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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자 병역이행 수기㉑〕군대 왜 왔니

Written by. 이선홍   입력 : 2013-01-17 오후 5: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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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2012년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실시한 ‘외국 영주권자 병역 이행’에 대한 군 생활 수기 내용임.(편집자 주)

 군대 왜 왔니? 제가 군대 와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입니다.

 저는 25살에 군 입대를 한 미국 영주권자입니다. 저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기 때문에 대학원을 가서 석사학위 취득 후 전문연구요원으로서 대기업에서 3년 동안 근무하는 것으로 군복무를 대체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다 영주권까지 얻었으니 저는 더 이상 군대와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전문연구요원으로 한국에서 일하든 미국에서 취직하여 미국에서 살든 선택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선택권을 가지고 있던 제가 입대하게 된 이유들이 여럿 있습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미국에 진출하는 것을 꿈으로 생각하셨고 결국 진출하여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제게 항상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그 개인이 존재해야만 다인종, 다문화 사회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학교를 다니고 아버지 회사 일을 도와 미국회사들을 견학을 다닐 때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고 그 말씀에 더욱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에 살 수 있고 학교도 갈수 있고 회사도 갈 수 있지만 한국 회사에 입사하여 세계를 상대로 인생을 펼쳐보고 싶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10위의 경제 강국입니다. 세계적인 대한민국 기업들이 그 결정을 도와주었습니다. 이 신념이 있었기에 군대에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정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입니다. 저희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전쟁은 다시 일어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크고 작은 도발들과 그중 2010년 3월 26일에 발생한 천안함 피격사건과 2010년 11월23일에 발생한 연평도 포격사건을 통해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의 의지가 꺾이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언젠가 또 다시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군인이 전쟁 시 어떤 임무를 맡아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 대처방법을 익혀 대한민국에 어떠한 방법에 서라도 도움이 되고자 저는 현역으로 입대하였습니다. 아직 입대한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아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제가 군대에 입대하겠다고 친구들과 부모님 친척 등 주변 지인들에게 말하자 되돌아오는 반응들은 모두 부정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와 조부모님이 크게 반대하셨습니다. 군대에서 일어나는 사고 뉴스들을 듣고 귀한 자식이 혹여나 다치거나 할까 걱정하신 것입니다. 아버지도 처음에는 군 입대를 하지 말거나 아버지와 같이 전문연구요원으로 군복무를 대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먼저 아버지께 제가 군 입대를 하기로 결심할 때까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결국 아버지도 공감하시고 조언도 해주시며 제 편이 되어주셔서 가족들을 설득하는데 큰 도움이 되어주셨습니다.

 2012년 2월 7일 추운 겨울날 306보충대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과 2박 3일을 지낸 후 모두가 숨죽이며 기다렸던 신병교육대대 발표 날이 되었습니다. 저는 모두가 가기를 꺼려하는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춥고 힘들다는 3사단 백골부대로 배치되었습니다. 백골이 가득한 3사단에 도착해보니 예상보다 더 뼈가 시리도록 추웠으며 조교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듯 무섭고 엄격했습니다. 훈련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곁에 있는 전우들과 제가 현역으로 입대하여 자랑스럽다는 가족들의 편지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6.25 전쟁 참전자이자 국가유공자이신 외조부와 조부의 편지는 더욱 힘이 되었습니다. 5주간의 제식훈련 사격훈련 수류탄 투척훈련, 각개전투훈련 GOP까지의 야간 행군 등을 끝내고 남은 군생활의 보금자리인 자대로 제3군수지원 사령부로 도착했습니다.

 자대에 도착해보니 동기들과 함께 지냈던 신병교육대대와는 달리 선임과 후임이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과 행동 사고전환이 느렸습니다. 선택을 하기 전 생각을 많이 하고 결정했기에 사회에서는 신중하고 꼼꼼하다는 것이 장점으로 발휘되었지만 군대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신속한 행동을 요구하는 군대에서 제 장점은 장점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단점으로 바뀌어 적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저를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영주권을 가지고 2년 이상 외국에 체류하면 영주권 자격이 박탈당하기 때문에 저는 군 생활 중 저는 미국에를 다녀와야 했습니다.

 제가 휴가 때 미국에 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영주권이 있는데 왜 왔냐 “부럽다” 등 많은 질문과 비아냥이 섞인 농담은 아무리 제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애국심을 가지고 입대하였어도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 잘 몰라 상담병과 상담도 하였습니다. 상담병은 제 고충을 듣고는 제 상황과 사정을 주위에 알리고 이해시켜주었습니다. 이후 저는 무거운 마음의 짐을 덜어낸 느낌이었고 그때부터 재충전을 한 느낌으로 군 생활을 의욕적으로 잘 할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비를 넘겼지만 군 생활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도 또 다른 시련들이 찾아올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받은 시련들과 사회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내 자신의 무력감을 넘어서 새로운 경험들을 발판으로 성장해가는 자신을 느끼며 군대에 자진하여 현역으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Konas)

일등병 이선홍 (제3군수지원사령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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