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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⑨〕행복은 바로 옆에 있다

Written by. 허태근   입력 : 2016-09-06 오전 9: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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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6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입선’ 글임. (편집자 주)

 사회복무를 시작하기 전, 나는 깊은 어둠 속에 빠져 있었다. 20대의 전부를 사법시험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았지만, 결국 실패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패배자라는 딱지를 붙였고,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유혹에 시달릴 정도로, 정신이 황폐화된 상태였다. 우울이라는 매듭에 묶인 채로, 그렇게 복무를 시작했다. 전쟁에 패한 패잔병처럼, 세상 모든 절망이 나의 것인 양, 생기 잃은 얼굴로 광복동 주민센터에 첫발을 디뎠다. 나와 상관없다는 착각 속에서 일을 시작한 후에도 우울의 매듭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표정 없는 얼굴로 출근했다가, 정확히 시키는 일만 하고 집에 가기를 반복했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사회복지보조’였지만, 솔직히 ‘사회복지’라는 것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다. 나의 관심사는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성공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할 것인가? 수많은 ‘나’안에 갇혀 주민센터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제 3자의 태도로 방관하며 복무에 임했다. 힘들고, 짜증나고, 외로웠다. 어떠한 소속감도, 보람도 느낄 수 없었다. 당연했다.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에 금을 크게 그어놓고, ‘나’ 아닌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나눠주는 일에 언제나 시큰둥했다.

 그 날도 그랬다. 차가운 바람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늦겨울 어느 날의 오후였다. 몸이 불편해 보이는 어떤 남자 한 분이 주민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녹음해 놓은 오디오 파일을 튼 것처럼 기계적으로 응대했다.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저... 저...” 언어 소통에 불편함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그 분은 조용히 5만원 지폐를 꺼내며 내게 주었다. 그리고는 간신히, 힘겨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이 돈을... 어려운 분들께... 기부해 주세요...” “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내 상식으로는, 나의 인생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여쭈어보았다. “기부를 하신다구요?” “네... 꼭 부탁드릴게요.” ‘꼭’이라는 말을 힘주어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아주 옅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떠나셨다. ‘왜?’, ‘무엇을 위해서?’ 라는 질문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무언가가 건드려진 것은 분명했다. 나는 답을 찾아 보기로 했다.

 그 충격적인 사건(?)이후 나의 복무태도가 바뀌었다. 사회복지 보조업무를 하며 기초수급자 분들의 가정에 지원물품을 가지고 가면서도 마음속에 불만이 가득했던 내가, 진심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배달해드렸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 나의 조그만 수고로 그 짐을 덜어드릴 수 있다는 마음을 냈다. 마음을 바꿔먹은 후, 광복동 주민센터에서 어려운 분들께 연탄 나르기를 할 때도, 무거운 쌀 포대를 들고 나를 때도 힘들지 않았다. 기초수급자 분들이 지원물품을 가지러 방문하셨을 때도, 거동이 힘들어보이셔서 직접 들고 가져다 드렸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간절하게 부탁을 하셔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원해서였다.

 주어진 업무로든, 내 의지로든 도움을 드리는 분들은 다양했다. 그 모든 분들이, 지팡이의 도움으로 겨우 걸으시는 할머니께서도, 일어나기 힘드셔서 누운 상태로 사회복지사님과 나를 맞으시던 할아버지께서도, 휠체어를 타시면서 제 시간에 약을 드시지 않으면 몸에 마비 증세가 온다는 할머니께서도, 적은 수고로 도움을 드렸을 뿐인데 정말 셀 수 없이 똑같은 한 마디를 하셨다. “감사합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있던 한 마디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거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제가 더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이었지만, 나는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행여나 감사하다는 말이 들리지 않았을까봐, 표정으로라도 꼭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바로 옆에 있었던 답 “모든 것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

 작가 박범신이 한 TV프로에 출연했을 때 한 말이었다. 많은 시간을 바쳤던 사법시험에 실패한 후, 끝없이 추락한 자존감, 그 후유증으로 왔던 우울감과 좌절감, 패배의식, 사람들을 만나기가 두렵기까지 했던 그 시간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곳에서 사회복무를 시작하며 진심으로 누군가를 돕기 전까지, ‘나눔’을 실천하기 전까지 그랬다. 내가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행복이 혼자만 소유할 수 있는 ‘이기적인 행복’이였다면, 지금 이곳에서 느끼는 행복은 ‘나눌 수 있는 행복’이였다. 오로지 혼자만 소유할 수 있는 ‘이기적인 행복’은 쫓으면 쫓을수록 멀어졌다. 마치 신기루처럼, 그것을 잡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지만 그것을 쫓는 과정에서 나의 몸과 정신은 점점 피폐해져갔다. 마침내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그 거대한 벽에 모든 것이 막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이곳에 길이 있었다.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지금 이 곳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있지 않았더라면, 소유가 아닌 나눔을 통해 함께 행복한 것이 더 충만한 울림을 준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어려운 상황에서도 더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 하는 그 분이 없었다면 여전히 앞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벽을 보며 절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분이 계셨기에 비로소 나는 옆을 바라볼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비로소 ‘나눔’과 ‘행복’이 보였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사회복지’라고 가슴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겨우 사회복무요원이라거나, 사회복지 ‘보조’ 업무를 맡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광복동 주민센터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느끼며, 나 스스로가 사회복지사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일하다 보면 복지 관련 일뿐만이 아니라, 동에 관련된 다양한 일들을 한다. 팩스 민원이나 서류 정리를 도와드리는 일 뿐만 아니라 관광에 특화된 광복동의 특성상, 유모차 대여 및 무거운 물품을 보관해 드리고, 미관을 위해 꽃 심기 및 거리 청소를 하는 일에도 함께 참여한다. 나의 편안함만을 생각했을 때 ‘내가 왜?’라는 생각과 함께 짜증부터 밀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광복동의 아름다움에, 주민들과 관광객 분들의 안녕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지금 이 곳에는 완연한 봄이 왔다. 거리에는 우리가 심은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해 각각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미소를 짓고, 출근할 때, 퇴근할 때 많은 분들과 내가 함께 가꾼 이 아름다운 거리를 보며 나 또한 미소짓게 된다. 나는 밝아졌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주 웃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깜짝깜짝 놀랄 정도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지금보다 더 살아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따뜻한 봄기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어둠 속에 갇혀있던 예전의 나 자신이, 비로소 ‘희망’이라는 빛을 보게 된 지금의 나에게 묻는다. ‘왜?’ ‘무엇을 위해서? 나는 대답한다. “더 행복하니까.”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눔’을 실천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한 개인의 관점에서 생각해도, 성실하게, 기꺼운 마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한다면, 자존감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더 행복하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앞만 바라봤을 때는 알 수 없었다. 옆을 돌아봤을 때, 함께하는 사람들을 바라봤을 때 비로소 그곳에 행복이 있었다. 나는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존재들과 함께이기에 ‘나’로 존재할 수 있고, 하나의 조직을, 하나의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이라는 마음 가짐으로 함께할 때 비로소 빛날 수 있는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가 함께 하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 나에게도 기쁨이 되는 이유가 아닐까?

 많은 분들을 도와드렸지만, 그 누구보다 가장 큰 도움을 받은 사람은 나 자신이다. 보람과 행복이라는 더 큰 가치를 그 많은 분들로부터 받을 수 있었으니까. 함께 일하시는 모든 분들께, 그리고 도움을 드린 모든 분들께,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다. 감사합니다.(konas)

허태근(부산중구청 광복동 주민센터)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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