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자 병역이행 수기⑦〕'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본 내용은 2012년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실시한 ‘외국 영주권자 병역 이행’에 대한 군 생활 수기 내용임.(편집자 주)
이병! 고영우! 올해 스물 아홉 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 계급과 나이를 듣고 놀라지만, 8군단 108정보통신단 전우들에게는 이제는 익숙한 말입니다. 저는 스물아홉 살이 되는 올해 초에서야 입대를 결심하여 4월에 입대, 이제 겨우 여섯 달 째 병영생활을 하고 있는 신참입니다.
중학생이 되기까지 줄곧 한국에서 자란 저도 제가 이렇게 늦은 나이에 군 생활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평범한 한국의 청소년처럼 지냈던 저는 운동선수를 꿈꾸며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중학생의 몸으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훈련을 받던 도중 한국 사회에서 운동선수가 되기 위한 길은 너무나도 험난함을 깨닫게 되었고, 나날이 반복되는 훈련에 심신의 고통은 더해갔습니다.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제 자신이 감당해야하는 희생이 너무나 컸기에 저는 미국 유학을 택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생활도 녹록지만은 않았습니다. 생소한 문화 속에서 낯선 인종들과 부대끼며 익숙지 않은 언어로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은 열여섯 살의 저에게 깨나 큰 성장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던 저는 미국생활에 건곤일척의 각오로 임했습니다. 제 노력은 결실을 얻어 2003년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미국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에 저는 공군사관생도로서 푸른 제복을 입고 행진하고 훈련하는 모습, 그리고 넓은 연병장에서 자유스럽게 운동할 수 있음에 기쁨을 느끼며 일말의 망설임 없이 입학하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사관생도 보급품을 받던 첫날의 희열 과 떨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공군사관학교 생활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영어인데, 영어로 군대용어를 익히는 일, 영어로 훈련을 받는 일은 멀쩡한 저를 바보로 만드는 것 같았고, 유색인종으로서 인종 차별(Racism)을 더 심하게 받았습니다.
“말 안 통하는 노란 원숭이”(Yellow Monkey)라고 불리던 저는 사관생도로서는 부끄럽지만 전우들과 싸움도 많이 했습니다. 만약 제가 여기서 분노를 느끼고 싸우는 일에만 그쳤다면 저는 평범한 동양인 사관생도로 남았을 것입니다. 한국인으로서의 불타는 자존심은 다른 인종들이 한국인을 무시하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곧 저는 군사훈련, 공부, 체육활동 등 모든 분야에서 백인들에게 이기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사관생도 2학년 말에 저는 소대장 임무를 맡게 되었고, State Champion을 거머쥐며 아시아인 최초로 스포츠 MVP로 선정되어 명예의 전당에 제 사진과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예전에는 저를 무시했던 백인사관생도들이 서서히 저를 인정했고, 저 역시 모든 생활에 익숙해져 사관학교 생활을 즐거운 마음으로 마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엄숙한 사관학교 생활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동기 생도들과 밤에 몰래 끓여먹던 라면, 전역자 모포말이 등은 어느 덧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졸업을 앞두고 있던 저는 갑작스런 의구심에 휩싸였습니다. 미국 공군이 되는 것,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길인가? 답은 ‘No’였습니다. 미국 공군이 되면 받을 수 있었던 모든 혜택은 그리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미국 시민권도 주고 장학금도 준다던 회유를 뿌리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단호히 모든 제안을 거절하기로 마음먹고 한국에 계신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 경영학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고, 미군이 되는 것 그리고 미군이 됨으로써 얻는 혜택을 모두 버렸습니다. 동시에 한국군 입영통지서를 받게 된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
스물네 살이 되던 해, 한국군 입대는 꿈을 위해 잠시 미뤄두고 저는 뉴욕에 위치한 시라큐스대학 (Syracuse University)에 진학했습니다. 미국 대학 30위권인 명문대학에 입학한 저는 새로운 출발과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즐기지 못했던 자유로운 대학생활 속에서 다양한 생각과 문화를 접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경영학 공부는 저에게 대단한 흥미를 주었고 이에 저는 공부에 더욱 박차를 가해 좀 더 넓은 경영 분야를 섭렵하기위해 원래 시라큐스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마쳤습니다.
대학원을 마치고 기쁨도 잠시, 어느덧 제 고향인 대한민국 귀국을 몇 달 앞에 두고 뒤를 돌아보니 한국인으로서 해야 할 국방의 의무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노력하고 섭력하였던 모든 것을 무기로 사회에 나서길 원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스스로 포기한 미국 시민권은 과거의 제 용감한 선택을 후회하게끔 유혹했습니다.
‘나이는 어느덧 스물아홉이고 군 생활은 사관학교에서 4년이나 하지 않았는가. 한국 친구들은 이십대 초반에 이미 군 생활을 마쳤고 한국 군 생활은 미군만큼 녹록치도 않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왔는데’. 온갖 고민에 휩싸인 저는 국군장교, 학사사관 시험, 카투사 복무, 방위산업체 등 현역병복무를 피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고민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는 이 모든 것으로 하여금 극히 제안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정당당히 현역병 입대를 하는 것이 저를 낳아준 조국에 대한 가장 큰 보답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조국도 지키지 못하는 제1국민이 외국에 나가서 무슨 큰일을 할 수 있겠으며, 조국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는 반성이었습니다.
2012년 4월 모든 잡념을 뒤로 하고 저는 당당히 대한민국 육군으로 입대했습니다. 늦깎이에 받는 군사훈련, 한참 어린 다른 병사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은 사관학교와는 또 다른 추억을 저에게 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제가 몸담고 있는 대한민국 육군은 입대 이전에 들었던 수많은 루머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선진화되어 있었습니다. 에어컨이 나오고 침대에서 취침하는 쾌적한 생활관, 후임을 아껴주고 선임을 도와주는 전우애 넘치는 병영생활, 합리적인 업무분담은 다시금 제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해주었습니다.
올해 10월, 서른이 가까워질 무렵, 일병으로 진급하는 저는 하루하루 보람되고 즐거운 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발전된 육군은 배움이 있고 보람이 있는 곳입니다.
이제 저는 당당히 현재 군복무를 앞두고 온갖 고민과 망설임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말합니다.
“미국시민권을 포기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배움과 보람이 있는 육군으로 망설임 없이 자부심과 긍지를 안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입대하시길”(Konas)
일병 고영우 (108정보통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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