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着韓스토리텔링①]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본 내용은 12월 4일 남북하나재단(이사장 정옥임) 주최로 열린 북한이탈주민의 성공과 실패, 좌절, 눈물, 사랑, 열정의 이야기를 전하는 ‘2014 북한이탈주민 정착경험사례 발표 대회’ 내용임.(편집자 주)
2002년 2월, 하나원을 수료하고 한국사회에 나왔다.
한국에는 수 천 수 만 가지 직업이 있었고 어떤 직업을 택해야 돈을 잘 벌지 몰랐다. 다만 한국도 사람이 사는 사회이고, 사람이 사는 사회에는 병원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며, 그 병원에서 일할 간호사가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한국사회에서 직업을 선택한 단순한 원리였다.
‘나만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으면 평생 간호사로 일하며 나와 가족이 먹고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전국에 있는 간호대학에 문을 두드렸다. 당시 6살 밖에 안 된 어린 딸이 있었지만, 어렵게 얻은 입학 기회에 눈물을 머금고 기숙사행을 택했다.
학기가 시작되었다. 예상은 했지만 한국사회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사회와 너무 많이 달랐다. 같은 나라라고 찾아왔지만 외국에 온 느낌처럼 낯설었다.
대충 짐작으로 알아듣고, 그것도 안 되면 들리는 대로 급히 메모했다가 나중에 그 뜻을 이해하곤 했다. 한국말이 이 정도이니 전공과목인 의학영어, 생리학, 해부학, 병리학 등은 말로 무엇 하리. 졸업하는 날까지 늘 맨 앞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고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 없이 학교생활을 했다.
이런 노력 덕분이었을까? 전교 꼴찌에서 시작하여 상위 37% 성적으로 간호학과를 졸업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기쁨의 순간도 잠시 간호사 면허취득을 위한 국가고시에서 탈락의 고배를 맛보게 되었다.
이후 1년을 더 준비해 그토록 원했던 대한민국 간호사가 되었고 치열한 취업 준비를 하게 되었다. 작은 병원도 좋지만 이왕이면 큰 병원에서 간호기술을 배우고 싶어 대학병원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양한 경로로 도전했지만 처음부터 대학병원에 취업하기란 쉽지 않았다. 초심으로 돌아가 작은 병원에서부터 차분히 경력을 쌓아 몇 년 뒤 종합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보건복지부소속 국립춘천병원에서 간호직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로써 깨달은 다섯 가지 생각을 여러분께 이야기하려 한다.
첫째, 조바심을 버리고 늦더라도 차분히 시작하자.
둘째, 자신감을 갖고 나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자.
셋째, 빨리 과감하게 정부의 보조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자.
넷째, ‘나는 탈북자다’라는 생각보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라는 마음으로 살아가자.
다섯째,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그 감사함을 표현하자. (Konas)
황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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