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칼럼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크림반도 사태의 역사적 뿌리

Written by. 심경욱   입력 : 2014-05-11 오전 1:03:36
공유:
소셜댓글 : 0
facebook

  우크라이나가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한 이래 최악의 유혈사태를 낳은 이번 사태는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유럽연합(EU) 과 의 협력협정 체결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촉발되었다.

 키예프의 마이단 독립광장에서 시작된 친러 정부에 대한 반대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유로마이단’ 이란 이름을 얻었고, 이는 부정부패에 항의하는 정권퇴진 운동으로 변모하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가 보수·진보 세력간의 단순한 정치적 주도권의 다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역사·문화적 정향성을 찾아 투쟁하고 있다.

 유럽권과 슬라브권, 두 개의 문화권 중 어디에 21세기 역사의 뿌리를 내릴 것인가, 해묵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고 크림반도를 되찾는 기회로 이끌었다.

 소비에트연방 시절 이전부터 우크라이나 동부의 주민들은 서부에 비해 높은 친러 성향을 띠고 있었다. 그 결과, 소비에트연방의 공산당이나 군의 고위층에는 동부우크라이나 출신 인사들이 러시아계 인사들만큼이나 중요한 직위를 차지하곤 하였다.

 특히 러시아화의 정도가 가장 높았던 동부우크라이나와 벨라루시 출신들은 다른 소수 민족에 비해 군으로의 진출이 잦았다. 당시 정치적 신뢰도가 높았던 동부 출신들이 정규군이나 국경경비대의 요직을 차지하고 무게 있는 역할을 도맡아 해냈다면, 서부 출신들은 무장이 허용되지 않았던 공병부대와 철도공사부대에 배치되곤 했다.

 그것은 역사적 전통이나 문화적 뿌리로 보아 러시아쪽보다는 폴란드 및 유럽권에 더욱 친밀하였던 서부인들은 동부인들과는 달리 반(反) 소비에트 인식은 물론, 반(反) 러시아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데 철저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정치 성향은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도 확연히 드러났다. 독일 나치군이 발트 3국, 즉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리트비아와 몰도바를 거쳐, 서부우크라이나에 진격했을 때였다. 그 지방의 자경대가 스탈린의 적군 군인들을 벌써 처단해서 광장 앞에 시체를 더미더미 쌓아놓은 것은 물론, 주민들은 꽃다발을 흔들며 해방군으로 맞이하였다.

 어떤 공식 서류에도 나타나 있지 않지만 작게는 60만 명, 많게는 140만 명이나 되는 소련인들, 대부분이 반(反)러 소수민족 출신들이 히틀러 편에 서서 전쟁 직전까지도 같은 편이었던 스탈린의 군대와 맞서 싸웠다. 소련(러시아)에 맞서 나치 군대에 부역했던 많은 소수민족들은 전후 스탈린에 의해 엄청난 징벌을 당했는데, 서부우크라이나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푸틴의 크림반도 합병과 한반도 안보에 미칠 파장

 2014년 초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피폐한 경제 상황과 외부 세계와 뒤엉킨 이해는 여·야 리더십의 실종과 맞물려 키에프의 유로마이단 광장을 핏빛 비극으로 내몰았다. 이런 가운데 3월21일 푸틴의 러시아 정부는 크림반도의 합병을 공식화 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등 서방 국가들은 뒤늦게 다각적인 제재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제재가 러시아로 하여금 크림반도 합병을 포기하도록 할 만큼 강력할 것인가. 또한 크림반도를 빼앗긴 우크라이나가 서둘러 정국을 안정시킨다고 하더라도 군사적으로 절대적 우위에 있는 러시아를 힘으로 제압할 수 있을까?

 국제사회의 낙관적인 기대와는 반대로 러시아의 크리미아 군사개입 직후 하락했던 러시아의 증시 지수와 루블화의 가치는 며칠 되지 않아 반등하고 있다. 과감하고도 단호한 푸틴의 합병조치 이후 국내에서의 그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한편으로 그의 장기 집권과 권위적 통치에 지치고, 2013년 후반기부터는 성장률 0%의 경제침체에 위축되어 있던 러시아인들마저 ‘강한 러시아’ 의 재건이 단순한 정치적 수호에 그치지 않을 수 있음을 확인한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 한반도에는 어떠한 파장을 미칠 것인가? 먼저 유럽과 러시아 양대 세력 사이에서 태생적인 고난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통해 우리는 통일한국의 미래를 조망해 볼 수 있다. 미·일 해양세력과 중·러 대륙세력 가운데에 위치한 통일 전후의 한반도, 그 지정학적 위상과 외교 현안을 오늘의 우크라이나를 통해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둘째, 대내적으로 권력 장악 역량이 재확인된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는 우리에게 양날을 가진 칼날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인접 우방인 러시아의 정국이 안정되어야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대외정책이 전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봐서는 비람직한 일이다.

 반면에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러시아로부터 한반도 안보 논의에 필요한 소통과 화합 분위기를 접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현을 위한 긍정적인 방향은 당분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한국 정부는 3월19일 “크림 주민투표와 러시아의 크림 병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러시아의 반대편에 섰다. 이는 북한으로 하여금 러시아를 향해 한층 더 다가가도록 하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며, 북·중·러 3각 공조의 색깔은 더욱 짙어질 수 있다.

 그 결과, 북한의 군사적 도발 위협을 제지하고 북핵 문제의 해결 논의를 이끌 수 있는 중국으로부터의 협조를 얻어내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넷째, 이런 가운데 미국은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을 한층 더 강화 하는 한편, 한국에 대해 아베 내각과의 관계 개선을 더욱 강한 톤으로 요구해 올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한·일 관계에 진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3월25일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가짐으로써 다시 한번 크림 합병을 강행한 러시아를 응징하려는 미국에 힘을 실어주었다.

 다섯째, 우크라이나는 소연방의 해체 이후 자발적인 핵 폐기로 국제 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임을 보여 주었다. 그럼에도 미·영·프·러·중 5개국이 안전보장을 약속하였던 1994년의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북한에게 있어 리비아 사태 못지않게 핵에 대한 집착을 재확인하도록 계기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흑해의 부동항들을 결코 놓치지 않으려는 러시아의 모습을 통해 나진항을 비롯한 한반도 동북해의 허구와 기지에 대한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를 가늠할 수 있다. 러시아는 러·일전쟁을 통해 동해 접근로를 보전하지 못할 경우 한반도 및 동아시아로부터 고립될 수밖에 없음을 체험한 이래 ‘동해안 축선 확보’에 집착해 왔다.

 6·25전쟁 당시에도 러시아군이 동해안 축선을 특별 통제하였으며, 중공군의 증원없이 북한군 책임지역으로 유지토록 했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크림자치공화국 합병은 보기에 따라서는 색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각기 국가 실리를 위해 정면대결은 피하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냉전기부터 양대 강국은 외줄타기를 하듯 충돌을 위기마다 서로 머리를 조아리곤 했다. 때로는 대립이 양보로, 갈등이 대타협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렇다면 미·러 양국이 크리미아 사태를 놓고 고조된 긴장을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놓고 풀어나갈 가능성은 없는가?

 또 우리는 지금의 미·러 갈등이 북한의 개혁·개방을 겨냥한 타협으로 전환토록 할 수 있는 역량은 없는 것일까? 만약에 우리가 이 같은 전략적 반전을 이끌어 낼 수 없다면 한때 그랬듯이 강국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자신의 미래를 좌지우지하지 않도록 적어도 사태의 흐름만큼은 명쾌히 꿰고 있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유사한 상황이 한반도에서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비록 흐루시초프의 소련이 우크라이나에 합법적으로 복속시켰다고 하더라도 크림반도에 살고 있는 주민들 중 압도적인 다수가 러시아인들이고 러시아로의 합병을 원했다.

 지금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영향권인 크림반도에 러시아의 개입을 용인함으로써 중국이 자국 영향권에 있는 북한에 개입했을 경우에도 이를 용인해야 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북한에서 민주화 소요가 봇물 터지듯 하고 그 와중에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는 상황이 닥쳐올 경우에 우리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에도 우리는 북녘 땅을 강 건너 불 보듯 할 것인가. 요컨대 작금의 크리미아 사태는 우리로 하여금 통일전략과 함께 국방태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도록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Konas)

심경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

* 출처 : ‘월간 자유’ 5월호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24.6.23 일요일
핫클릭 뉴스
포토뉴스 더보기
안보칼럼 더보기
[안보칼럼] 6.25전쟁 74주년 기념일과 한·미 동맹의 발전
다가오는 6월 25일은 6·25전쟁이 발발하고 74번째 맞이..
깜짝뉴스 더보기
‘자동차세 잊지 말고 납부하세요’…16일부터 7월 1일까지
상반기 자동차세 납부 기간이 오는 16일부터 시작된다.행정안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