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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독립운동가, 스코필드 박사 선정

공훈 기리고자 특별전시회 3월 한달간 개최...가족사진 등 관련자료 11점 전시

Written by. 강치구   입력 : 2016-02-29 오전 9: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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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스코필드 박사를 2016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3월 한 달간 개최한다고 밝혔다.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는 영국 태생으로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세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교에서 강의하던 중 1916년 11월 캐나다장로회 선교사 자격으로 부인과 함께 내한해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을 가르쳤다.

 스코필드 박사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기록으로 남기며 일제의 비인도적 탄압에 맞서 싸웠다. 특히, 화성 제암리와 수촌리를 직접 방문해 일제가 자행한 방화 학살 현장을 사진으로 촬영해 보고서로 남겼다.

 스코필드 박사가 작성한「제암리의 대학살(The Massacre of Chai-Amm-Ni)」과 「수촌 만행 보고서(Report of the Su-chon Atrocities)」는 상하이에서 발행되던 영자신문 『상하이 가제트(The Shanghai Gazette)』지와 미국의 장로회 기관지 『Presbyterian Witness』에 게재돼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다.

 1919년 8월 일본으로 건너간 스코필드 박사는 극동 선교사 8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연설을 했으며, 일본 수상 하라 다카시 등을 면담해 한국인에 대한 강압과 만행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로 인해, 박사는 일제의 감시는 물론 살해 위협까지 받다가 1920년 4월 한국을 떠나게 됐다. 캐나다로 돌아간 뒤에도 강연이나 기고를 통해 한국의 비참한 상황을 알리고 일제의 식민정책을 비판했다.

 이후 1958년 8월 국빈 자격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스코필드 박사는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했다.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고아원 두 곳과 직업학교를 후원하였고, 영어성경공부반도 지도하였다. 또한 거의 해마다 3․1절 기념행사에 참여하고 언론 등에 3․1정신을 계승할 것을 권고하는 많은 글을 남겼다. 

 1968년 정부는 캐나다인으로 우리 겨레의 자주 독립을 위해 생애를 바친 스코필드 박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심장성 천식 등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 중 1970년 4월 12일 서거한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공적으로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독립기념관에서는 스코필드 박사의 공적을 기리고자 관내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을 마련, 가족사진 등 관련자료 11점을 3월 한 달 동안 특별 전시한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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