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 치열한 '의제전투'가 승패좌우
서해5도 기습 상륙 등 군사적 도발을 실질적으로 억지할 수 있도록 서해5도와 주변해역 방어력을 증강하는 등 특단의 대책 강구하는 것이 시급하다.
2010년 5월 24일 정부가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임을 밝히면서 대북 제재조치를 발표하자 북한은 다음날 ‘이명박 정부 임기 중 남한과의 대화와 접촉을 하지 않겠다’는 대남조치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새해 1월 1일 신년 공동사설부터 시작하여 북한은 언제 그랬느냐 듯이 다방면으로 대화 공세를 펼쳤다.
북한이 한국과의 대화에 매달리는 여러 가지 사정과 목적이 있다. 지난해 천안함 공격과 연평도 포격으로 악화된 이미지를 벗기 위하여 ‘평화 제스처’를 국제사회에 보일 필요가 있다. 또한 2012년 총선, 대선에 대비하여 남한 사회에서 ‘나쁜 북한’으로 각인된 이미지가 심화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대화가 성사되면 남한과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고립에서 벗어날 여지가 생기고, 3대 세습 안착을 위해 단기간에 인민생활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경제 지원을 획득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고,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한사회의 균열도 극대화를 노릴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의 도발과 3대 세습 강행으로 인해 의기소침해진 남측 사회의 종북·좌파 세력의 힘을 보탤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고위급 군사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을 둘러싼 긴장완화를 제기하여 군사도발로 얻지 못한 북방한계선을 쟁점화 하여 무력화 할 수 있다.
북한은 신년 공동사설에서 대남대화 공세를 예고하면서 “전군을 일당백의 펄펄 나는 싸움꾼으로 준비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여 대내체제를 견고히 하고 있다. 성사된 대화가 잘되지 않더라도 국제적으로나 남한 사회에서 북한이 또 변덕을 부리구나 하는 비판을 받는 것 이외에는 잃을 게 없다.
북한의 대화 공세를 배경으로 하여 2월 8일과 9일 판문점에서 개최된 남북고위급 군사회담 실무회담에서 고위급 군사회담 의제에 대한 의견 대립으로 결렬된 회담 동향과 그들의 협상행태를 보면 이상의 분석이 적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전쟁이나 폭력으로 자본주의체제를 전복시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협상’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상대가 강력하여 전쟁이나 폭력에 의한 혁명 성취가 어렵고 오히려 체제가 생존 위기에 빠지는 불리한 정세에 놓이면 마지막 선택으로 협상을 택한다.
수세적 상황에서 할 수 없이 협상에 임하게 되더라도 그들은 초기에 회담 장소, 일시, 대표의 수준과 의제에 집중한다. 특히 의제(議題)는 단순히 토의될 항목과 내용이 아니라 회담의 본질이기 때문에 유리한 의제 채택에 주력한다. 북한이 이번에 우리가 제의한 천안호 폭침, 연평도 포격 이외에 ‘쌍방 군부 사이의 상호도발로 간주될 수 있는 군사적 행동 중지’를 의제로 제의한 것은 고위급 군사회담에서 ‘서해 해상경계선 재설정’을 제기해서 우리의 북방한계선을 무력화하려는 것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의 협상 행태 또한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협상이란 다른 형태와 수단에 의한 전쟁의 연속”이라고 한 마르크스·레닌의 가르침을 추종하여 실제 도발에서 얻지 못한 북방한계선 무력화를 협상에서 확보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실무회담 둘째 날처럼 억지 주장을 반복하다가 인사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회담장을 퇴장하는 전사적(戰士的) 행태를 보인다.
실무회담 첫째 날 북한 대표단의 초조한 모습은 1990년대 초 동구권 붕괴 후 개최된 남북총리급 회담에서 보인 분위기와 유사하였다. 그러면서도 10일 북한 대표단은 “남측이 두 사건 해결만 고집하여 더 이상 상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발표하였다.
그동안 주장에 비추어 북한이 2010년 북방한계선 해역에서의 군사도발을 시인·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진정성을 보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1971년 이래 남북대화 경험에 비추어 보면 고위급회담에 미련이 있는 북한이 결국 실무회담 개최를 다시 요청해 올 것이다. 그때도 우리는 북한으로부터 ‘책임 있는 조치’와 ‘추가도발 방지 확약’을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
대한적십자사가 2월 9일 남북고위급 군사회담 실무회담 성사를 예견하고 총재 명의 전통문으로 북한이 1월 10일과 2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제의한 “적십자회담 개최 원칙에 동의하며 구체적인 일자 및 장소는 남북 고위급군사회담 이후에 쌍방이 협의하여 확정해 나갈 것”을 제의한 것은 성급한 조치였다.
한국은 대화 성사에 매달리는 북한을 일관되게 압박해야 물러나게 할 수 있다. 북한은 1991년 12월 제5차 총리급회담의 마지막 순간까지 서해 해상경계선 재설정을 고집하다가 결국 “해상불가침 구역은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는데 합의했다. 이를 전례 삼아 대화에 임하는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실무회담이 재개되면 치열한 ‘의제 전투’를 계속해야 한다.
북한이 대화 공세를 펴는 시기를 전후하여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과 대량살상무기 개발 동향이 연이어 확인되고 있다. 한·미 정보당국은 지난해 말 북한이 백령도에서 50km 떨어진 황해남도 용연군 고암포 일대에 공기부양정(LCPA) 기지를 건설하고 있음을 포착했다.
LCPA는 척당 1개 소대의 병력을 태우고 최고 시속 90여km의 속력으로 기동할 수 있다. 30~40분 이내에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에 상륙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 기지가 완성되면 백령도에서 300㎞ 떨어진 평안북도 철산기지에 있는 LCPA 70여척을 모두 이곳으로 옮길 것이다. 이 경우 LCPA 70여척은 전차와 특수부대 4,000여명을 동시에 침투시킬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 말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대포동 미사일 기지 5배 크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장을 완공하였다.
또 북한이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 핵실험을 하였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지하갱도를 800m 까지 팠음이 확인되었다. 200m 정도만 더 파면 4월 이후 3차 핵실험을 할 수 있다.
북한은 1950년 6. 25 남침을 앞두고 지금과 같이 대화공세를 취하였다. 우리는 북한의 대화공세에도 대비하여야 하겠지만, 북한의 예견되는 서해5도 기습 상륙 등 군사적 도발을 실질적으로 억지할 수 있도록 서해5도와 주변 해역에 방어력을 증강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시급하다.(konas)
송종환(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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