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53) 미공병부대 참전기념비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6.25전쟁에서 수도 서울이 북한군에게 점령당하자 북한군의 진출을 차단하기 위해 28일 부득이하게 한강교가 폭파되었다. 이후 미육군 공병대는 진퇴를 거듭하던 긴박한 상황 속에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서울을 수복 후 파괴된 다리를 대신하여 부교와 도보교를 설치하여 군사작전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또한 1.4후퇴(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한 연합군 철수) 당시에는 수백만명의 피난민들이 다리를 건너서 피난갈 수 있게 도와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1951년 6월, 미 공병부대들은 한강인도교와 철교를 복구하여 우리나라 경제발전에도 크게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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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취재를 위해 자료를 찾아보니 미육군 공병대는 앞서 언급한 교량 건설 및 폭파 이외에도 기지 및 부대 건설, 지뢰 설치 및 제거 등 6.25 전쟁 당시 지상군이 작전을 수행하는데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작전을 많이 수행했다. 아군이 진격할 때 제일 먼저 투입되어 기동부대의 전진로와 보급로를 건설하고 아군 후퇴 시에는 장애물 설치 등으로 아군의 안전을 확보하고 가장 마지막에 철수하는 정예부대였던 것이다.
그들의 역할은 전후에도 이어졌다. 6.25전쟁 후 한국이 명실상부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기반은 무엇보다 국가 기간산업의 토대를 닦아준 미 공병의 역할을 꼽을 수 있다. 그들이 건설한 도로와 다리를 통해 수많은 피난민이 남쪽으로 내려올 수 있었고 전후에도 그들의 장비와 기술력은 우리 경제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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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기간 동안 미 공병부대 장병들이 보여준 자유수호를 위한 헌신과 희생에 감사하며” 라고 새겨진 비문을 보니 그들의 막중했던 임무와 헌신에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이촌한강공원 주차장 근처에 위치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러한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그들의 숭고한 업적과 희생을 뒤늦게라도 알게 되어서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다.(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우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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