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着韓스토리텔링⑦]가정과 직장, 두 마리 토끼를 잡다
본 내용은 12월4일 남북하나재단(이사장 정옥임) 주최로 열린 북한이탈주민의 성공과 실패, 좌절, 눈물, 사랑, 열정의 이야기를 전하는 ‘2014 북한이탈주민 정착경험사례 발표 대회’ 내용임. (편집자 주)
북한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여자 축구선수로서 어느 누구보다도 패기 넘치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독제체제와 가난 앞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국행을 택했지만 중국 생활 10년은 괴로움의 나날이었다. 강제 결혼을 했고, 강제북송의 두려움 속에서 임신과 출산을 하였고 태어난 아들을 선천성 심장병에 걸렸다. 중국 연길에서 노점상을 하며 장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 중국 생활에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한국에 입국하면 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정착 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 방안에 누워 고향생각, 가족생각에 눈물만 흘리다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정신이 들었다.
북한, 중국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염려와 그리움에 고통 받을 있을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남한 사람과의 결혼은 쉽지 않았다. 문화적 차이도 있지만 북한이탈주민의 특성을 알지 못하는 시부모님을 이해시키고 승낙 받는 것은 너무나 험난한 일이었다. 자식을 포기할 수 없어 시부모님을 처음 뵙는 자리에서 모든 것을 이야기 했다.
처분만 바라는 나에세 시부모님의 대답은 감동이었다. 자식을 버릴 수 없는 엄마의 심정을 이해한다며 데리고 와서 행복하게 살라는 말이었다. 이후 시댁과 남편의 도움으로 중국에 두고 온 아들을 데리고 왔고 심장이식수술을 받아 지금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이런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 했다. 첫 직장의 출퇴근 시간이 4시간이 넘었지만 3년 동안 단 한 번의 지각과 결근도 없었다. 막내 이이를 출산하자 더 이상 장거리 출퇴근이 힘들어 집 근처로 회사로 옮겼는데 회사를 퇴직하면서 또 한 번 감동을 받았다.
퇴사하는 날 사장님은 꼭 부자가 되라는 덕담과 함께 3년간 교용지원금 2천 280만원을 봉투에 넣어 주셨다. 이렇게 해서 입국 4년 만에 4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모을 수 이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나 싶었는데 남편이 부당해고를 당하게 되면서 졸지에 실업자 가족이 되었다. 나는 과거 장사의 경험을 살려 식당과 명태덕장을 시작했다.
‘경성 양꼬치’와 ‘청정명태’덕장이라는 두 개의 사업장을 운영하게 된 것은 덕장으로부터 양질의 식재료를 공급 받아 음식을 조리하다 보니 손님이 늘고 덕장은 일감이 늘어나는 성과로 이어져 궁합이 잘 맞았기 때문이다. 아직 초보 사업가 이지만 청정명태는 ‘통일 홈쇼핑’에 진출하였고 동남아 수출도 추진 중에 있다.
가정과 사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던 데는 사랑하는 가족의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 앞으로 사업이 안정기에 접어들면 자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인이 되고 싶다. (Konas)
김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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