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전력, 왜 키워야하는가
1999년 3월25일 괌 해상에서 벌어진 ‘기적’이다. 이때 해군은 미국과 함께 탠덤 스러스트(Tandum Thrust) 훈련에 참가하고 있었다. 그날 우리 1200톤급 제2번함 ‘이천함’에게 주어진 임무는 1만6000톤급 퇴역 순양함 오클라호마시티를 격침시키는 것이었다.
만일 이 임무가 실패하면 대기하고있던 미국 로스앤젤레스급(7000톤) 핵 추진 잠수함 콜럼버스에게 순서를 넘겨야할 판이었다. 우리 해군은 자칫 체면을 구길 위기에, 미군은 ‘어린아이’수준으로 얕보고 있던 한국해군의 실력에 크게 웃어줄 요량이었다.
마침내 이천함에서 독일제 수트(Sut) 중(重) 어뢰가 발사됐다. 어뢰는 오클라호마시티함에 명중했다. 그때부터 23분만에 함체(艦體)가 두동강났다. 갈라진 함체는 서태평양의 깊은 물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기다리던 콜럼버스의 ‘탄식’이 들렸다.
사실 한국 해군의 잠수함 전력은 주변국에 비해 그리 위력적이지 못하다. 그런데도 그 운용능력은 짧은 시간에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미국 태평양함대 잠수함사령관이 한국 해군에게 보낸 편지가 그 가운데 하나다.
“귀함(貴艦)은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잠수함사(史)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전과를 올렸습니다.” 미 잠수함사령관이 편지를 보낸 배경에 이종무함이 있다. 이종무함이 림팩훈련당시 미국 핵추진 잠수함을 ‘가상전’에서 격침시켜버리고 만 것이다.
핵을 제외한 무기가운데 최강은 무엇일까. 이런 논쟁에 전략가들은 최신예 FX전투기보다 잠수함을 꼽곤한다. 전투기는 아무리 스텔스기능이 강해도 최대 600㎞밖에서부터 레이더에 탐지된다. 레이더망을 피해도 방공(防空) 미사일과 방공포가 기다리고있다.
바닷속은 하늘과 전혀 다른 공간이다. 수㎞ 떨어진 물체도 잘 탐지하기가 힘들다. 1998년 6월 북한 유고급 잠수정이 꽁치잡이 이선 그물에 스크루가 걸려 발각된 적이 있다. 운이 나쁜 이런 경우가 아니면 잠수함을 찾아내기란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잠수함은 수만톤의 함정도 어뢰 한발로 수장(水葬) 시킬 수 있는 KO펀치를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은밀하다. 한마디로 현대판 ‘닌자(忍者)’라 할 것이다. 이 잠수함의 위력에 전 세계가 새삼 놀란 사건이 있었다. 바로 대서양 한복판에서 일어난 전쟁이었다.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영토 전쟁이 벌어졌다. 영국에서 7000해리(海里), 아르헨티나에서 400해리 떨어진 포클랜드제도(諸島)와 거기서 동남쪽으로 780해리에 있는 사우스 조지아섬의 영유권을 둘러싼 싸움이 그해 4월1일 터져 6월14일 끝났다.
지금 세대들은 포클랜드전쟁이 영국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사가(戰史家)들의 결론은 다르다. 잠수함이 얼마나 위력적인 무기이며 어뢰(魚雷) 한발이 승패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라고 보는 것이다. 당시로 돌아가 보자.
당시 아르헨티나는 4척의 잠수함을 보유하고있었다. 그 가운데 3척이 ‘깡통’수준이었고 209급 산루이(San Luis)만 정상가동되고 있었다. 이 한척의 잠수함을 찾기 위해 32척이나 되는 영국의 수상함(水上艦)이 매달렸지만 산루이는 한번도 탐지되지 않았다.
5월1일 산루이가 영국기동함대를 향해 SUT어뢰를 쏘았다. 그게 항공모함 인빈서블이나 순양함 헤르메스에 명중했다면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 입장에선 불행하게도 어뢰가 작동하지 않았다. 훈련을 게을리하고 정비가 부실했던 탓이다.
영국의 반격은 다음날 이뤄졌다. 5척의 핵추진 잠수함 중 하나인 콘쿼러(Cinqueror)가 아르헨티나 순양함 벨그라노에게 2발의 MK-8 어뢰를 꽂아넣은 것이다. 벨그라노가 가라앉자 겁을 집어먹은 아르헨티나 수상함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도망치기 바빴다.
잠수함의 위력이 처음 드러난 것은 2차 세계대전때다. 1940년 8월 수세(守勢)에 몰리던 히틀러는 해군에 대 연합군 무제한 파괴작전을 지시한다. ‘늑대 떼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직후 독일의 에이스급 잠수함 오토 크래취머와 귄터 프린의 활약이 시작됐다.
특히 소령 크레취머가 이끌던 U-99는 구축함 1척, 보조 순양함 2척의 해군 함정을 포함해 모두 44척의 선박을 격침시켰다. 그 톤수를 합해보니 무려 26만 6629톤이었다. 만일 미국 도움이 없었다면 영국은 대독전(對獨戰)에서 패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잠수함을 ‘비대칭(非對稱) 전력’이라 부른다. 탱크, 군함, 전투기, 미사일을 대칭 전력 혹은 재래식 무기라 분류하는 것과 달리 잠수함, 핵무기, 화학무기같은 비대칭전력은 기습과 게릴라전에 유용하다. 복싱에서 ‘일발필도(一發必倒)의 KO펀치’같은 것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4대 군사강국 틈에 끼어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비대칭 전력이 그래서 더 중요하다. 더구나 한반도 주변에는 잠수함 보유랭킹 1~5위국이 포진하고있다. 미국(73척), 러시아(64척), 북한(55척), 중국(54척), 일본(20척)이 그들이다.
이런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지도자가 있긴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가 잠수함이 유사시 북경(北京)과 동경(東京)을 향해 KO펀치를 휘두를 비장의 무기이며 그런 힘을 갖출 때 주변국이 대한민국을 우습게 보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국방개혁 2020’을 발표하면서 “2013년까지 잠수함사령부를 창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잠수함사령부를 만들기 위해 현재 12척인 잠수함 수를 1200톤인 209급 9척, 1800톤인 214급 9척 등 18척으로 6척 더 늘리려는 계획까지 마련했다.
해군은 이 청사진에 기뻐했다. 해사(海士) 졸업성적 3등 이내의 엘리트를 잠수함사(司) 준비요원으로 배치됐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몇달 뒤 출범했을 잠수함사는 이명박 대통령 집권 후인 2009년 무산됐다. 창설이 2년 유예된 것이다.
이유는 예산부족이었다. 그 사이 중일간에 센카쿠열도(중국명 타오위다이·釣魚島)분쟁이 터졌다. 한일간 독도갈등이 고조됐다. 머지않아 한중간에 이어도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벌어질 것이다. 그러자 부랴부랴 다시 잠수함전력이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번도 제대로 준비를 갖춘 채 국난(國難)을 극복해본 적이 없는 역사를 가진 나라다. 임진왜란 때 그랬고 병자호란 때도 그랬으며 일본에 병합당할 때도 그랬고 6·25때도 그랬다. 영웅(英雄)아니면 의병 혹은 외국의 힘을 빌어서야 겨우 살아났다.
요즘 해군에선 4대강 사업비가 새삼 화제라고 한다. 그 비용의 절반만 줄였으면 벌써 중국과 일본 누구도 겁나지 않을 이지스함, 구축함, 잠수함, 헬기로 이뤄진 3개 기동전단이 동서남해를 누비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생각할수록 분통터지는 이야기다.
미국의 전설적인 제독 알레이버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육군은 소총만 있으면 금방 부대를 편제할 수 있지만 제대로된 해군을 기르는데는 100년이 필요하다!” 그는 92명의 선배를 제치고 해군참모총장이 된 뒤 전시가 아닌 평시(平時)에 3기나 연임했다.
미국의 제1번 이지스함에 그의 이름이 붙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의 한국 사랑이었다. 6·25때 백선엽 장군의 호소에 감화된 그는 동해안으로 함대를 이끌고 가 함포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음으로서 백 장군의 북진(北進)에 숨은 공로자가 됐다.
그때 알레이버크의 지원이 없었다면 동부전선 쪽 휴전선이 그렇게 북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육군에선 밴플리트, 해군에선 알레이버크같은 은인(恩人)이 있었기에 오늘의 국군이 있고 오늘의 세계 10대 무역국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그가 한국에게 32척의 함정을 대여해준 사실을 아는 이들이 드물 것이다. 이렇게 공들여 만든 우리 해군이 전쟁이 끝난지 60년이 다 되가는 시점에서도 항상 위기 때만 되면 ‘전력 부족’이란 말을 듣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역시 제대로된 군을 건설하는데는 100년이 걸려야한다는 그의 말이 맞는 모양이다.(자유지12월)(konas)
문 갑 식(조선일보선임기자)
*국보법개정서명바로가기 : http://konas.net/event/signature.asp
- 관련기사보기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