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자 병역이행 수기⑧〕선택이 아닌 의무
본 내용은 2012년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실시한 ‘외국 영주권자 병역 이행’에 대한 군 생활 수기 내용임.(편집자 주)
영주권은 특권이다!
군대에 오기로 결정하기 전 나는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까지 한국에서 다니다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정신없는 고등학교 시절과 수험생 시절을 보낸 후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에 가보니 한국에서 온 여러 명의 유학생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한해 한해가 지나면서 그 친구들은 군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입대하기 위해서 휴학을 하고 귀국을 하였다. 그에 비해서 나는 군대는 나와는 상관없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나와 가족들은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한국에서의 삶보다는 미국에서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당장에 닥친 군대라는 문제를 회피할 수 있는 도구이자 특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미국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군복무 의무를 잊은 채 미국에서의 나의 인생을 설계해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나고 대학교 마지막 학년이 되었다. 학교를 졸업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취업 준비도 성공적으로 이루 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 둘이서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를 한 잔 마시게 되었다. 술이 어느 정도 취하신 아버지께서 나를 지그시 바라보시면서 나의 인생을 바꾼 한마디를 하셨다. “상헌아, 군대 다녀와서 아빠랑 한국에서 한국 사람으로 같이 살자.”
평소에 내가 미국에서 살겠다는 의지나 군대 문제에 대해서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던 아버지이셨기에 그 말씀은 더욱 더 가슴에 와 닿았다.
미국에서의 삶만 생각했던 나에게 큰 혼란과 같은 상황이었다. 아버지께서 진지하게 고민 해보고 나에게 결정을 내리라고 하셨다.
24살, 군대에 가기에는 조금은 늦은 나이였다. 영주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군 복무를 회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한국 사람으로 살자는 아버지 말씀이 계속해서 나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길지도 짧지도 않은 고민 끝에 나는 군 입대를 하기로 결정했다.
2012년 3월 12일, 나와 같이 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전우들이 단체로 육군훈련소에 입대를 하였다. 세계 각지에서 20대 중반부터 10대까지 다양한 나이와 배경을 가진 한국남자들이 육군훈련소에 입소를 하였다.
그들 중에는 평생을 외국에서만 살다온 친구들도 있었다. 한국말이 서투르고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도 않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가지고 입대를 한 것이다.
훈련 기간 동안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한때나마 영주권을 특권으로 생각하면서 잠시나마 군 입대를 회피하려고 했었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럴수록 더욱 더 힘을 내서 훈련을 받게 되었고, 군대에 온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말을 썼던 50명의 전우들과 함께 훈련병 생활을 마치고 국군 의무사령부로 전입을 하게 되었다.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자대에 와보니 나처럼 미국 영주권을 소지하고 있는 선임도 있었고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해왔던 선임들도 있었다. 다시금 잘 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낯설고 막연했던 의무사령부에서의 군 생활은 친절하고 열정적인 선임들의 가르침과 배려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혹시나 오랜 외국 생활 때문에 적응을 잘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졌었지만, 이제는 당당히 나도 국군의무사령부 본부근무대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늦은 나이라는 것이 두려웠다. 오랜 외국 생활에 적응도 잘 하지 못하고 따돌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2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군 생활을 하면 할수록 이러했던 나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 되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군 생활은 나에게 단체 생활에 대한 노하우를 알려 주었으며 힘든 훈련과 많은 업무를 해결해 나가면서 전에는 없었던 끈기와 인내력이 생겨났다.
연간 3천여 명 정도의 대한민국 남성들이 병역 회피를 목적으로 국적을 포기한다고 한다. 아마 그날의 대화가 없었다면 어쩌면 나도 그 3천명 중 한 명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군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나는 내 자신이 그 3천명 중 한명이 아니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그리고 30년 후에 내 아들에게도 내 아버지께서 그러하셨듯이 당당하게 군대에 아버지처럼 군대에 가자고 할 수 있다는 그 점이 너무도 다행스럽다.(Konas)
일병 김상헌 (국군의무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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