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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자 병역이행 수기⑨〕용기있는 선택, 가치있는 길

Written by. 김정준   입력 : 2013-01-14 오전 9: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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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2012년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실시한 ‘외국 영주권자 병역 이행’에 대한 군 생활 수기 내용임.(편집자 주) 

 “아빠, 나 군대 가기로 했어요!” 2011년 3월 이른 아침 미국에서 걸려온 진석의 전화에 나 는 잠이 확 깨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미국에서 어렵게 대학 마치고 직장 잡아 영주권 따고 36세까지 병역 연기 받았다고 좋아하던 놈이 갑자기 자원하여 군대 간다니. 이놈이 필시 직장에서 짤렸거나 사고를 쳤구나!’

 “야, 너 차사고 냈냐? 회사에서 해고 당했냐” 나는 다짜고짜 따지고 들었다. “그게 아니구요. 제가 오랫동안 생각해 오던 것 이예요. MJ(여친)와도 많이 고민해서 결심한 거예요. 걱정마시구요. 뉴욕 영사관에 가서 입영일자 알아보고 회사 업무인계 정리 되는대로 귀국 할 게요”

 전화를 끊고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지나간 9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2002년 초 뉴욕지사 발령을 받고 녀석을 설득하여 다니던 대학을 휴학시키고 미국으로 데려가 어학연수 코스부터 시작하여 뉴욕시립대학에 편입학 시킨 일, 2년 후 갑자기 귀국 명령을 받아 진석 혼자서 자취하며 어렵게 대학을 마친 일, 그 보다 더 어려운 취직까지 하게 되어 기뻐했던 일, 영주권을 취득하여 군대 가지 않고 경력을 계속 쌓을 수 있다고 좋아 하던 일, 서울에 여자 친구가 생겨 미국이냐 한국이냐를 고민하던 일 등등...

 그렇지만 나이 서른이 넘어 군대를 간다니 이건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나도 몇 년 전까지는 떳떳하게 군 복무를 마치는 것이 좋겠다고 권하기는 했지만 이제야 군대를 가겠다니…

 “가야 가는 거지. 저 놈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누가 알아!” 듣고 있던 아내가 한 마디 던진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녀석은 정말 다니던 회사를 사직하고 입대날짜를 잡아 귀국을 서두르는 것이 아닌가. 부모 말은 안 듣더니 여친의 힘이 무섭긴 무섭구나!

 2011년 10월 10일 드디어 입대일이 밝았다. 녀석은 어제부터 머리를 짧게 깎고 이것저것 훈련소에 필요한 소품들을 사오더니 오늘은 나 보다 일찍 일어나서 부스럭 거리는 모습이 긴장이 되긴 되는가 보다.

 우리는 일찌감치 차를 몰아 입소 2시간 전에 논산에 도착했지만 훈련소 앞에는 이미 많은 입영병들과 가족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머리 깍은 입영병들의 모습이 어찌나 어려 보이는지 100킬로가 넘는 아들의 모습은 정말 늙은 티가 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애써 무표정하게 훈련소 입구의 식당으로 향했다.

 불낙전골을 시켜 놓고 앞에 앉은 녀석의 모습을 자세히 보니 녀석은 꼭 도살장에 끌려 온 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야, 이게 첫 휴가전에 네가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사회밥이야. 오늘 저녁부터 짬밥이니까 많이 먹어”

 나는 짐짓 옛날 군대식 어투로 말을 건넸다. 아무 대꾸도 하지 않던 녀석은 제법 먹음직한 전골을 몇 숟갈 뜨다 말고 화장실 간다고 나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소도 도살장 앞에서 똥오줌을 싼 다더니…

 “그렇찮아도 심란한 애에게 왜 그런 소릴 해요” 아내가 짜증을 냈다. 식사를 마치고 밖에 나와 보니 녀석은 담배를 피면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중에 고백한 말이지만 당시 녀석은 ‘그냥 돌아가 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입소시간에 맞춰 훈련소로 들어가니 입영병들은 연병장으로, 가족 친지들은 스탠드 위로 안내 되었다.

 ‘부모님에 대한 경례’를 받는 순간 아내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온통 눈이 벌게진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는 막사 쪽으로 향하는 입영병 대오 속에서 손을 흔드는 아들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 본 후 석양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는 스탠드를 떠났다.

 비로소 가슴 깊은 곳에서 찡하니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녀석이 기어이 입대를 했구나!’

 입소후 2주일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왔다. 막사와 훈련장이 가장 많이 떨어져 있어 ‘잠 자나 마나, 밥 먹으나 마나’ 하다는 00연대 소속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녀석이 직접 쓴 편지지 앞뒷면을 빼곡히 채운 편지를 받아 들고 아내와 나는 반가움에 눈물이 났다. 이후 우리의 하루 일과는 훈련소 홈 페이지를 통한 새벽 편지 쓰기로 시작 되었다. 우리 가족은 물론 삼촌, 친지들까지도 편지쓰기에 동참하였다. 녀석도 1주에 한번 정도는 손편지를 보내 왔다.

 진심이 담긴 감사와 사랑한다는 말들과 편지 읽는 것이 가장 즐겁다는 내용이 ‘충성’이라는 구호와 함께 쓰인 것을 보고 우리는 더욱 편지 쓰기에 매달렸다.

 다음은 2011년 11월 18일 행군훈련을 마친 아들에게 보낸 편지다.

 「진석아, 새벽 창밖에는 조용히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어제 빗속에서 행군을 잘 했다니 수고가 많았다. 너의 미국 이삿짐이 이제야 도착하여 집안정리 하느라 우리는 하루 종일 바빴다.

 옷이니, 신발이니, 혼자 살림이 뭐 그리 많은지……. 총각생활 길어지면 늘어나는 건 양말과 넥타이 뿐, 저축은 한 푼도 안 된다더니 너의 이삿짐이 그 걸 증명하고 있더라. 앞으로 20개월 군 복무로 늘어나는 건 자신감과 의욕, 줄어드는 건 체중과 과소비, 인생의 모든 일은 Trade-off(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것)가 있지만 너의 군 생활은 얻는 것도 잃는 것도 모두 너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니 어제의 행군처럼 잘 참아내기 바란다.

 단독 군장이지만 30Km행군은 어렵고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지. 모두가 낙오 없이 잘 마쳤으면 좋으련만 많이 어려워하는 동생들도 있었겠지?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이라고 말했단다.

 자식으로서,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부모로서 등등 20킬로 완전 군장보다 훨씬 무거운 짐들, 이 세상 남자라면 누구나 평생지고 가야 할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야 하는 사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일본의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세 사람을 비유로 표현한 말이 있다. 최초로 통일 터전을 마련하고 불같은 성격으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려라”하는 말로 효율과 결과를 중시하였지.

 그의 뒤를 이어 실질적으로 일본을 통일하고 남는 에너지를 조선침략으로 발산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새는 울도록 만들겠다”는 적극적이고 저돌적인 자세를 보였고, 진정한 일본 통일을 완수하고 쇼군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지 않는 새는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라는 말로 끈기와 인내의 자세를 보였다.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사람은 먼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여 준비를 잘 하고 네가 해낸 행군에서와 같이 뚜벅뚜벅 한 걸음씩 나아가는 성실과 인내가 필수라고 생각한다. 훈련 마칠 때까지 긴장을 놓지 말고, 파이팅!”」

 드디어 녀석이 부대 배치를 받았다. 전방 철책선이 보이는 곳이었다. 첫 면회를 가서 “흰 털이 눈부신 동물이 너의 부대 상징이라 멋있다”고 했더니,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와 보니 원래는 검은 털이었는데 하도 훈련과 군기가 빡세어 하얗게 센 털이래요.”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대 놓고 웃을 수도 없고 ‘녀석이 제대로 된 부대로 배치를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노파심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군대 얘기를 들려주었다.

 “군대에서는 세 가지 부리를 조심해야 한다. 입부리, 발부리, 그리고 X부리다. 입 함부로 놀리면 보안문제 등 모든 화의 근본이다. 발 가는 대로 함부로 나다니면 탈영이나 미귀로 영창신세 된다. X부리 잘 못 놀리면 병 걸리거나 평생 신세 망친다.” 이등병 작대기 하나 달고 전보다 눈동자가 더욱 빛나는 모습의 녀석은 재미있다는 듯 내말을 듣고 있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저는 여친이 있으니까 세 번째 부리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녀석과 나는 약속이나 한 듯 크게 웃었다.

 어느 덧 입대한 지 1년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한 달만 있으면 상병이 되고 그리고 9개월, 녀석은 아마도 손을 꼽고 있을 것이다. 이따금 군 생활에 대하여 물어 보면 옛날의 군과는 확연히 다른, 소통이 이루어지고 신체적 기합이 없어진 선진화된 병영생활을 알 수 있었다.

 부대장과 장교들의 자상한 보살핌과 내무반에서의 격의 없는 대화, 풍족하고 질 높은 병참 지원속에 그야말로 “춥고, 배고프고, 고달픈” 군대생활은 옛날이야기인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이 있을 때 어려운 길에 보다 가치가 있다’고 한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자원입대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한 진석이도 더 큰 가치를 얻을 것으로 믿는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국방의무를 다하고 정말 떳떳하게 한국이든 미국이든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일 할 수 있다는 자부심에서 녀석의 표정은 밝다.

 군대 생활을 통하여 더욱 정겨워진 여친과의 결혼도 서두를 모양이다. 사회에서 노력해도 안 되던 체중도 많이 조절 되었고 음식이나 옷에 대한 투정도 싹 사라졌다.

 성실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과 직장생활에 대한 그리움도 새로운 모양이다. 마치 일시적으로 등산로를 폐쇄하여 산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회복시킨 모습이라고나 할까. 우리 진석이가 자원입대를 통하여 길러낸 자제력과 인내력의 바탕위에 삶에 대한 새로운 의욕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뚜벅뚜벅 먼 길을 가는 올바른 자세를 찾은 것 같아 믿음직하고 고맙다.(Konas)


김정준 (영주권 병사 아버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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