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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자 병역이행 수기⑬〕민족적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행

Written by. 노경록   입력 : 2013-01-15 오전 11: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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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2012년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실시한 ‘외국 영주권자 병역 이행’에 대한 군 생활 수기 내용임.(편집자 주)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 -

 아! 얼마 만에 불러보는 애국가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캐나다로 이민을 간 뒤 무려 8년 만에 부르는 애국가였다. 그 8년의 이민생활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이민 결정으로 나는 기본적인 감정과 의견조차도 한마디 제대로 표현 못하는 중학생이 되었고 이민 후 첫 1,2년 정도는 인종차별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서서히 영어실력이 늘면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었고 차별대우를 받는 일은 점차 줄기 시작했다. 최소한 대놓고 당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점차 흘렀고 만으로 18세가 되던 해 나는 캐나다와 한국 국적을 두고 한 가지를 선택해야 되는 상황에 놓였다. 이미 오랜 시간 생각을 해온 사안이었기에 선택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캐나다 국적 포기를 하기 얼마 전 재외국민 참정권에 관련된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참정권에 반대하는 자들은 한국문화와 실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그 나라의 운명을 쥐게 될 대통령 선거에 투표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여름방학 때마다 일가친척을 뵙기 위해 한국에 오면 나는 종종 나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었던 적이 참 많았다. 나 또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서로 다른 가치관이나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는 캐나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캐나다 자국민이지만 그 곳에서도 나를 이방인처럼 대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 또한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럴 때 마다 항상 나는 공중에 붕 뜬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뿌리, 나의 민족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대학을 휴학하고 고국으로 왔다.

 병역미필자, 특히 ‘국외거주 병역미필자’에 대한 통상적인 관념은 달갑지는 않다. 집에 있을 수만은 없어 영어강사를 하며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을 가 르쳤는데 학부모 면담을 하게 되면 특히 아버님들이 왔을 경우에는 항상 군 복무는 마쳤는지 물으셨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린 후 학생의 학업에 관련된 내용에 관하여 말을 하면 해외에서 오래 산 나의 경력과 병역미필의 이미지가 만나 완전한 이방인이 되어 한국에 대해서 모르는 선생님이 어떻게 학생을 가르칠 수 있냐는 식으로 말씀을 하셨다.

 나는 이런 사회의 인식으로는 무슨 일을 하던 방해가 될 것이라 생각을 하였고 또 그런 부정적 기류를 바꿔 놓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다소 빠르게 군에 입대를 하게 되었다.

 나는 자원입대를 한 사실에 대해서 굳이 밝히려고 하지 않는다. 훈련병 시절, 육군 훈련소 분대장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나를 제외한 자원입대자가 한명 더 있었다. 그 병사는 자원입대를 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였는데, 당시 나는 그 부분이 왜 특별한 혜택인 냥 얘기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군복무를 하기로 결정했던 이유는 투철한 충성심이라든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의무 중 하나라는 거창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국외에 있던 국내에 있던 나 또한 한국 사람이므로 군복무를 이행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차별대우를 받는 것이 싫었고 나의 민족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영주권자나 국외거주자는 병역기피자라는 부정적 기류를 바꾸기 위해 입대를 하였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단순히 군복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도 의외로 과정에서 배우는 점이 많았다. 즉, 우리 모두가 우리나라를 지킨다는 사명감 이외에도 현실적으로 자신의 이득을 위한 목적으로도 충분히 군대는 경험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병사들끼리 있다 보면 군 생활 중 마음에 안 드는 점에 대하여 한번쯤은 대화하게 된다. 고된 훈련, 인간관계 등 다양한 화두가 나오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인원이 통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것은 분명 큰 고통임이 확실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못한다고 하여 욕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점점 커지게 된다. 개인적으로 오래 전부터 꼭 취득하고 싶은 자격증이 있었는데 야근을 하거나 근무 등을 서다보면 공부할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시간을 쪼개서 기회가 될 때마다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그토록 원하던 자격증을 가지게 되었다.

 좀처럼 발산되지 않는 의지였지만 응축해서 사용하는 법을 터득함으로써 의지는 실천적으로 실천은 결과달성으로 탈바꿈되었다. 많은 전역자들이 입대하기 전과 전역 후의 대학성적이 최소 1학점은 난다고 한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에서 의지는 점점 쌓여 응축되고 전역 후 이를 발산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교 진학 전 남미로 여행을 갔었는데 당시 가이드가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은 남미처럼 풍족한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청춘을 군대에서 허비하는데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일군 것을 보면 굉장하다고. 군 생활을 경험한 지금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은 허송세월이라는 발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신한다.

 군에서 고된 훈련과 일과 등으로 인한 자신과의 맹렬한 전투를 하며 정신무장을 했기에 가능했던 발군의 도약이다. 젊음의 광적인 혈기를 집념과 열정이라는 무기로 만들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방향을 찾는 등 인생의 초석을 잘 다듬을 수 있다.

 책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포는 실체에 대한 공포가 아니며 부풀려진 게 많다는 문구를 보았다. 상상과 회의가 만든 막연한 불안이 문제라는 것이다. 막상 군에 와서 두려워했던 일들을 실제로 해보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던 것이었는데 괜히 겁먹고 있었다며 웃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고 부딪히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때는 무한한 자신감으로 그 누구보다 겸손한 자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의 아버지는 어렸을 적부터 항상 내게 겸손함을 강조하셨다. 성공의 3대 요소는 노력·인 내·겸손이라며 그 중에서도 겸손이 으뜸이고 가장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동시에 귀가 닳도록 들은 말이 남자는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어야 된다고 역설하셨다.

 입대 전까지만 해도 이런 아버지의 말씀은 어폐로 들렸다. 자신감과 겸손은 반대되는 개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겸손은 자신감으로부터 파생된다. 누구도 나와 비교할 수 없다는 내면의 절대적 자만이 있어야만 모든 사람에게 겸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에 와서 노력·인내·겸손 3가지를 모두 배웠다. 사회에 나가서 필자보다 2-3년 정도 앞서있는 동년배 친구들과 경쟁을 할 생각을 하니 불안보다 설렘이 앞선다.

 비록 어렸을 적부터 다른 나라에서 오랫동안 자랐지만 성인이 되어 나의 국가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복무기간 동안 민족적 정체성의 혼란을 없애 고 확고한 국가관과 사생관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 일가친척을 제외한 연고가 없는 나에게 학연·지연·혈연만큼 다양한 인맥을 형성할 수 있는 軍緣을 만들게 하였다.

 KR과 UFC 두 번의 한미 연합훈련 참가를 통해 대통령님, 국방부장관님, 연합사령관님, 합참의장님 등 대단한 분들을 만나 같이 숨쉬고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견지가 넓어지게 되었다.

 통·번역병으로서 배운 수많은 업무지식과 언어적 기술은 문필가와 강연가가 궁극적 꿈인 필자에게 큰 보탬이 되었다. 전 세계 각지에서 온 부대원들과의 일상생활을 통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문화를 배우고 다양한 가치관을 공유하며 입체적인 사고방식을 소유하게 되었다.

 유격훈련과 혹한기훈련 그리고 수많은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며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지혜와 끈기를 배웠다. 생활여건을 탓하기 보다는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철두철미한 시간 관리기법을 연마하여 목표달성을 위해 시간을 틈틈이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등 자칫 무의미하게 허비될 시간을 계발시간으로 사용하여 다수의 자격증을 보유하게 되었다.

 모두가 나와 같은 군 생활을 하지는 않겠지만 나와 같은 것을 배우지는 않아도 그에 상응하는 것을 분명히 얻어갈 것이라고 확신하다. 이 글이 게재될 즈음에는 더 많은 인적, 심적, 그리고 물질적으로 다채로운 자원을 가지게 될 것이고 전역 후에는 군 복무를 하며 터득한 이런 자원을 적극 활용하여 경제 사회활동을 활발히 함으로써 국가도약은 물론 본인이 원하고자 하는 삶을 사는데 크게 공헌하게 될 것이다.(Konas)

상병 노경록 (육군종합군수학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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