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 프로세스'와 남북관계
북한의 미사일 도발 이후 유엔 안보리의 7·15 제재 결의안이 나왔고, 이에 입각해 미국의 대북 압박이 다각도로 거세지고 있다. 금융제재가 강화되고, 미사일 관련 물자와 기술의 유입 금지, 핵·미사일 등의 확산방지(PSI) 강화 조치 등이 이어지고 있다. 더 나아가 북한을 지원하는 제3국에 대한 미국의 단독 제재설도 흘러나왔다. 이 상황에서 북한인권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미 의회 및 시민단체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이 '헬싱키협약'을 모델로 하는 동북아시아 안보체제 구축을 부시행정부에 촉구한 데 이어, 미국내 북한인권 단체들이 18개 항목의 성명을 채택, 대량살상무기(WMD)와 함께 북한인권도 6자회담에서 논의돼야 하며 '문제의 근원인 김정일 체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북한 미사일 도발 이후 나타난 미국 반응의 특징은 행정부보다 일반 국민 여론이 앞서 나간다는 점이다. 부시행정부가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는 가운데, 여야를 초월한 대북 강경 대응 목소리가 미국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해도, 대북정책 기조는 오히려 강화될 전망이다. 특히 북한인권 문제는 미국의 건국이념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WMD에 못지않은 주요 현안이다.
인권과 WMD 문제는 성격상 다르지만, 북한의 경우 그 원인이 한 뿌리에서 나오고 있다. 그 뿌리란 곧 김정일 정권이다. 그러므로 북한에 있어 두 현안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상호 연관된 불가분의 문제다.
이런 점에서 '헬싱키 모델'을 북한에 적용하려는 미국내 움직임은 만시지탄이나 바람직한 것이다. 1975년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옛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과 안보회의를 개최, 안보와 인권 조항이 모두 포함된 헬싱키협약을 만들어냈다. 이 인권 조항을 근거로 지속적인 노력한 끝에 서방 국가들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공산체제 붕괴와 동유럽 해방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이 역사적 과정을 '헬싱키 프로세스(Helsinki Process)'라 부른다. 결국 헬싱키 프로세스의 원동력은 보편적 인권에 대한 신념이었다. 이 신념이 철권통치의 저항을 극복하고, 최종 승리를 거둔 것이다.
헬싱키 프로세스는 오늘날의 남북관계에 많은 함의를 던져준다. 아마 7·4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등 남북 간 합의문들에 헬싱키협약처럼 북한인권 조항을 포함시켰더라면 남북관계의 성격은 달라졌을 것이다. 남한의 위정자들이 정치적 '성과'에 몰입되어, 대한민국의 국가이념인 자유·인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것이 큰 실책이었다. 오히려 자주·민족 등 보편적 가치가 결여되고 북한 입지와 선전을 강화시키는 개념을 수용한 것이 남한이 수세에 서게 된 원인이다. 특히 6·15선언은 헬싱키협약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의 북한인권 정책은 어떠했는가? 노무현 정부는 북한 체제를 안정시킴으로써 인권 문제를 장기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24일 이종석 통일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헬싱키협약이 북한 체제 변동을 전제로 하므로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권 탄압의 주체인 북한 정권을 존중하고 안정·강화시켜서 어떻게 북한인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
우리도 이제 헬싱키 프로세스처럼 공개적으로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대북정책의 기본 틀로 삼아야 할 때가 됐다. 헬싱키 모델을 한반도에 적용하려는 미국내 움직임을 환영하면서, 늦게라도 한국 정부가 북한인권 정책을 크게 전환, 미국과의 협조 속에 이 문제를 풀어나갔으면 한다. (konas) (출처: 문화일보 7월25일자 '포럼')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 http://khh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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