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 9월 6·25전쟁영웅에 '윌리엄 해밀턴 쇼' 선정
학업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美 해군에 재입대..."나도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 사람이다"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31일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美 해군 대위를 9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미국인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평양에서 태어난 쇼 대위는 평양에서 고교 과정까지 마쳐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갖췄으며 한국인 친구들도 많았다.
이후 미 해군에 입대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전했던 쇼 대위는 1947년 전역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미 군정청 소속으로 조선 해양경비대사관학교(현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에서 민간인 교관으로 근무하며 해안경비대 창설에 기여했으며 대한민국 해군의 태동기를 이끌었다.
교관으로 근무 중 학업에 뜻을 품은 쇼 대위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 과정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 해군에 재입대했다.
당시,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금 한국 국민이 전쟁 속에서 고통 당하고 있는데 이를 먼저 돕지 않고 전쟁이 끝난 후 평화가 왔을 때 한국에 선교사로 간다는 것은 제 양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습니다”라고 자신의 심경을 알렸다.
쇼 대위는 인천 상륙작전에 참여했으며, 이후 미 해병대 5연대 소속으로 서울탈환작전에 참가해 김포반도, 행주산성, 신천 노고산 전투 등에서 승리했으나 9월 22일 서울 은평구 녹번리 전투에서 매복해 있던 적의 총탄을 맞고 28세의 젊은 나이로 전사했다.
전사하기 1주일 전 쇼 대위는 인천상륙작전에 함께 참전했던 해군 이성호 중령(후에 제5대 해군참모총장 역임)에게 "나도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 사람이다. 내 조국에서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하게 공부만 하겠냐. 공부는 내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된 그의 묘비에는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구절이 새겨져 있다. 1956년 그가 전사한 자리에 추모비가 세워졌고 2010년에는 서울시 은평구 평화공원에 동상이 건립됐다.
쇼 대위는 우리정부로부터 충무무공훈장을, 미국정부로부터는 은성무공훈장을 각각 추서받았다. 올해 6월 호국영웅 우표 인물로도 선정돼 기념우표가 발행됐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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