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정상회담 평가 및 향후 전망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8월 20-27일 러시아를 비공식 방문하였다. 방러 경로는 접경지역인 러시아의 핫산을 통과하여 부레야를 지나 울란우데에 도착하였다.
김정일 위원장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시베리아 부랴티야 자치공화국 수도 울란우데시 외곽의 소스보비 보르(소나무 숲)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김위원장의 귀환 경로는 중국의 만저우리, 치치하얼, 다칭, 지안을 거쳐 북한의 만포로 들어갔다. 방러 경로는 과거 김일성 주석의 소련방문의 흔적 찾기이며, 울란우데를 정상회담 장소로 선택한 것은 중국을 통한 귀환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수행원은 특구개발과 해외투자를 담당하는 장성택과 김양건 부장, 경제관료인 태종수 부장과 박봉주 부부장, 북러 접경지역을 총괄하는 오수용 함경북도 당비서 등이 동행하였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수행원은 철도부장관, 북러무역경제과학기술협력위원장, 극동연방관구 전권대표 등이 동행하였다. 김위원장은 브레야 수력발전소와 울란우데 시내의 대형 슈퍼마켓을 둘러보았다. 포괄적 경제협력 문제가 주요의제임을 보여준다.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군수담당인 박도춘 국방위원, 기계공업 담당인 주규창 부장, 이병철 공군사령관 등도 김위원장을 수행하였다. 러시아 측에서는 국방장관이 동행하였다.
김정일은 아비야자보드 항공기 제작사를 시찰하고 제11공수여단의 낙하시범도 관람하였다. 군사협력문제가 폭넓게 논의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북한측에서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동행하였고, 러시아측에서는 대통령대외정책보좌관과 외무부 부상이 동행하였다. 북핵문제와 6자회담이 심도있게 논의되었음을 보여준다.
김정일과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한 차례의 단독정상회담과 한 차례의 확대정상회담을 가졌다. 양정상은 조건없는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와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 협의를 위한 남·북·러 3국 특별위원회 발족에 합의하였다.
김정일은 6자회담 과정에서 핵물질 생산과 핵실험을 잠정중단할 수 있음을 밝혔다. 6자회담 전에 잠정중단을 선언하고 6자회담이 개최되면 곧장 이행에 들어가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이 남·북·러 3각 경제협력의 조건임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일의 방러기간중인 22-26일 러시아 연방군 동부관구 콘스탄틴 씨젠코 사령관을 단장으로 한 러시아 군사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하였다. 북한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이영호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조선인민군 대표단이 러시아 대표단을 맞이하였다. 러시아 군부가 당중앙군사위원회 김정은 부위원장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모양새이다.
양국 군사대표단은 ‘육·해합동군사훈련과 자연재해 지역에서 인명구호 활동, 선박구조 및 수색작업 훈련 등 양국간의 군사협력 문제를 폭넓게 논의’하고 상당부분 합의까지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5-27일 평양에서 장관급이 단장으로 참가하는 북러경제협력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다.
양측은 가스·철도 연결 등의 경제협력과 유무상의 식량지원문제, 나선특구와 핫산간의 개발협력문제, 북한 노동자의 연해주 파견문제, 북한의 러시아 채무 탕감문제, 구소련제 재래식 무기의 부품조달과 훈련용 탄약·기름 지원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경제적 지원과 체제보장에 대한 보다 진전된 확약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러시아는 동북아에 있어 중국을 견제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재와 개입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김정일은 중국의 동북지방을 경유하여 귀국하였다.
중국은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을 동북지방에 파견하여 김정일을 영접케하였다. 김위원장은 다이빙궈 국무위원에게 조건없는 6자회담 재개와 동시행동의 원칙에 의한 9.19 공동성명의 성실한 이행 의지를 밝혔다.
김 이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방문한 것은 외형상으로 균형외교의 형태를 지니지만 실질적으로는 중·러간의 경쟁심리를 역이용하여 더 많은 지원과 협조를 이끌려는 전략적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방러 성과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대외관계를 한층 강화시켰다. 지난해 당과 국가기관의 정비를 통해 내부체제를 공고히 했고, 올해에는 중국과 러시아 방문을 통해 대외체제를 공고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 둘째, ‘이슈 선점’을 통해 한편으로는 중국을 견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과 미국을 압박하는 이중효과를 얻은 것으로 평가된다. 셋째, 그 자신의 건재함과 김정은의 국내 관리능력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러정상회담의 내용만 보면 6자회담의 전망이 쉽지 않다. 미국은 북한의 핵물질 생산 및 핵실험 잠정중단 용의 표명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6자회담 재개의 사전조치로서는 불충분함을 지적하였다.
미국은 지난 7월 말 김계관과 보즈워스간의 북미고위급회담에서 6자회담 재개의 사전조치로 ‘미사일 및 핵실험 중단, 농축우라늄 활동 중단,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 복귀, 9.19 공동성명의 성실한 이행 의지 표명’ 등을 제시하였다.
특히 미국은 사전조치 가운데 북한의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은 반드시 중단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북한은 우라늄 농축문제는 사전조치의 대상이 아니라 6자회담에서 논의의 대상임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지만 각각이 한발짝식 양보한다면 접점도 찾을 수 있다.
해법은 말 대 말과 행동 대 행동의 단계적 접근에 있다. 먼저 ‘말 대 말’로서, 미국은 33만톤 규모의 대북식량지원을 발표하고, 한국은 관광객 피격사건의 3대조건(진상규명, 재발방지, 관광객 신변안전보장)이 충족된 상태에서 관광재개를 발표하고, 북한은 우라늄 농축시설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의 생산과 핵실험을 6자회담 기간에 잠정 중단하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다음은 ‘행동 대 행동’으로서 6자회담이 시작되면, 미국은 대북식량지원의 “1호배”를 북한으로 출발시키고, 한국은 관광의 “1호차”를 금강산으로 출발시키고, 북한은 우라늄 농축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의 생산과 핵실험을 중단하고, 동시에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가 시작되는 등 소위 남북한과 미국이 “동시행동의 윈칙”을 준수한다면 년내에 6자회담 재개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러 정상은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 협의를 위한 남·북·러 3국 특별위원회 발족에 합의하였다. 이미 양자차원에서 한러간, 북러간의 협의를 통해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11월쯤 ‘특별위원회’가 발족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실질적인 진전이 있기 까지는 환경적 여건과 기술적 문제 등 복잡한 변수들이 서로 얽혀 있다.
먼저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6자회담이 재개되어야 만이 특별위원회의 활동이 성과를 낼 수 있다. 기술적 문제도 복잡하다. 먼저, 노선문제이다. 육로를 할 것인지 해로를 할 것인지, 육로로 한다면 러시아에서 출발하여 중국 동북3성과 북한을 경유할 것인지 아니면 북한만 경유할 것인지, 육로로 한다면 철도건설과 연계할 것인지 등도 정해야 한다. 육로로 하면 건설비용은 적게 들지만 관리비용이 많고, 해로로 하면 건설비용은 많지만 관리비용이 적게 든다.
다음으로 재원부담 문제이다. 러시아가 전부 부담할 것인지 아니면 컨소시엄 형태로 남북한을 참여시킬 것이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북한은 참여할 의사가 없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수송의 안정문제이다. 2003년 터키는 가스의 수입량과 가격문제로 러시아로부터 가스수입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바 있다. 양국은 국제중재재판소에 중재하는 등 외교적 문제로 확대되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세 차례의 가스분쟁이 있었다. 미수금과 가격, 가스유용 문제가 분쟁요인이었다. 러시아가 가스공급을 중단함으로써 우크라이나를 경유해서 가스를 공급받는 유럽국가들이 타격을 입었다. 에너지를 구기화한 사례이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경제적 지원과 체제보장의 토대를 마련한 듯하다. 남한과 미국에 대한 기대를 점점 접어갈 수 있는 신호일 수 있다.
북한은 연말까지 남북관계가 복원되지 않고 북미관계가 악화되면 내년 2월 16-4월15일 사이 강성대국 선포와 함께 장거리 미사일과 핵실험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는 차기정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연내 남북관계 복원과 6자회담 재개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 이 글은 월간 자유 10월호에 게재된 글임.
양무진(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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