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학생결사 ‘태극단’ 결성한 서상교 애국지사 별세
학교 단위 조직 확대해 일제식민통치에 대항
항일학생결사 태극단(太極團)을 결성한 서상교(徐尙敎) 애국지사가 향년 95세를 일기로 지난 13일 별세했다.
고인은 1923년 대구에서 출생해 1942년 5월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같은 학교 이상호, 김상길 등과 함께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일학생결사 태극단을 조직했다.
태극단이란 명칭은 한말 이래 사용되어온 태극기를 상징해 정한 것으로 결사의 약칭으로 't.k.d'를 사용하기도 했다.
고인은 일본군입대 반대 등 일제식민통치에 대항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만들어 뿌리면서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한편 학교단위로 조직을 확대해 나갔다.
43년 5월 태극단원 전원이 대구시 비파산(琵琶山) 약수터에 모여 결단식을 가졌으며, 고인과 간부들은 구체적 투쟁방안에 관해 협의하고 조직을 정비했다.
태극단의 조직은 크게 일반조직과 특수조직으로 나눠졌으며, 최고의결기관으로 간부회의를 구성했다.
일반조직은 육성부 아래 관방국, 체육국, 과학국 등 3국을 두고 그 밑에 군사부, 항공부 등 10여부를 두었다.
특수조직은 건아대(健兒隊)라 칭해 중학교 1·2학년생과 국민학교 상급반 학생을 대원으로 가입시켜 단원으로 육성했다. 이때 고인은 체육국장의 일을 맡았다.
태극단의 투쟁방략은 전국의 학교와 각 지역별로 조직을 완성한 후 여론을 환기시키며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만약 국내에서의 투쟁이 여의치 못할 경우 중국으로 집단 망명해 그곳에서 항쟁을 계속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단원들은 용두산(龍頭山)·비파산 등 비밀장소를 이용해 학술연구토론회·각종 체육회 등을 개최하고, 군사학 연구에도 정진해 군사관계서적의 번역, 글라이더와 폭발물 제조에 관한 연구를 추진했다.
그러나 1943년 5월 배반자의 밀고로 태극단의 조직과 활동이 일경에 발각됐고 1944년 1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5년, 장기 7년형을 언도받고 인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15광복으로 출옥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휘, 장남 보혁(전 경북대 전자공학과 교수), 차남 보현(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장녀 명주, 차녀 보아, 삼녀 보희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다. 발인은 16일 오전 8시, 장자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이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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