서 뽑아버리기 일쑤인 까닭에, 실질적으로는 산림복구에 거의 진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마을 주변의 나무를 해오지 않으면 얼어 죽고 굶어 죽는, 당장 내 배 채우기도 힘든 상황에 직면해 있는 북한주민들에게 ‘환경보호’ 같은 것은 사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에 더해 북한군 주둔지 인근마을 주민들은 굶주림에 도적떼로 변한 병사들에 의해 수시로 약탈까지 당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니, 지금이 21세기인지 중세시대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지경이다.
오랜 기간 ‘선군(先軍)’을 부르짖으며 철저한 군 우선정책을 펼쳐왔지만, 북한의 체제모순은 급기야 그런 군대마저 골병들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 군은 ‘선군’ 없이도 경제성장과 굳건한 한미동맹의 바탕 아래 세계적 수준의 첨단장비를 보유한 세계 9위 군사강국이 됐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와 같은 상황은 참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한권희 (북한연구소 연구원)
* 출처 : 국방일보 11월12일 16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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