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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자 병역이행 수기⑫〕군대는 내게 '우리'를 주었다

Written by. 남형원   입력 : 2013-01-15 오전 8: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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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2012년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실시한 ‘외국 영주권자 병역 이행’에 대한 군 생활 수기 내용임.(편집자 주) 

 자대로 배치되고 얼마 후 사무실 회식자리가 있었다. 나 같은 사병에겐 오랜만에 고기도 구워먹고 술도 반주로 할 수 있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기회였다.

 한참 동료 병사들과 웃음꽃을 피우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간부 한 분이 술병을 가지고 내 테이블로 오셨다. 군대 생활을 꽤나 오래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계급도 높고 머리도 희끗희끗한 분이셨다.

 두 손으로 공손히 술을 한잔 받고 나 또한 술을 한잔 드렸다. 당연히 그저 한 잔씩 주고받고 나면 제자리로 돌아가시겠거니 했는데 뜻밖에도 내 옆에 의자를 가져와 앉으셨다. 재차 편히 먹으라고 하시면서 나이가 어떻게 되고 어디에 살다 왔냐는 등의 신상을 물으셨다. 나를 보니 당신 아들이 떠오른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알고 보니 그 분의 아들도 현재 군 복무 중에 있었다. 나랑 나이도 같고 처지도 비슷했다. 나와 같은 해외 영주권자였던 것이다. 그 분은 맨 처음 내가 사무실에 전입 왔을 때 해외 영주권자라는 소식을 듣고 한번 면담할 기회를 갖고 싶었는데 이제야 그 기회를 갖게 된 것 같다고 하셨다.

 일개 병사에게 도 그렇게 관심을 표해주니 참 고마웠다. 그리고 그날 그분과 나눴던 짧은 대화는 내 군 생활에 있어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분은 술을 권하며 대뜸 물으셨다. “넌 군대에 온 이유가 뭐냐” 좀 갑작스럽긴 했지만 해외 영주권자로서 그리 새로운 질문은 아니었다. 내 주변사람들은 오지 않을 수 있는 군대를 왜 왔냐는 듯이 종종 묻곤 했지만 이 분의 의도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어떤 정신상태를 갖고 군 복무를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예, 대한민국 남자로서 떳떳하고 싶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군대에서 네가 배워가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답은 그저 ‘전쟁 수행 능력’, ‘안보관’, ‘’군대 식 예절’등 상투적인 것들뿐이었다. 당시엔 군대는 결국 전투장병을 양성하는 교육소일 뿐이란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그 분께서는 나의 머릿속 답을 이미 알고 계신다는 듯 또 한번 이렇게 불 쑥 물으셨다.

 “군대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안 해봤니? 너는 더군다나 안 오려면 안 올수도 있었을 텐데.”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말씀 하셨듯이 저는 면제를 받으려면 면제를 받을 수 있었던 입장이라 군에 와서 후회도 몇 번은 했고, 남들보다 더 많은 희생을 치르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군대에 온 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의무 복무제가 없는 나라에서 오랜 기간 살다 온 탓인지 또래 친구들에 비해 2년이 뒤쳐지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평소 느꼈던 감정들을 내뱉어 버렸다. 한없이 ‘개인의 희생’만을 강조하는 내 철없는 말에도 공감하셨던 건지 그 분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네 말도 일리는 있다. 내 아들도 그런 소리를 하더니 너도 비슷한 얘기를 하는구나. 하지만 군대는 꼭 전쟁에 이기는 법을 배우기 위해 오는 곳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교육의 일부이긴 하지. 그러나 나는 네가 총 쏘는 법은 잊어먹고 전역을 하더라도 이것 한가지만은 잊지 않고 인생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것은 네 인생을 네 자신만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사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네가 군대에서 가장 배워나가야 할 것이다.”

 그날 밤 난 잠을 선뜻 이루지 못했다. 그 분께서 어떤 의도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분 말씀을 남은 군 생활동안 실천할 자신이 없었다. 철없는 나는 군대가 끝없는 자기희생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시급으로 치면 몇 백원밖에 되지 않는 환경에 있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개인의 자유가 한없이 구속되는 이 환경에서 어떻게 그렇게 성인 같은 자세를 배워가라는 것인지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2년 남짓한 세월을 국가를 위해 희생하면 됐지 그것을 평생 실천하라는 것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란 고약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자기합리화 속에서도 계속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돌이켜보건대, 그 분이 그날 하신 말씀은 이때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군 복무에 대한 새로운 철학을 갖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군대는 내가 학교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한국의 조직을 경험한 곳이다. 비록 처음에는 낯설고 문화적으로도 이질감을 느꼈지만, 나름 적응을 해가며 얻은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특히, 군대에 와서 배운 가장 소중한 가치는 ‘우리’라는 개념이었다. 외국의 개인주의적인 사회적 풍토에 물든 탓인지 군대에 오기 전 나는 항상 나 자신이 먼저였고 그 다음이 남이었다. 하지만 훈련소를 거쳐 자대생활을 하면서 사람간의 정을 느꼈고 단체생활이 무엇인지 체득할 수 있었다. 무언가를 같이 해나간다는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생활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느꼈다.

 우리라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남을 인정하는 것이고, 나를 앞세우기 전에 남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다. 아직도 나는 내가 자신만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군대가 그런 마음가짐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좋은 교육의 장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나는 나 같은 해외 영주권자도 자발적으로 군대 에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난 여전히 군 복무가 자기희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희생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남을 위한 것이라면 충분한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군 입대를 고려하고 있는 해외 영주권자들이라면 한번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게 물어보길 바란다. 자기가 진정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본적이 있는지. 그리고 왜 그러한 희생이 값진 것일지. 국가와 사회가 우리에게 준 혜택을 받기만 하고 그것을 되돌려주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진 않았는지. 나보다 ‘우리’를 앞세워 본적이 있는지.

 난 요즘도 가끔 내가 진정 나만을 위해 살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본다. 그리고 지난 수개월 간 달라진 내 모습에 흡족한 미소를 짓곤 한다. 군대는 내게 ‘우리’를 주었다.(Konas)

일병 남형원 (한미연합군사령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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