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일협력
북한 상황의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대북 제재뿐만 아니라 대북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도 공동보조를 취하는 것이 중요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시작은 세계정치사의 획을 그은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1991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되어온 냉전구조를 무너뜨리고 미국을 세계 최정상의 유일 초대강국의 자리로 올려 놓았다. 냉전의 다른 한 축을 구성했던 소련이 스스로 무너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단순히 패권을 넘어서서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들어서서는 「제국(empire」으로 불릴 정도로 그 상대적 권력이 상승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행해진 2002년 아프가니스탄 공격과 2003년 이라크 공격은 미국 권력의 상대적 쇠퇴를 재촉하는 부담으로 걸리기 시작했다.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는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위상을 심각하게 흔들어 놓은 사건이었다. 이 위기가 다른 곳이 아닌 세계 권력의 중심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거의 동시적으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는 점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시작된 팽창적인 통화정책은 민간부문의 소비 확대와 버블 형성으로 연결되었고, 더욱 심화된 미국 경제의 금융화와 함께 금융부문의 도덕적 해이가 심화되어 세계금융위기 촉발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민간부문의 과소비, 그리고 경제위기 극복과정을 거쳐 오면서 더욱 누적된 엄청난 재정 적자는 세계정치에서 미국이 지도적 역량을 행사하는데 커다란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 결과 세계 권력의 중심이 서구에서 동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세계 최고의 채권자로 등장하게되었다. 중국은 2010년 6월 현재 2조45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을 보유하고 있으며 8,400억 달러 에 달하는 미국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정치가 이제 미국 주도의 단극이 아니라 다극체제로 변화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무엇보다도 미중관계의 향배가 앞으로 세계정치의 흐름에 큰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미국 경제력의 상대적 쇠퇴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직도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이다. 미국정부가 한해에 사용하는 군사부문 연구개발비는 세계 다른 모든 국가들의 군사부문 연구개발비를 합한 것보다도 크다. 비록 경제력은 약해졌다고 할지라도 군사력으로는 세계 유일초강대국인 미국은 앞으로도 세계정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계속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미국의 동아시아에서의 개입정책도 지속될 것이고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은 계속해서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의 중요한 핵심 축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상승세력 중국은 글로벌 차원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동아시아 차원에서 지도적 위치를 확보하려 노력할 것이다. 상승한 국력에 상응하는 새로운 국제적 위상을 원하는 것은 세계 역사상 모든 상승 대국들이 보여준 반복된 패턴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상승 세력의 욕구를 기존의 패권국과 그 연합세력이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이다.
미국은 기존의 국제체제에 중국이 참여하여 그 국제 규범과 가치 기준을 따라 주기를 원한다. 2005년 로버트 죌릭(Robert Zoellick)당시 국무부 부장관이 중국을 '책임있는 당사국'으로 지칭하면서 중국의 협조적 자세를 요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경제위기의 시작 이후 중국은 공세적인 태도로 전환했으며 대만에의 무기판매, 달라이라마 면담, 남중국해 문제,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한미군사훈련 문제 등을 놓고 미국에 대해 날을 세웠다.
결국 2010년 초 이후 미국은 이전의 부드러운 태도를 바꾸어 중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강하게 대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중국 측이 한걸음 물러나고 미국이 호응하면서 다시 한번 미중관계의 협력적 측면이 부각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장기적으로 볼 때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에서의 경쟁은 불가피할 것이다. 미국은 한미동맹, 미일동맹을 축으로 유지하면서 동아시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지속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 특히 중국의 군부 인사들은 이러한 동맹들은 냉전이 끝난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시대착오적 유산"이라고 비판을 지속할 것이다.
이러한 미중갈등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양국은 모두 경제적으로는 중국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으면서도 안보적으로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다. 그렇기에 미국과 중국이 서로 충돌하고 그 결과로 두 국가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 상황에 이르는 것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어려움을 줄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한일 양국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나의 방법은 동북아시아에 다자안보협력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유럽은 2차대전 직후 독일과 프랑스 양국간의 해묵은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경제적 통합의 길로 나섰고 당시 만들어진 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지금의 유럽연합으로까지 발전했다.
또한 유럽국가들 간의 다자적 안보협력을 위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만들어져 작동중이다. 이러한 유럽연합이나 유럽안보렵력기구와 같은 다자적인 협력메커니즘이 존재하기에 유럽국가들 간의 관계는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관계에 비해서 훨씬 안정적이다.
서로 민족주의 감정을 발동시켜 경쟁하거나 상호간의 의심과 오해가 안보위기로까지 발전하는 일도 드물다. 아무도 유럽국가들 간에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
그런데 동아시아 안보질서는 유럽과 달리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양자동맹체제(hub-and-spoke model)로 구성되어 있다. 한미동맹, 미일동맹, 미-호주동맹 등에 미중관계까지 더해 양자차원에서 안보 협력을 모색하고 있지만, 한국, 일본, 중국, 호주 등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국가들 상호 간에는 협력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역사 문제나 영토 문제들이 양자 차원에서 분쟁으로 발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양자동맹체제는 2차대전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소련이 붕괴하고 많은 변화가 이루어진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보완이 필요하다. 이러한 보완책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 바로 다자안보협력 메커니즘을 이 지역에서 강화시켜나가는 것일 것이다.
물론 동남아에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과 같은 안보협력메커니즘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북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ARF와 같은 느슨한 협력 메커니즘으로는 부족하다. 2003년 본인이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일할 때 6자회담이 북한 비핵화에 성공한다면 그 후 이것을 다자협력메커니즘으로 발전시켜야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제안은 북한의 비협조로 인한 비핵화의 진전이 없음으로 해서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6자회담 그 자체가 그 목표의 달성 여부와 관계없이 동북아에서의 다자안보협력을 위한 하나의 좋은 모델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다자협력체제는 정치적으로는 미국의 동맹인데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는 중국에의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가고 있는 2중적 구조에 처한 한국과 일본에게는 좋은 완충장치를 제공할 것이다. 모든 다자협력체제는 나름대로 제도로서의 규범과 규칙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러한 다자협력체에 미국과 중국 등이 한국, 일본과 함께 참여한다면 공통의 규범과 규칙을 준수하는 가운데 각국 간에는 행동의 예측성과 투명성이 커지고 국제관계는 더욱 안정화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에서는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 이후에 다자협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중국정부도 과거 1990년대 초반 이전과는 달리 다자협력메커니즘의 구축에 긍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도 함께 협력하여 동북아 다자협력 메커니즘의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그래서 중국까지 포함하고 미국의 동맹대상국들 간에도 상호간의 여러 분쟁현안들을 이러한 다자채널을 통해 논의해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일 양국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와 관련하여 이해가 일치한다. 바로 이 때문에 북한의 비핵화를 놓고 양국은 그동안 적극적으로 협력해왔다. 예를 들어 2004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한일은 북한비핵화를 이루기 위한 북핵 외교 과정에서 이른바 TCOG(Trilateral Coordination and Oversight Group)프로세스를 거쳐 협조해왔다. 때로는 미국정부의 강경한 북핵 외교 정책에 영향을 주어 유연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한일 외교실무자간에 사전에 상호 협의도 했었다. 그러나 양국간에 독도 문제, 과거사 문제가 다시 등장하면서 한일관계가 악화되어 협력이 힘들어졌었다. 2년여 전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래 한일관계는 회복되기 시작하여 양국간 협력도 다시 강화되었다. 여기에는 일본 자민당 보수정권의 후퇴와 민주당 정부의 등장이 양국협력에 긍정적인 모멘텀을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양국간의 협력은 천안함 사태 이후 긴밀한 양국 공조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일본정부는 사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한국정부의 입장을 지지해왔다. 유엔안보리 외교에서도 일본정부는 한국의 입장을 앞장서 지지했다.
한일 양국 모두 최근 1~2년 전부터 전개되고 있는 북한 내부의 불안정 상황에 대해 함께 우려하고 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 김정은으로의 승계문제를 둘러싼 불확실성, 북한 경제의 파탄, 천안함 공격과 핵실험 등에 대해 양국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유엔제재결의 1874호 이행에 있어서도 한일양국은 공동보조를 취해왔다.
앞으로 한일간의 협력의 과제는 북한문제에 대해 어떻게 공동의 보조를 취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북한 상황의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대북 제재뿐만 아니라 대북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도 공동보조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향후 북한의 점진적인 변화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혹시 있을 수도 있는 급진적인 변화에 대처하고 관리하는데 있어서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지정학적으로 인접한 한일 양국에게 있어서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미국의 입장과도 또 다른 시급성을 갖고 있는 측면이 있다. 이상과 같이 변화하는 동아시아와 한반도 정세 가운데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안정에 한일 양국은 대단히 중요한 축이 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더욱 긴밀하게 논의하고 협력해 나가야 될 것이다.(konas)
* 이 글은 지난 17일 극동문제연구소와 한반보평화연구원 등이 공동으로 주최한 한일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강연한 내용 전문임.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