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중인 장갑차를 가로막다니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달 30일 연합전시증원(RSOI) 연습에 참가 중인 상륙장갑차가 충남 태안군 만리포 해안으로 진입하는 것을 좌파 통일운동단체 회원들이 막았다고 한다. 극소수가 시위에 참가하여 훈련 중인 장갑차의 전진을 가로 막은 것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오래 전에 중국 북경의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서 입성하는 장갑차를 어느 청년 혼자서 정면에서 막고 나섰을 때 장갑차가 청년과 실랑이를 하면서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상륙훈련에 참가하고 있는 장갑차의 앞을 가로 막은 것은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국가 공권력을 희생을 무릅쓰고 육탄 저지한 것과는 전연 비교할 수 없는 사건이다.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만의 하나 안전사고라도 발생했더라면 어찌할 뻔 했는가? 몇 년 전 훈련 중인 미군 장갑차에 어린 여중생이 사고를 당했던 비극적인 사건을 떠 올리게 된다.
상륙작전은 수륙양용차를 타고 바다에서 육지를 향해서 병력과 장비 그리고 군수물자를 전개(deployment)하는 작전이다. 당연하게 수륙양용차나 장갑차 등이 접안 가능한 해안교두보를 통과하여 상륙하게 된다. 상륙훈련 중 해안으로 진입하는 장갑차의 진로를 막는다는 것은 세계 어디에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군인은 훈련에서 땀을 많이 흘리면 실전(實戰)에서 피를 적게 흘린다는 사실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다. 군에 갔다 온 사람은 누구나 이 말을 귀가 따갑게 들어봤을 것이다. 그래서 세계 모든 나라의 군대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평시에 교육과 훈련을 강화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전쟁이 없는 평상시에 막강한 군사능력을 유지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지만 만일의 국가 비상시에 대비하기 위해서 어느 나라나 잉여안보를 유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군이 평상시에 교육과 훈련을 강화하는 것이 당연한 기본 임무다. 군사훈련을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훈련을 중단하라는 요구는 군을 무장해제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연합전시증원 연습은 을지포커스렌즈(UFL), 독수리 연습(FE) 등과 더불어 한·미연합군이 참가하여 한반도에서 전쟁억제 및 대비태세를 강화하기 위해서 실시하는 군사훈련이다. 1994년부터 연례적으로 실시하여 왔으며, 전시 한반도에 증원될 미 증원군의 수용, 대기, 전방이동 및 통합절차와 이를 지원하는 한국군의 전시지원, 상호군수지원, 동원, 연합 후방지역조정관 임무수행, 전투력 복원절차 등을 컴퓨터 모의 하에 실시하는 지휘소 연습이다. 이를 “북침을 위한 상륙작전”이나 “동족을 죽이기 위한 전쟁연습”이라는 명분으로 중단을 요구하고 물리적으로 미군 장갑차를 가로 막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시위는 보장되고 또한 보호되어야 한다. 누구나 합법적인 방법으로 시위에 참가할 수 있지만 때와 장소가 있는 것이다. 훈련 중인 장갑차의 진로를 막는 시위는 대단히 위험한 것으로 어느 명분으로도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선진국에서 진행 중인 연례 군사훈련을 일부 시민이 저지한다는 이야길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민주화의 공고화 단계를 거치면서 아직도 성숙한 시위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시위나 집단행동을 통하여 무조건 의사를 관철하려는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지 않는 한 성숙한 민주질서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언제쯤 금기사항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성숙한 시민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민주질서는 하루아침에 정착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konas)
홍 득 표(인하대 교수/플로리다주립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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