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자 병역이행 수기㉘〕피와 땀과 고통의 주춧돌 위에 자부심은 세워진다
본 내용은 2012년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실시한 ‘외국 영주권자 병역 이행’에 대한 군 생활 수기 내용임.(편집자 주)
어머니 아버지 건강하셨죠? 큰아들 준병입니다. 오늘로 제가 입대한 지 11일째 되는 날입니다. 매우 힘든 일주일간의 가입소 기간이었지만 모두 지나가고 이제 이렇게 대한 해병대의 일원으로서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거운 완전군장을 메고, 철모를 쓰고 묵직한 총도 들어보았습니다. 매일 계속되는 체력단련과 귓가에 쩌렁쩌렁 울리는 교관들의 목소리는 저와 동기생들을 항상 긴장상태에 머물게 합니다.
새벽 총기상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힘든 훈련과 과업을 하고 이른 저녁 잠이드는 생활. 지금까지 제가 살아왔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생활입니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일주차가 지나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고 무엇보다 함께하는 동기생들이 있어 힘들지만 즐겁고 보람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소대장님 중 한분이 어제인가 한 말이 생각나는데 피와 땀과 고통의 주춧돌 위에 자부심은 세워진다. 대강 이런 말이었습니다. 이 말처럼 저도 지금 힘들다고 이 순간의 고통대문에 포기하기 보다는 이를 악물로 참아내어 미래의 제 자신을 담금질하겠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어머니 아버지 곁으로 보다 성숙하고 강한 아들이 되어 돌아가겠습니다.
2012년 5월 31일 경북포항에서 큰아들 준병이가
병과가 결정되고 실무배치가 확정되면 저는 7주차 수료식이 끝난 후 포병교육대에서 4주간의 후반기 교육을 받고 바로 부대배치가 됩니다. 아직 어디로 배치 받을지 모르지만 어디가 되던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제 마음 속에 항상 어머니 아버지가 계심으로써 저에게 큰 힘이 되듯이 어머니 아버지 마음속에도 항상 제가 함께 하며 어머니 아버지의 활력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훈병아! 지금은 비록 멀리 떨어져 만날 수조차 없지만 우리 둘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네가 어디서 뭘 하던 형은 항상 네 편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너는 누구보다 똑똑하고 자기관이 분명해서 나중에 꼭 큰 일을 해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부탁하고 싶은 것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앞으로도 더 잘해드렸으면 좋겠다. 형이 5개월 동안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많은걸 느꼈어. 그건 소중한 사람들이 자신의 곁에서 떨어지기 전 까진 그 사람들의 소중함을 모른다는 거야, 지금의 너의 곁에 있는 친구, 교수님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에게 따듯한 사랑과 정성으로 대해주기 바란다.
꿈은 꿈꾸는 자의 몫이라고 했어. 네 꿈을 향해 꿋꿋이 달리고 있는 네가 자랑스럽다. 언젠가 우리 꼭 다시 만날 그날을 기대해본다.
2012년 6월 17일 포항에서 준병
어머니 아버지가 편지를 받아보실 즈음에는 이미 마지막 극기주가 끝나가고 있겠지요. 괴테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괴로움이 남기고 간 것을 보아라! 고통도 지나고 나면 달콤한 것이다. 인생이 아무리 힘든 시련과 고통의 연속이라도 지나고 나면 당신을 살맛나게 해주는 원천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또 앞으로 다가올 시련이 아무리 힘겨울지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정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 이러한 것들이 제가 지금까지 해병대훈련을 받으며 온몸으로 배운 것들입니다.
저희 소대장님 중 한 분은 항상 남자라면 미래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현실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바라보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겼을 때 비로소 남자가 되는 것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아직도 한참 부족한 것 같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겠습니다.
2012년 6월 24일 일요일 포항에서 준병이가
신병 제1161기로 7주간의 훈련을 모두 마쳤습니다.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날이 정말 왔고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렸습니다. 7주 만에 어머니 아버지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가슴 속에서부터 눈물이 끓어올라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기쁨의 눈물입니다. 전날 동기들 모두 울지 않을 것처럼 말했지만, 막상 기다리던 그 순간이 오자 다들 눈물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젠 정말 동기들끼리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차례차례 떠나는 동기들을 보고 못내 아쉬웠습니다. 아침을 먹고 3생활실 동기들과 한자리에 모여 손을 맞대고 1소대 3생활실 화이팅을 외치며 서로 포옹을 하고 등을 다독여 주었습니다.
훈련소 동기들은 한번 배치 받으면 근무지가 같아도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소대장님들의 말씀이 떠올라 가슴이 찡했습니다. 다른 동기들도 저와 비슷한 심정이지 않았을까요?
생활관을 떠나는 오늘이 제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2012년 7월 6일 포항에서 준병이가(Konas)
이병 채준병 (해병대 제2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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