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자 병역이행 수기⑭〕우리나라 대~한민국
본 내용은 2012년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실시한 ‘외국 영주권자 병역 이행’에 대한 군 생활 수기 내용임.(편집자 주)
저는 미국 텍사스, 휴스톤의 한 작은 마을에서 첫 빛을 보았다.
거기서 나는 유년 시절을 보냈고 시간이 지난 뒤 초등학교를 다닐 때쯤에 부모님과 함께 미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건너왔다. 어린 시절 내가 보아온 여러 인종의 다양한 환경과 그들만의 개성을 보아왔다.
미국에서는 특별한 아시아인이었던 나에게 한국에서의 중학교 때의 생활은 내가 특별한 한국인 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 동질감이 너무나 좋았고 보편적인 환경이나 특수한 한국만의 문화가 조금은 적응하기 힘들기도 했지만 금방 적응을 하고 그런 문화에 미국의 문화와는 다른 점이 있지만, 그러면서도 좋은 점도 많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에 대한 예의와 범절을 지키는 모습이나 대우를 해주는 그런 모습들은 보기가 좋았다. 고등학교 생활을 한국에서 했고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험난한 고등학교 수능의 길을 거쳐서 대학교에 입학을 했고 영어라는 특기를 살리지는 못 했지만 나름 괜찮은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고 거기서 공부를 하면서 대학생활을 보내다가 군대에 들어오게 되었다.
사실, 군대라는 곳을 처음에는 많이 부정적인 곳이라 생각했다.
들어가면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고 심난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앞서기도 했던 것은 사실이다. 거기다가 군대라는 곳에 가면 갇혀 있어야 되고 사랑하는 가족과 나의 친구 그리고 애인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겁이 많이 났다.
그렇게 102보충대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고 전화로 금방 갔다 오겠다고 여자 친구에게 이야기는 했지만 흐르는 눈물은 숨길 수 없었다. 이렇게 겁을 먹고 들어가서인지 훈련소에서의 생활은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많이 힘들었다.
하루하루 훈련을 하면 할수록 몸은 단련됨과 동시에 지쳐갔고 심적으로 몸이 지치니깐 여자 친구와 부모님 생각에 매일 우울해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보내주신 인터넷 편지 그리고 손 편지들 그리고 여자 친구가 응원해 주던 말들 그리고 평소에는 잘 쓰지 않았던 손 편지를 나는 쓰게 될 수 있었다.
훈련소 기간 동안 부모님께는 감사를 그리고 내가 얼마나 사랑을 받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게 해주었고 여자친구에게서는 내가 너무나 당연시 했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보고 싶고 기다려지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게 편지를 받으면서 30km 행군을 이겨내고 힘든 훈련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힘든 훈련을 마치고 면회 날이 다가왔다. 멀리서 나를 보며 웃으시던 부모님 그리고 달려와 눈물 훔치던 여자 친구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 남자는 세 번 밖에 울지 않는다는 약속을 깨고 말았다.
나름 강인하고 내 자신이 마음이 강한 줄 알고 있었는데 이런 나에게 오랜만에 보는 부모님과 여자친구의 모습은 내 마음을 깨고 말았다.
그렇게 즐거운 면회 이후 제2신병교육대대로 가기 전 그리고 자대 배치를 받아 다시 만나기 전까지 다시 이별이 다가왔지만, 그들의 얼굴 그리고 응원을 기억하며 나는 힘차게 2신병교육 대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2신병교육대대에서는 1신병교육대대 에서 배운 훈련 사항들을 응용해서 하는 훈련들이라 조금은 덜 힘들었지만 배고프고 힘든 것은 어느 훈련소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하지만 훈련소에서 서로 동기들끼리 땀을 흘리며 항상 자신을 먼저 생각하던 그런 마음들을 버리고 모두 같이 힘들다 보니깐 서로 ‘으쌰으쌰’ 힘을 내며 훈련을 이겨내고 짜증나는 순간이 있어 도 먼저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 격려와 응원을 통해 2신병교육대대에서 무사히 수료를 하였다.
비록 여기서도 1신병교육대대 만큼 힘든 것도 많았지만 얻은 것도 많다고 생각된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 그리고 동기들 간의 전우애 그리고 정말 다시는 느끼지 못 한 훈련소에서만의 삶은 나에게 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무릇 자대배치가 곧 군대의 시작이라고 할 만큼 군 복무의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부대에 도착하니 처음에 동기들과 함께한 부대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고 다들 선임이시고 동기가 몇 명 안 되었지만 점차 선임들과도 친해지고 약간은 늦게 와서 나이가 많은 나에게는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생활하다 보니깐 친근한 분위기와 야간 고등학교 때 같은 반에 있는 것처럼 점차 알면 알수록 좋은 점도 많았다.
미국에서의 생활을 하다 온 사람이라면 그리고 외국에서 오래 살다보면 조금은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다보니깐 처음엔 적응하기도 힘들었지만 사실, 적응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처음에 힘들뿐 이지 점차 시간이 지나고 보면 모든 사람은 그 각각 나름의 속도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뿐이지 결코 적응을 못하는 법은 없다.
그리고 모든 일은 마음먹기 달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오면 시간을 낭비한다던지 아까운 시간이라고 많이들 그러는데 그런 마음을 먹고 들어가서 생활을 1년 9개월 동안 한다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1년 9개월이라는 시간이 뜻 깊은 1년 9개월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1년 9개월 동안 아침에 일어나서 먹고 자고 생활을 같이한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같은 분대원 그리고 중대원들끼리 매일 보고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많이 친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에서 만난 선임, 동기, 후임은 나가서도 연락을 하며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훈련소에서 같이 땀을 흘리던 동기들은 힘든 생활을 같이 겪은 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고 지금도 연락을 한다. 이렇게 군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라는 소중한 존재를 얻은 것이다.
그밖에도 사회에 있을 때는 잘 읽지 않았던 책들을 군대에 와서 많이 읽게 되었고 평소에 공부를 조금은 소홀히 했지만 군대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전공서적도 읽고 자기 개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 이렇게 자신이 노력만 한다면 주어진 환경이 비록 군대이긴 하지만, 계발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어있고 그에 따른 보상도 주어져 동기를 유발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것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나 같이 여자 친구와 애틋한 사랑을 나누다가 온 경우에는 특히나 처음에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나보다 어른스러운 여자 친구가 나에게 응원을 하며 군대를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자기발전을 위한 계기라고 말해주면서 입대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그녀 때문에 어떻게 보면 그녀의 소중함을 느끼게 될 수 있었고 또 덕분에 힘을 내서 군대에서의 나의 일에 집중하고 열심히 할 수 있었다.
모든 일에는 그리고 모든 것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하는 법이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것을 더 강조하느냐에 따라 군대가 정말 의미 없는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또 다르게 보면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내기는 했지만 한국에서의 삶이 너무나 좋았기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가야하는 군대에 온 것이다. 내 가족이 한국 국민이고 내 여자 친구도 한국 국민으로서 이들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한국이라는 국가인 것이고 이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이 바로 군인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나라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단순히 나라만이 아니라 내 가족 친구 그리고 여자 친구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응원하는 이 21개월이 결코 아까운 시간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부터 21 개월의 군대 생활을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무사히 마칠 것이다.(Konas)
이병 박선우 (15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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