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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자 병역이행 수기⑮〕자신의 그릇을 준비해 놔라

Written by. 박주한   입력 : 2013-01-15 오후 4: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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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2012년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실시한 ‘외국 영주권자 병역 이행’에 대한 군 생활 수기 내용임.(편집자 주)

 “군대 안가서 좋겠다”는 말을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었다. 그럴 때면, 난 군대는 무조건 간다라고 생각을 했고 결국엔 2011년 9월 19일 논산훈련소에 입대를 하게 되었다.

 입대 후 나는 동기들, 선임들, 후임들, 간부님들한테 내 이름보다 “넌 굳이 군대를 안와도 되는데 왜 왔니”라는 질문을 더 자주 받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해외영주권자다. 1995년 다섯 살 때 홍콩이란 나라에 가게 되었고 16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어느새 21살, 군대를 가는 나이가 되었다. 보통 한국 남자들과 달리 나는 선택권이 있었지만, 난 진정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복무를 자랑스럽게 수행해야하는 것은 하나의 임무와도 같았다고 생각했다.

 이 선택이 옳다고 생각해서 내가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여자 친구와 내가 속해있었던 교회, 학교, 동아리를 잠시 떠나 낮선 군대라는 곳에 들어갔다.

 처음엔 계급사회 문화에 적응할 수 있을지, 전통 한국인 동기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 급식은 입에 맞을지, 혹은 “영주권자라는 이유로 놀림을 받지는 않을까” 여러 가지로 머리가 복잡하고 두려웠었다. 그 무거운 마음으로 누나와 미장원에 가서 3mm로 머리를 자르고 있을 때 나는 결심했다.

 나는 내가 자진해서 지원한 만큼 더욱 더 자랑스럽고 더 열심히 군복무에 임하고, 또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 역시 그러한 내 결정을 자랑스러워하시며, 몸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당부하셨다. 그렇게 나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부모님을 뒤로한 채 당당히 입대하였다.

 그날부터 군복을 입으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인이 되었다. 내가 생각해왔던 군대와 실제 군대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 입대 전에 군대라 하면, 낙후된 시설, 열악한 급식, 엄격한 선후 임 관계 등이 떠올랐지만, 직접 겪어보니 그것은 단지 고정 관념일 뿐이었다. 부대막사는 새것 이었고,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침대가 있었고, 또 관물대나 화장실, 샤워실, 체력단련실, 맑은 소리방 등 생활에 필요한 시설들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아 자대 배치 빨리 받고 싶다.” 이 말을 훈련병 기간 내내 입에 달고 살았다. 난 내 자대가 어디일지, 또 나의 맞선임은 누구일지, 어떤 보직을 맡게 될 것이고, 또 어떤 환경에서 복무하게 될 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우리는 막상 자대배치를 받는 날이 다가오자, 한 달 반 동안이나 함께 지내오던 전우와 헤어져야한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우울했다. 하지만, 이별이 있으면 만남도 있기에 곧 자대에 가서 만날 선임들과 동기들을 생각하며, 군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리라 굳게 다짐했었다.

 결국엔 나는 경기도 양주에 있는 26사단 9126 기계화보병대대 포반에 FDC란 직책을 받았다.

 나는 훈련소에 있을 때부터 영어와 관련된 보직을 받을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FDC 가 되어 매우 당황스러웠다. 훈련소 때부터 동기들이랑 어느 보직이 ‘꿀’이고 어느 보직이 ‘빡세다’란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나는 모든 보직이 똑같이 다 힘들고 결코 쉬운 보직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나에게 주어진 보직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포에 대해서 공부를 해서 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참 군인이 되고 싶었다. 직책 외에 동기들 밖에 없던 내무반에 갑자기 짝대기 3, 4개 달려있는 선임들을 보면서 많이 긴장을 했고, 수시로 나를 다시 살피며 잘못된 게 없는지 확인을 하며 실수 안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예절, 언어 선택, 생활 수칙, 일과 생활 등 많은 것들을 새로 배웠고, 때때로 내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많았고 마찬가지로 선임들도 가끔 내 ‘아메리칸’ 스타일을 이해할 수 없어했다. 서로를 동등한 위치에 놓고 기본예절만 지키면 별 문제 없었던 외국 사회와는 달리 군대에서는 확고한 지휘체계와 질서에 따라 행동해야했다.

 한국의 문화와 군대라는 특수 사회에 동시에 적응하려 해서 그랬던 걸까. 지금 돌아보면 이등병 땐 나에게 매우 힘든 시기였다. 외각 근무를 설 때면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서있는 내내 묘한 기분이 들며 문득 괜히 온 걸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나에겐 전우가 있어 위로를 받고 홍콩에 있는 부모님과 통화를 하며 나의 소중함과 나에 대한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

 어느새 벌써 이병 박주한이 아닌 박 상병이 되었다. 바쁜 일과도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고, 예전보다는 훨씬 더 편한 마음으로 군 생활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서서히 변해가는 내 자신을 발견 할 때마다 군대에 오지 않았으면 얻어가지 못했을 값진 것들을 얻은 것 같아 참 뿌듯하다.

 군대에 입대는 것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나 영주권자들과 같이 자란 홍콩 친구들은 거 의 23살이 되면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기 시작한다. 이제 졸업을 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친구들 소식을 들으면 “난 여기서 뭐하고 있지?” 등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군대 에 있는 시간이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를 계발할 수 있는 시간으로 본다. “남의 그릇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그릇을 준비해 놔라”이런 말이 있듯이 부러워할 시간에 어떻게 내 자신을 계발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한다.

 단체주의보다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외국인들과 어울리다가, 집단적인 성향이 강한 환경 에서 살고, 입대 전 애국가가 4절까지 있는 줄도 몰랐던 나를 생각해보면 나는 내 자신이 지금 서서히 다시 ‘한국화’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나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고, 정말 군대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나는 밖에서 돈 주고도 배우지 못할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내 선택이 올바른 선택이란 걸 보여주기 위해 나는 건강하고 멋있게 변화된 모습으로 전역하고 부모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Konas)

상병 박주한 (26사단 76여단)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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