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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나라의 운명이 그 곳에 갇혔다’

참담한 역사를 통해 그 날의 통곡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 국민이 올곧은 눈으로 북한 김정은 집단과 오늘의 정세를 바로 바라봐야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7-10-10 오전 8: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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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36년 12월15일로부터 1637년 1월30일까지 47일. 조선 중기 16대 임금 인조와 조정의 신료들이 남한산성에 갇혀 꼼짝 못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청나라 군대는 늘어나고 적병에 의한 심리전 압박과 겹겹이 에워싼 인해전술, 공성무기를 동원한 화력전 공세는 그칠 줄 몰랐다.

 12월 섣달 살을 에는 강한 추위와 벌써 바닥이 들어난 식량 창고 도가니 속 양곡과 군량미. 동상과 배고픔은 성안 2만여 명을 육박하는 군인과 군속, 백성들을 기진맥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고 있었다.

 이 시기 조선의 운명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백척간두(百尺竿頭)? 백성들은 어떻고, 왕실과 조정은 또 어땠을까?

 조선 개국 초기 나라는 왕권을 놓고 형제간의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피비린내가 궁성을 진동했다. 어린 조카 단종을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해 경복궁 경회루에서 옥새를 바치게 함으로써 왕위를 찬탈한 숙부도 있었다. 패륜의 극을 달린 왕도, 또 그런 왕을 요설(饒舌)과 그럴싸한 명분에 부채질로 반정(反正)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왕과 신하들이 있었다.

 나라에 마(魔)가 끼려면 신하들부터 분화하는 법. 이를 제어하기 위해서도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권력자나 공직자들이 우국충정의 애국심과 국가관, 분명한 정세관으로 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바른 의견)주장은 나와 우리 측에게 독약이 될 수밖에 없다'는 반국가적 소아적 식견에 천착해 적을 이롭게 하는 국가파괴 적 정세관, 이적행위(利敵行爲)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1637년 1월30일 남한산성에서의 처절한 아픔인 ‘삼전도 굴욕’을 겪기 45년 전 임진왜란을 통해 이미 확인했다. 1590년 통신정사인 황윤길이 동인인 부사 김성일 등과 일본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와 “왜(倭)가 쳐들어 올 것 같다” 며 침략을 예견해 대비책을 보고 했으나 반대파인 김성일이 “도요토미의 인물됨이 보잘것없고 군사준비가 있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엇갈린 주장을 하게 됨에 왕마저 이를 그대로 수용해 결과적으로 다음해인 1592년 7년이라는 대 전란에 빠져 국토는 피폐하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방비에는 허술했다.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보는 눈의 부족이었다. 병자호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1636년 12월9일 청군이 압록강을 건넜다. 청군의 침입 소식은 12월6일 포착됐으나 도원수 김자점의 장계는 12월13일에야 조정에 도착했다. 당일 열린 대책 회의에서 영의정 김류가 강화도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인조는 청군이 내륙 깊숙이 들어올 리 없다며 주저했다. 12월14일 청군이 이미 개성을 통과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을 때야 인조는 강화도로 떠날 준비를 시작했으나 이미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인조 일행이 숭례문을 통과하고 있을 때 청군이 오늘날의 은평구 녹번까지 진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명기 명지대 교수의 <병자호란 중에서. 푸른역사>)

 약육강식은 동물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인조 5년인 1627년의 정묘호란과 다시 일어난 인조 14년 1636년 병자호란이다. 강한 나라라도 대비하지 않으면 또 다른 준비된 상대국에 허를 찌르게 마련인데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은 나라가 어찌 제대로 자신과 백성의 안위를 돌볼 수 있겠는가.

 그렇게 당하고 당했던 민족이다. 다 헤져 너덜너덜한 누더기 무명옷에 짚신으로 꽁꽁 언 발을 녹이면서도 백성들은 임금을 믿고 조정(朝廷)을 따랐다. 동원령이 내리면 고향의 부모형제 식솔과 농삿일을 접어둔 채 왜구와 목숨을 건 일대 격전을 벌이고, 오랑캐와 피 말리는 승부수를 띄웠었다. 그 선두에 승려와 이름 없는 무명의 백성들이 뭉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믿고 따랐던 이들에 대한 배신감 뿐 이었으니, 그래서 임란 시에는 경복궁과 창덕궁 등 궁궐 모두가 왜군이 아닌 자국의 성난 백성에 의해 불타 없어지고 말기에는 동학농민혁명군의 봉기가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나라의 운명이, 남한산성에 갇힌 임금의 생사마저 기로에 놓이자 백성이 일어났다. 영화 <남한산성>에서처럼 ‘고립무원에 빠진 임금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삼남의 군사들이 남한산성으로 집결해 청군과의 결전을 통해 임금을 구해야 한다’는 근왕병 모집의견이 결정되자 척화(斥和)를 주창한 예조판서 김상헌이 왕의 격서(檄書) 전달을 성책의 대장장이 천민 백성 서날쇠에게 부탁하자 날쇠는 조건 없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혈혈단신으로 적진을 돌파해 아군진영에 근왕병 모집 소식을 전한다.

 비록 자신은 정묘호란 때 사랑하는 아내가 청나라 군사들에 겁탈 당한 채 무참히 살해되고 하나뿐인 아이마저 적에게 죽임을 당한 처지였음에도 그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 나라를 위해, 동일한 처지의 백성들의 삶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뛰어든 것이다.

 영화에서 근왕병 모집 격서를 전달한 서날쇠는 우여곡절을 겪지만 실제 역사에서도 근왕병이 출동한다.

 1636년 12월26일 강원감사 조정호의 병력 1000여명이 남한산성 부근 검단산까지 진출하나 다음날 청군과의 교전에서 크게 패한다. 경상감사 심연이 이끄는 병력 8000여명도 출동했으나 1637년 1월3일 교전결과 패배하고 만다. 이외에도 충청도 근왕군, 전라도 근왕병, 평안병사 유림의 근왕병도 청군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남한산성으로 이동하나 군량과 화약부족, 또는 인조아 삼전도에서 항복한 그 다음 달까지도 남한산성으로 가기 위해 길을 재촉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전국의 근왕병이 1월30일 이전 남한산성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20만에 달하는 청군에 어떤 영향이나 미쳤을까? 이미 상황을 역전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북한 김정은은 핵과 미사일로 대한민국과 세계를 우롱하고 있다. “경제건설과 핵무장 병진건설이 천만번 옳은 선택이었다”며 당·정·군과 주민을 회유하며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의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라는 사람은 “한미동맹이 깨지는 한이 있어도 전쟁은 안 된다고 많은 사람이 말한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또 “동맹을 맺는 게 전쟁을 막기 위한 것인데, 동맹이 전쟁의 기제가 되는 것을 찬성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교묘한 말의 유희이자 언어의 연금술사 같은 발언이다. 이 땅에서 전쟁을 바라는 이는 북한의 당국자들을 제외하고는 누가 전쟁을 바랄 것인가?

 미연에 예방이 최선이지만 만에 하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모든 것을 걸고 이 나라를 지켜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직면한 과업일 것이다. 핵과 미사일의 광신자(狂信者) 김정은 집단에 나라와 민족이 또 다시 갇힐 수야 없는 것 아닌가.

 380년 전 남한산성의 산과 계곡을 내달려 적 포위망을 뚫고 아군 진영에 근왕병 모집 격서를 전달한 서날쇠의 마음을 통해, 국왕과 나라를 위해 근왕병들이 일어섰지만 결국 적의 수항단(受降檀)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臯頭) 굴욕의 항복의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인조임금의 참담한 역사를 통해 그 날의 통곡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위정자로부터 전 국민에 이르기까지 올곧은 눈으로 북한 김정은 집단과 오늘의 정세를 바로 보는 바른 마음이 이어지기를 <남한산성>의 교훈 - ‘나라의 운명이 그 곳에 갇혔다.’로 발원해 본다.(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 수필가(holeekva@hanmail.net)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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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미소(pjw3982)   

    나라가 있어야 민주도 인권도 종교도 있다,,,

    2017-10-11 오전 9:20:14
    찬성1반대0
  • 전주향군(yhyh2500)   

    국가안보를 정쟁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절대 안되고 무조건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무책임한 발언을 하는사람들은 우리가 최고로 경게해야 할 사람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듯이 북한의 핵및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3축체계를 조기에 완성하여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수 있도록 해야할것이다

    2017-10-11 오전 8:58:35
    찬성0반대0
  • 좋은아빠(heng6114)   

    국가의 안보가 최우선이다. 호시탐탐 적화통일을 노리고 있는 북한에 대비 전술핵 재배치등 우리의 국방력을 튼튼히 해야한다.

    2017-10-10 오전 9:08:39
    찬성0반대0
1
    2017.10.24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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