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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소년병의 한을 풀어줄 것인가 ?

Written by. 문갑식   입력 : 2013-05-17 오전 6: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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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기자 26년 만에 방송 앵커 일을 겸하게 됐다. 4월8일부터 채널19번 TV조선에서 매일 아침 10시부터 30분간 진행하는 ‘문갑식의 신통방통’이란 프로그램이다. 신통방통은 신문도 통하고 방송도 통한다는 뜻이다.

 이 프로그램을 준비하려면 매일 새벽 3시쯤 일어나야한다. 분석의 축(軸)이 되는 조선일보를 한 시간 가량 훑어보고 회사로 출근해 8개 조간(朝刊)을 숙독한 뒤 아이템을 5개 정도 추려 PD에게 보낸 뒤 원고를 쓴다. 

 전혀 낯선 힘든 일과이지만 소득도 있다. 때맞춰 북한의 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15분간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되는 ‘문갑식의 하드보일드 코너’에 그 주에만 세분의 쟁쟁한 예비역 장성들이 출연했다. 

 처음에는 김혁수 예비역 해군 제독이 나왔다. 김 제독은 북한 잠수함의 위협과 백령도, 연평도 등 국지도발이 예상되는 곳에서의 대비책을 자세하게 시청자들에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제독은 이런 말도 전했다.

 “이번에는 잠수정을 이용한 북한 특수부대가 동해안에 기습 상륙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목표는 경북 해안 일대의 원자력발전소가 될 것이다. 원전(原電)이 멈추면 전국은 정전대란을 맞는다.”

 ‘월남전의 영웅’ 채명신 예비역 육군중장은 통쾌한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미친개를 다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앵커의 질문에 “처음에는 뼈를 줘서 달래보다가 안되면 몽둥이로 골통을 까부수라”는 것이다.  

 채 장군은 6·25전쟁 중 대한민국 최초의 유격부대인 백골(白骨)병단을 이끌고 강원도 산악지대를 휘저으며 김일성으로부터 황금권총을 하사받은 길원팔을 사살한 전과를 설명하기도 했다. 몇 번들 어도 시원한 역사다. 

 해군사관학교 1기생으로 올해 여든이 넘은 공정식 전 해병대사령관도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는 북한 특수부대가 이승만 대통령의 요트를 강탈해가자 함대를 이끌고 북한 장산곶 근처의 몽금포 항을 기습한 인물이다. 

 빗발치는 포화를 뚫고 적함 4척을 격침시키고 포로를 생포해 아군의 사기를 높였는가 하면 ‘귀신 잡는 해병신화’를 탄생시킨 경남 통영상륙작전, 중공군의 간담을 서늘케 한 ‘도솔산전투’ ‘사천강전투’도 전했다.  

 이중 필자의 뇌리에 남는 인물이 바로 6·25 참전 소년병중앙회 박태승 회장이었다. 열일곱 살 때 자원입대해 당당히 군번(軍番)을 받은 그가 전하는 전쟁의 참상은 놀라운 것이었다. 당시 소년병은 14~17세 정도였다.

 앳된 얼굴의 소년병들은 자기키만 한 M1소총을 들고 탄약·수류탄으로 무장했다. 완전군장하면 무게가 자기 몸무게에 육박하는 24㎏이었다. 교육도 받지 못하고 살육의 현장으로 뛰어든 그들은 지금 백발이 성성하다.  

 소년병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현재 머물고 있는 경북 풍기에서 하루 전에 서울에 온 그는 당시의 상황을 ‘전쟁에 나가면 죽는다’는 말이 횡행했으며 돈 있고 빽있는 사람들의 자제는 전부 군대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소년병으로 6년간 복무하는 동안 제대로 식사도 하지 못했는데 제대 후 귀가할 때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한다. 네 살 위인 형도 전쟁 중 전사했는데 전선을 떠나는 것이 마치 형을 놔두고 오는 것만 같았다는 것이다. 

 한참 공부할 나이에 전쟁터에서 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전후에도 생활고에 시달렸다. 현재 2만9000여명에 달하는 소년병 출신들 모두가 그런 삶의 고달픈 궤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다. 그런데 놀라운 증언도 있었다. 

 소년병의 실체를 우리가 그동안 인정하지 않았으며 작년에야 비로소 국방부에서 전사(戰史)에 이를 기록했으며 유공자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법적인 근거가 부족해 보상이나 현충 사업은 요원하다. 

 필자를 놀라게 한 것은 당당히 군번을 받고 전사한 소년병 가운데 국립현충원 등지의 현충시설에 매장된 이는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어렸을 때 숨졌기에 결혼했을 리가 없으며 부모도 모두 세상을 떴다. 

 그렇다면 이 외로운 호국영령(護國英靈)들의 넋이 지금도 구천을 떠돌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이들의 넋을 그나마 위로해주는 것은 매년 6월 열리는 위령제뿐이라고 한다. 올해 위령제는 6월19일 대구에서 열린다.

 얼마 전 미국이 장진호 전투에서 사망한 미군의 유해를 63년 만에 찾아냈다는 뉴스를 접한 뒤여서 박태승 회장의 말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다. 세월이 흘러도 반드시 조국을 위해 헌신한 군인의 유해를 찾아내 집으로 돌려보내는 미국과 우리는 얼마나 대조가 되는가.

 이 프로그램을 계속하는 동안 필자는 가능한 많은 예비역 출신들을 출연시키려고 한다. 전쟁이 끝난지 60년이 돼 이제 젊은이들은 전쟁이 마치 남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미사일 위협에 벌벌 떨고만 있지 않은가.  

 아직도 생존해있는 분들의 증언은 곧 ‘역사’이며 이것은 그들이 생을 마치기 전에 반드시 기록해야할 중요한 우리의 자산이다. 그러면서 6·25, 월남전 같은 전장에서 청춘을 바친 이들에 대한 보훈사업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계획이다.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말을 나는 요즘 북한의 전쟁 협박과 예비역 장병들의 증언을 통해 새삼 절감하고 있다.(konas) 출처:월간자유

문갑식(조선일보 선임기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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